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나에게 대출 등을 강요해 빼앗아간 돈은 모두 2350만원입니다. 어리석었던 제 탓도 크지만, 사람의 나약한 마음을 이용하는 그들이 아직도 길거리에서 나와 같은 먹잇감들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울화통이 터집니다. 그들을 어찌 종교인이고 종교집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평범한 대학생인 박모(25) 씨. 그에게 지난 1년간의 시간은 악몽과도 같았다. 부모에게조차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억울하고 기막힌 사연은 지난해 9월 초부터 시작됐다.
경남 양산의 한 대학을 다니고 있던 박 씨가 ‘그들’을 만난 건 길거리였다. 양산 서창동 거리를 지나던 2명은 박 씨에게 다가와 “도를 믿으십니까?”라고 말을 걸었다.
낯선 이들이 말을 건네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박 씨는 “얼굴에 복이 많아 보인다. 진정한 효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며 다가서는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박 씨의 불행은 이날이 시작이었다.
일주일 가량이 지난 뒤 양산의 한 거리에서 또 다른 2인1조의 그들을 만났다. 기가 충만해 보인다며 같이 가지 않으면 집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에 결국 그들을 따라갔다.
박 씨가 그들과 함께 버스에서 내린 곳은 울산 성남동 우정지하차도 근처였다. 20분 정도 걸어서 회관 같은 4~5층 건물에 들어서자 그들은 “이곳이 공부방이다”라고 소개를 했다.
건물 바깥에 아무런 표시도 없는 그곳에서 박 씨는 제사비를 요구받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에 가지고 있던 5만 원을 건넸다.
박 씨가 그들의 지시에 따라 제사를 지낸 건 다음날 새벽 1시였다. 기운이 가장 깨끗한 시간이라며 그들이 믿는 신에게 절을 하게 했다. 그렇게 제사를 지내고 나자 조상과 근처의 악귀들을 천도하는 ‘터밟기’를 해야 한다며 21일 동안 그곳으로 나오게 했다.
그들은 박 씨에게 본인의 나이에 맞게 ‘나이비’를 내면 몸 상태가 좋아진다며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박 씨는 24만 원을 건넸다.
그들의 돈 요구는 점점 집요해지고 단위도 커졌다. “복을 지어야 한다. 조상들의 저승길에 노잣돈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에 좋지 않은 ‘업장’이 사라지지 않아 나쁜 일이 생긴다”며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까지 액수를 제시했다.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하던 박 씨는 그만한 돈이 없다고 계속해서 거절했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대출을 받으라는 제안이었다. 자신들이 잘 아는 곳이 있다며 소개하겠다고도 했다. 또 돈을 내지 않으면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사고도 발생한다고 겁을 주며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들은 박 씨가 군생활 동안 받아 저축해둔 350만 원도 가져갔다. 적금이 있으면 대출이 어렵다거나 귀신이 씐 ‘귀신돈’이어서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며 줄 것을 강요했다.
박 씨가 그들의 제안대로 대출을 처음 받은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그들이 전화로 연결해준 사람은 대부업체를 소개해주는 업체 대표였다. 그는 주민등록등본과 재학증명서, 통장기록내역서(3개월치)를 요구했다.
대출은 제3금융권 2군데에서 각각 500만 원과 600만 원이 이뤄졌다. 그들은 즉시 돈을 빼오라고 요구했다. 박 씨는 이틀에 걸쳐 현금자동인출기에서 1100만 원을 인출했고, 그들은 양산 서창동 주민센터 앞길에서 빼앗듯이 돈을 가져갔다. 제사를 지내는 데 사용하겠다는 말만 남겼다.
그들은 그 후로도 가끔 공중전화로 연락을 해왔다. 이자를 내면서 6개월이 지나면 더 싼 이자의 대환대출이 가능하다며 추가대출을 요구했다. 돈 갚는 것은 학생일 때는 이자를 내다 성인이 되면 갚을 수 있고, 조상의 은덕이 보살펴줘서 절대 말라죽게 하지는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 입에 풀칠은 할 수 있게 해준다는 해괴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해서 한 번 더 대환대출이 이뤄졌다. 기존 대출은 다른 저축은행 2곳으로 옮겼고, 또 다른 저축은행에서 900만 원을 추가로 대출했다. 대출 관련 서류도 그들이 마음대로 꾸며 ‘직장인 대출’ 형식으로 대출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돈이 어느 ‘공사’에 들어가는지와 기부금액 등에 대해 서류를 작성하게 하고 자발적 기부임을 증거로 남기기 위해 육성으로 녹음을 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그 후로는 연락이 뜸했으나 가끔 ‘도장참배’를 하라고 연락이 왔다. 더 큰 수련도장에서 주기적으로 수련을 하면 몸도 좋아지고 업장도 빨리 사라지며 조상천도도 더 잘된다고 했다.
또 제사비를 냈으니 ‘공사’에 사용된 내역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도장참배를 가자고 했다. 제사를 지낸 게 아니라 그들과 관련된 건물 등을 짓는 데 사용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리고는 다른 곳에서 연락이 왔다며 또 대환대출을 하자고 했다. 왜 더 큰 곳에서 대출을 하지 않았냐며 더 큰 금융권에서 더 큰 액수의 대환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거절했으나 강요는 집요하게 계속됐다. 이왕 대출을 했으니 3,000만원을 채우자고 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들어 박 씨가 부모에게 털어놓으며 알려졌다.
박 씨의 부모는 대출을 해준 저축은행에 전화를 걸어 대출과정에 대해 따져 물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들이 처음 대출과정에 개입했던 제3금융권 직원과 짜고 박 씨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꾸며 직장인 대출이 가능하도록 했던 것이다.
박 씨가 그들에게 빼앗긴 돈은 모두 2,350만원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매달 생활비 100만 원 중 원룸비 32만원을 내고, 대출이자 45만 원을 갚아왔다.
양산의 거주지 근처 인력소에 아르바이트 등록을 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도 했다. 공장에 파견을 가기도 했다. 종이공장에서도 일을 했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휴학을 한 뒤 공장에 취직할 생각도 했다. 모두 대출금을 갚기 위한 일이었다.
몸무게도 많이 줄었다. 어떻게든 돈을 모아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식사도 거르기 일쑤였다. 그러는 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고 피폐해졌다.
“순진한 대학생을 꾀어 돈을 빼앗은 그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들과 연결된 금융권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요.”
박 씨를 바라보는 부모의 눈길은 연민과 안타까움, 분노 등 온갖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섞여 있었다.
그런 부모의 눈을 마주볼 자신이 없어 인터뷰 내내 고개를 떨구고 있었던 박 씨가 지칭한 ‘그들’은 ‘대순진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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