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비정형 소해면상뇌증(BSE,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됐다.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발견된 광우병 소다.
그 직후, 한국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렇게 밝혔다.
"비정형 광우병은 8세 나이든 소에서 드물게 자연 발생하는 것으로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
다수 언론도 비슷한 논조였다. 정형 광우병이라면 위험하지만, 비정형 광우병이므로 안전하다는 투다.
그런데 한국에 쇠고기를 수출하는 나라에서 비정형 광우병이 발생한 건 처음이 아니다. 전에는 어땠나.
2012년 12월 20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자. "광우병 발생 브라질 쇠고기 수입 중단"이라는 기사다.
"정부가 광우병(BSE·소해면상뇌증)이 발생한 브라질산(産) 쇠고기 수입을 중단했다.
농림수산식품부 당국자는 19일 "세계동물보건기구(OIE)로부터 이달 8일 브라질의 광우병 발병 소식을 통보받았다"며 "브라질 측은 '비(非)정형 광우병'이라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국민 안전을 고려해 즉각 수입중단 조치를 내렸다"고 19일 밝혔다."
똑같은 '비정형 광우병'이다. 2012년엔, 한국 정부가 즉각 수입중단 조치를 내렸다. "'비정형 광우병'은 안전"하다는 브라질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2017년엔, "'비정형 광우병'이라서 안전"하다고 한다. 수입 중단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광우병이 발생하면 쇠고기 수입 중단' 약속, 왜 어기나
광우병 때문에 한국이 쇠고기 수입을 중단한 사례는 모두 3건이다. 2012년과 2015년 브라질 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했다. 또 2015년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했다. 브라질에서 두 차례 발생한 광우병은 비정형 광우병이었다. 2015년 캐나다에서 발생한 광우병은 정형 광우병이었다. 요컨대 한국은 정형 광우병이건, 비정형 광우병이건 일단 발생하면 쇠고기 수입을 중단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경우'만 예외다.
가축전염병예방법 32조 2항은 "(쇠고기) 수출국에서 소해면상뇌증(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한 경우에 대해 “일시적 수입 중단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2008년 촛불집회로 도입된 규정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 수출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즉시 중단하겠다’라는 대국민 광고를 했었다.
법 조항 및 광고 문구 모두 정형 광우병인지, 비정형 광우병인지를 구별하지 않았다. 정형이건, 비정형이건, 광우병이기만 하면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혹시 2008년 당시엔 비정형 광우병에 대해 몰랐던 걸까. 그 역시 아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건, 2003년, 2004년, 2006년, 2012년, 2017년이다. 이 가운데 2003년에 발생한 광우병만 정형 광우병이다. 나머지는 비정형 광우병이다. 그러므로 2008년 당시엔 정형 광우병과 비정형 광우병에 대해 모두 알고 있었다. 이는 2008년 당시 '광우병이 발생하면 쇠고기 수입 중단'이라는 정부 약속이 정형 광우병과 비정형 광우병에 대해 모두 적용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는 유독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만 2008년 당시 약속을 어기고 있다. 언론 역시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다.
비정형 광우병 원인 물질, 살코기에도 있다
'미국의 5번째 광우병 발생 사태에 대한 전문가 기자 설명회'가 26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살림 서울 교육장에서 열린 건 그래서였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 논리를 제공했던 전문가들이 다시 나서야 했던 것. 우석균 건강과 대안 부대표, 송기호 변호사,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조능희 전 <피디수첩>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지닌 전문가들이지만, 주장은 하나로 모아졌다. '브라질 및 캐나다산 쇠고기와 마찬가지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역시 잠정 중단해야 한다'라는 것.
우희종 교수는 '비정형 광우병은 안전하다'는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주로 쇠고기 수출 국가의 육류 업계가 하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들 나라 역시 보건 당국의 입장은 다르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육류 업계는 '비정형 광우병은 안전하다'고 단언한다. 반면 미국 농무부는 이에 대해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의 보건 및 식품 관련 기관은 '비정형 광우병도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이 가운데 한국 정부와 다수 언론은 가장 노골적인 이해관계를 지닌 입장을 받아들였다.
우 교수는 "비정형 광우병이 장차 발생할 광우병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우병의 원인 물질인 변형 프리온은 정형 광우병의 경우 중추신경계나 편도 등에 집중돼 있다. 반면 비정형 광우병은 질병이 발견되는 시기에 중추신경계는 물론 이미 말초신경과 근육에서도 변형 프리온이 발견된다"라고도 했다. 이는 살코기에서도 변형 프리온이 발견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소의 살코기는 안전하다는, 광우병 상식을 깨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과 일본은 비정형 광우병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정형 광우병은 장기간 증상 없이 진행된다는 점도 위험을 키우는 요소다.
우석균 부대표는 "비정형 광우병 역시 종간 장벽을 뛰어넘는 감염력"을 갖고 있다는 게 여러 동물실험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아울러 영장류 감염 실험에서도 감염력이 입증됐다고 했다.
"타이완처럼 내장과 분쇄육도 수입 금지해야"
미국의 광우병 감시 체계가 지닌 한계도 거론됐다. 홍하일 수의사는 이번에 발견된 광우병 소의 실제 나이조차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유럽과 일본, 한국 등이 시행하는 소에 대한 이력추적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아 감별로 나이를 측정하는데, 이는 부정확하다는 것. 아울러 역학조사마저 철저하지 않다. 실제로 2012년 미국에서 네 번째 광우병이 발견됐을 당시에도 원인을 밝히는 역학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었다. 이번에도 광우병 소가 어느 농장에서 어떤 사료를 먹고 자랐는지, 같이 자란 소들의 상태는 어떤지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송기호 변호사는 타이완(대만) 사례를 거론했다. 타이완은 201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을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에 광우병 위험물질 외에도 내장과 분쇄육 등 광우병위험물질이 포함되어있을 가능성이 있는 부위를 모두 포함시켰다.
내장이나 분쇄육 등은 독소를 분비하는 대장균인 O157등의 서식지로도 지목된다. 이른바 '햄버거병' 논란을 부른 햄버거 쇠고기 패티에도 들어간다.
송 변호사는 "한국도 국민 안전을 위해 타이완처럼 내장과 분쇄육 등 비위생적이며 광우병 위험이 있는 부위를 수입 금지 품목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광우병 발생국에서의 광우병 위험물질을 유럽처럼 법으로 명확히 지정하고, 민간업체의 자율이 아니라 국가 간의 협의로 관철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처럼 미국 육류 수출 업체가 위험 부위를 알아서 잘 걸러내기를 바라는 방식은, 벗어나야 한다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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