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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조 대학생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2] ㉑역시 일본은 교통 선진국답다

9월 21일. 일본 시즈오카에서 70km 떨어진 가케가와로 향했다. 긴 철교를 건너고 높은 고개를 넘고 풀이 무성한 좁은 길을 통과했다.

점심은 편의점에서 김밥과 닭튀김, 콜라를 주문했다. 자전거 가방이 식탁으로 제격이다.

▲가케가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가케가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가케가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가케가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가케가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일본에서는 아직 자전거 여행하는 이들을 못 봤다. 시내와 공원에서는 자전거를 많이 타는데 도시와 도시 구간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지 않는다.

국도에 갓길이 거의 없기도 하고, 시내를 벗어나면 차량들이 꽤 속도를 내는데다가 특히 컴컴한 터널을 통과할 때는 굉음으로 인해 공포감을 더했다.

가케가와시의 에키마에(驛前, 철로역 내에서 관광안내 및 기념품 판매 등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센터)에서 안내를 받아 호텔 주소를 구글 지도에 찍고 도착하니 지배인이 정문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호텔에서 소개해 준 인근 식당에서 저녁 식사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니 지배인이 인터넷 지도를 복사지에 출력해 내일 우리가 가야할 코스를 형광펜으로 굵게 표시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체크인 할 때 ‘국도 1호선은 종종 자전거 진입 금지 구간이 많아서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준비했다고 한다. 정말 고마웠다.

▲가케가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가케가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가케가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9월 22일. 일본 횡단 열흘 째. 도쿄를 출발해 요코하마와 하코네, 시즈오카를 지나 가케가와까지 왔다.

호텔의 아침 식사는 주로 뷔페식인데 이곳 뉴 호텔은 1인분씩 따로 밥상을 차렸다. 생선 두 조각. 계란 프라이, 해초 무침, 멸치조림, 김, 된장국, 쌀밥, 녹차 한 주전자, 나무젓가락이 쟁반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일본인들은 그릇을 들고 음식을 젓가락으로 입 속에 긁어 넣으며 호록호록 마시듯이 먹지만 우리는 그릇을 밥상에 올려놓은 채 숟가락으로 점잖게 떠먹는다. 숟가락은 별도로 달라고 주문했다.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남서쪽 80km 떨어진 토요하시로 향했다. 달리다 보니 조금씩 멀리 간다. 짐을 좀 버리고 싶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버릴 것이 없다.

집에서는 쉽게 버리곤 했던 작은 비닐봉지마저도 이렇게 소중하게 쓰일 줄 몰랐다.

토요하시의 에키마에 2층에서 숙소를 확인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 바깥에서 자전거를 지키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추니에게 멀리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호텔이 잘 해결됐다는 표시다.

자전거 여행은 달리다가 펑크가 날 수도 있고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지쳐서 제때에 예약한 곳까지 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숙소를 예약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 해 저무는 곳에서 숙소를 찾는데, 종종 호텔이 만실이라서 다른 호텔을 찾아 이동하게 되는 일이 많다.

▲토요하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토요하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토요하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토요하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9월 23일. 토요하시에서 나고야를 향해 출발했다. 구글 지도를 켜고 메이덴아카사카를 지나는데 또 자동차 전용 도로가 나타났다.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가 물어보고 왔던 길을 한참 동안 되돌아 나와 지방도로 우회했다.

나고야 시내가 가까워지자 차량들이 많아졌다. 가능한 한 도로 흰색 차선 바깥쪽으로 달리지만 한 뼘 공간마저도 없는 갓길이 태반이라서 차량들이 조심해서 비켜 가겠지 하는 마음뿐 달리 방법이 없다.

철로와 고속도로, 국도가 복잡하게 얽힌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긴 고가도로로 잘못 들어갔다가 고공에서 정면으로 쏜살같이 달려오는 대형 트럭들을 비집고 되돌아 나오느라 한참 동안 진땀을 뺐다.

