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표율이라는 객관적 성과만 놓고 본다면, 의석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통상적인 정당 지지율을 훨씬 상회하는 결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평가도 가능하다. 6.2 지방선거와 7.28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주된 선거 전략은 '반 이명박(MB) 연대'였다. 선거연합의 일차적 파트너를 민주당으로 놓고 협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민노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정체성을 일정 정도 포기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 민노당은 최근 2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분당 이후 최대 상승세를 타고 있다. 41세의 젊은 이정희 대표는 이런 새로운 기류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뉴시스 |
반면 민주당 텃밭인 광주 남구에서는 계속적으로 민주당의 양보를 요구하다가 민주당이 버티자 진보신당, 국민참여당과 비민주 선거연합을 먼저 이뤘다. 이후 민주당과 일 대 일 구도로 선거를 치렀으나 석패했다.
두 가지 평가 모두 어떤 측면에서는 유효하다. 어쨌든 지방선거와 재보선을 통해 몸값이 한껏 상승한 민노당이 어느 측면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진보진영, 더 나아가 야권의 세력 재편 흐름이 결정될 것이다.
"민주당과 연대에 우선…그러나 통합까지는 무리"
재보선 결과에 대한 민노당의 공식적인 평가는 "정치적 승리"라는 것이다. 우위영 대변인은 29일 논평을 통해 "광주 남구에서 비록 당선되지 못했지만, 5.18세대부터 광범위한 진보민주진영까지 하나가 되어 치룬 선거였고 유례없는 박빙구도를 형성함으로써 정치적 승리를 이루었다고 자부한다"고 평가했다.
민노당은 지난 2번의 선거에서 민주당과 연대를 통해 짭짤한 실리를 챙기고 민심도 얻었다. 독자노선을 선택한 진보신당이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것과는 상반된 결과였다. 이런 경험을 통해 민노당 내에선 민주당과 전략적 연대에 우선해야 한다는 기류가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민노당 관계자는 이번 재보선 결과에 대해 "광주 선거를 졌지만 일정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보여진다"며 "은평을처럼 (민주당에) 양보할 지역은 양보하고 광주 남구처럼 끝까지 합의가 안 되는 지역은 치열하게 싸우는 전략이 맞았다"고 말했다.
"재보선, '민주당 이상'을 원하는 민심 확인"
반면 이번 재보선에서 야권연대를 이룬 서울 은평을에서의 '처참한 패배'에 주목해 민주당이 아닌 진보진영간의 연대에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른 민노당 관계자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반MB연대'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정서와 맞물려 성과가 있었지만 이명박 정권 내내 써먹을 수 있는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재보선에서 장상 후보가 이재오 후보에게 큰 표차로 진 것은 '반MB'라고 해서 무조건 마음을 주는 게 아니라는 게 드러난 것"이라면서 "민주당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반MB연대'를 넘어선 진보진영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보신당 정종권 부대표도 "한나라당이나 MB 반대 심리로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게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야당이나 진보진영이 스스로 대안을 가진 집단이라는 신뢰를 주지 못할 경우 이번 재보선처럼 단일화가 별다른 효과를 가지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부대표는 "재보선 결과가 진보진영에 정확한 메시지를 준 것으로 풀이된다"며 "때로는 '반MB'도 해야 되지만 그게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이며, 민주당이 현재 모습대로 유지된다면 한나라당의 대안은 아니라는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그는 "'반MB연대'는 민주당 중심의 판"이라면서 "진보진영이 여기에 편승한다고 미래가 담보되지 않는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진영의 연합과 단결 필요성을 좀더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민 진보단일 후보, 0.5% 득표가 의미하는 바
진보정치세력이 재편을 고민해야할 이유 중 하나로 정 부대표는 은평을에서 사회당과 진보신당의 단일후보로 나선 금민 후보가 0.5%의 미미한 지지를 얻는데 그쳤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는 "금민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매우 역동적인 선거운동 등을 통해 노력했지만 사회당이라는 간판과 브랜드는 내용을 떠나 국민에게 체감되는 진보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 선거 결과"라면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이 각자의 길을 갔을 때 그 한계를 넘어서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 부대표는 민노당 내부에서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민주당과 연대에 우선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에 대해 "광주에서 민노당 간판으로 40%이상을 득표했지만 자력이라고 보긴 힘들다"며 "광주시민들이 '영남 한나라당'과 다르지 않은 민주당에 대한 대안 정치세력을 찾고 있던 민심과 맞물린 선거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재보선 결과 드러난 민심은 민주당 이상의 정치 세력에 대한 열망이라는 걸 읽어야 한다"며 "그 자리에 민노당이 자동적으로 설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오만이다. 진보진영이 그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재편하고 자리를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노당이 진보진영 제1당의 역할을 인식하고 좀더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민주당과 연대에만 치중하면서 진보 기득권에 안주할 경우 이번 재보선에서 '반MB연대' 전략 실패를 반복하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진보세력연대, 모두 동의하지만 현실은 '첩첩산중'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연대의 필요성은 양당 모두 시인하고 있다. 두 진보정당 뿐 아니라 사회당, 시민사회 등을 아우르는 좀 더 넓은 의미의 세력 재편은 진보진영 내에서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사안이다. 다만 연대의 범위(국민참여당까지 포괄할 것인가), 연대의 정도(선거연합 수준에 그칠 것이냐, 통합정당까지 갈 것이냐) 등에 있어 온도 차이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공식적인 당론은 '진보대통합'이다. 민노당을 중심으로 진보세력이 하나의 정당을 이루자는 것이다. 반면 진보신당은 '진보대연합'을 얘기하고 있다. 통합정당을 만드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인식이 당원들 사이에 지배적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유시민 참여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후보직을 사퇴한 심상정 전 대표에 대해 '1년간 당원권 정지'라는 결정이 내려진 것도 이런 기류를 보여준다. 다만 진보신당은 최근 '선거평가 및 당 발전 전략 수립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꾸려 논의 중인데, 이 자리에서 노회찬 대표는 "그동안 민노당의 통합 제안에 수세적 태도였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진보신당의 내부 정리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진보신당은 9월에 조기 전대를 열어 노회찬 대표가 조기 사퇴하고 10월에 새 당대표를 뽑는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을 통해 향후 당의 진로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선거 등 외부적 계기가 당분간 없다는 점에서 당의 진로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해질 가능성도 있다. 또 노회찬, 심상정이라는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두 정치인이 당 대표로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정치인이 '당의 얼굴'이 되는 것도 부담이다.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진보신당의 지지율은 1%대로 크게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무게감이 떨어지는 당 대표는 '떨어진 정치적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진보신당의 내부 수습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할 경우 진보세력 재편 논의도 '스톱'될 수밖에 없다. 민노당 내에서 '민주당과 경쟁적 파트너십'에 방점을 두는 이들은 이처럼 어지러운 진보신당의 상황을 얘기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