종종 이정표를 보면 이쪽으로 가도 되고, 저쪽으로 가도 되는 갈림길이 있다. 선택 사항이다. 그러나 언덕이 있는지, 노면 상태가 어떤지, 차량들이 많은지, 구경거리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 어느 길로 가야 할까? 그건 마음 내키는 대로 간다. 가다가 좋은 일이 생기면 ‘이 길로 오길 잘했다.’라고 생각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아마도 저쪽 길은 더 어려웠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지류시의 우시다 인근을 지나가는 길에 과수원에서 금방 따왔다는 단감을 샀다. 알토란을 베어 무는 것 같이 사각거렸다.

▲지류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지류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9월 25일. 나고야 레오파레스 호텔의 아침은 태풍의 영향으로 빗줄기가 거세지고 바람에 날려 창문을 두드리는 낙숫물 소리가 유난히 낯설다.

그렇지 않아도 연일 라이딩으로 피로가 누적돼 오늘 하루는 쉬려 했는데 비가 오니 더 큰 보상을 받은 듯하다. 비가 내려도 나고야성 인증 샷은 찍어야겠지?

호텔 프런트에서 나고야성으로 가는 방법을 물으니 인쇄물을 꺼내 설명해 준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나고야 시청역에서 내려 7번 출구로 나왔다. 단풍잎 끝이 빨긋빨긋해지는 걸 보니 벌써 가을이 오는가 보다.

▲나고야.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나고야.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나고야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직전인 1592년에 대륙 침략의 전초 기지로 삼기 위해 이곳에 성을 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관광객을 안내하는 곳은 1615년에 세워졌다는 나고야성 혼마루 어전으로 올해 개축이 완공된 건물이었다.

노송나무 향이 감도는 건물 내부로 들어서니 호랑이 장벽화가 분위기를 압도했다. 건물 구석구석에 감시원들이 무릎을 딱 붙이고 마네킹처럼 앉아 있었다.


▲나고야.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나고야.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나고야성에서 호텔로 오는 길.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손님들에게 참 친절하다. 이 버스를 이용해 줘서 정말 고맙다는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역시 일본은 교통 선진국답게 큰 대로나 좁은 골목길이나, 밤이나 낮이나, 누가 보든 안 보든 간에 차량 정지선을 잘 지킨다.

줄 서는 거나 승강기 양보하는 거나,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행동하는 걸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도로와 도로 연결 부위도 턱이 지지 않도록 촘촘하게 잘 매만져 놓았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작은 질서들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융합되어 전체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이러한 빈틈없는 시스템에서 나오는 생산물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되어 선진국 소리를 듣는 것일 게다.

호텔에 돌아와 프런트 직원에게 이후의 여정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그런데 내일 숙박 예정 도시인 욧가이치시는 F1 세계자동차 경주대회로 인해 숙박 시설이 모두 동이 났다는 것이다.

또 그쪽 노선은 산이 높고 자전거가 갈 수 없는 자동차 전용 도로가 많아서 힘들다고 했다. 우린 다른 방안이 있는지를 묻고 도와 달라고 했다.

그러자 직원 넷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더니 교토로 돌아서 가는 대안을 우리에게 알려줬다.

우리는 그 우회 노선을 택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직원들이 모여 좋은 방안을 찾아보려고 긴 시간 동안 인터넷을 열고 지도책을 펴고 진지하게 논의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카와카미 히로유키 씨에게 감사하다. 그는 우리의 다음 도착 예정지인 오가키시의 오카상 호텔에 직접 전화 예약까지 해 주었다.

“좋은 정보 정말 고마워요. 여기 작은 기념품이에요.”
우리의 여행 소개서와 평창동계올림픽 기념 배지, 그리고 광복 70주년 기념 풍선에 공기를 불어 넣어줬다.

그들은 ‘감사하다’며 풍선에 새겨진 ‘화해와 배려’라고 새겨진 글과 여행 소개서를 읽어 내려갔다. 우리는 보다 진지한 얘기를 듣고 싶었는데 애써 무덤덤한 표정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일본에서의 언어 소통은 중국보다 좀 나은 편이었다. 젊었을 때 직장에서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을 따 놓긴 했지만 장롱 운전면허와 마찬가지였다.

써먹지도 못할 것을 왜 힘들여 공부했나 하는 후회도 했지만 이제 와서 이렇게라도 더듬더듬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조금은 보상받는 기분이다.

9월 27일. 오가키시 오카상 호텔을 떠나 히코네로 향했다. 지명 하코네와 히코네가 헷갈린다. 호텔을 나오자 이부키산이 바로 눈앞에 길게 펼쳐졌다.

구름이 이부키산 중턱에서 꼭대기로 서서히 올라가는 걸 보니 비가 그칠 모양이다. 우린 국도 1호선과 21호선을 번갈아 가며 달렸다. 오쓰 인근의 일본 전통 마을을 경유해 가는 길이 아름다웠다.

▲히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전거 하이킹을 가는 네 명의 젊은이들과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들은 앞서가던 우리를 휙 지나치며 ‘힘내세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한 손을 치켜들었다.

머지않아 그들은 쉬고 우리는 그들을 추월하고, 우리가 쉬면 그들이 다시 앞으로 추월하기를 반복하다가 이윽고 편의점 쉼터에서 그들과 한자리가 되었다.

“반가워요. 학생들 같은데 어디 여행 가나 봐요?”
“예, 저희 나고야시에 있는 메이조 대학생들이고요. 친구들이랑 나고야에서 히코네까지 가는 중입니다.”

“아, 다들 잘생겼어.”
싱글벙글 건들건들 마치 우리 집 애들 같이 대견스레 보였다.
“자전거 여행하시나 봐요?”

“한·중·일, 동북아 지역을 자전거로 횡단하고 있단다. 중국 시안을 출발해 베이징을 경유해 선양공항에서 비행기로 도쿄에 도착한 뒤 이곳까지 왔거든. 히로시마로 가는 중이야.”

“엑~! 중국 시안요?”
빨간 모자를 쓴 학생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다가서며 물었다.
“올해 뜻깊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서 동북아 지역을 횡단하고 있어. 여기 여행 소개서 한 번 읽어 볼래?”

학생들은 소개서를 읽어 보고 나서 제각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같이 사진 찍어요.”
“좋아요, 자 우리 다함께 김치~~”

청실홍실을 줬더니 받자마자 자전거 핸들에 질끈 동여맸다. 다른 학생들도 덩달아 따라했다.

“이건 청실홍실이라는 건데 소중한 인연을 상징하는 거란다. 새 신랑이 신부 집에 패물 보낼 때 함께 보내는 거지. 얼마나 귀한 선물이겠어? 우리 오늘 만나서 참 기쁘다.

아름답고 인정 많은 한국에 친구들과 놀러 오너라. 만일 오게 되면 전화하렴. 내가 길 안내라도 해 줄 테니.”
“한국 가면 맛있는 것도 사 주시나요?”
“물론, 사 주지. 삼겹살, 비빔밥도.”
우리를 뒤돌아보며 훌훌 떠나는 학생들의 뒷모습이 정겨웠다.

▲히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숙소에 들어와 페이스북을 열어 보니 이들 대학생으로부터 친구 신청이 와 있었다. 고난시 아이치현에 살고 있는 코키 이토라는 꺼벙하고 키 큰 친구였다. 자기 페이스북에 우리와 함께 찍은 사진과 글을 써 놓았다.

‘나고야에서 출발해 히코네까지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 도중에 도쿄에서 출발해 히로시마까지 도전 여행을 하고 있는 어떤 한국 부부를 우연히 만나 반가웠다. 그분들께 감사드린다.’라고.

▲히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히코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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