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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스윙했다 우스윙…출렁이는 표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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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좌스윙했다 우스윙…출렁이는 표심, 왜?

[의제27 '시선'] 한국 정치의 진자운동과 개혁과제

종잡을 수가 없다. 지난 6월 2일에 지방선거를 치렀다. 민주당의 대승(大勝)이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그만한 승리를 거둔 적은 이제껏 없었다. 더구나 전라·수도권뿐 아니라 강원, 충청, 경남에서까지 승리한 건 대단한 성과였다.

그런데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은 7월 28일에 치른 재보궐 선거에서 뒤집어진 결과가 나왔다. 한나라당이 8곳 중 5곳에서 승리했고,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정계로 당당히 복귀하는 무대가 됐다. 어떻게 된 걸까?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득표율이 높았던 지역에서 재보선을 치른 걸까? 만약 그랬다면 혼란스러울 게 없다. 일관투표자를 전제로 해서 합리적으로 설명이 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게 아니다.

이재오 후보가 당선된 은평구, 지난 지방선거에서 구청장부터 광역의원 4명 모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인천의 경우도 시장에 민주당 송영길 후보가 당선된 것은 물론, 계양구에서도 광역의원 4석을 모두 민주당 후보가 차지했다. 충주 시장엔 민주당 우건도 후보가 당선됐었고, 더구나 충주시는 민주당 이시종 신임 충북 지사의 고향이다. 충남도 마찬가지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충남 지사 후보로 나온 박해춘 후보는 민주당 안희정 당선자의 절반만큼도 득표하지 못했다. 그런데 두 달도 안 돼서 이 모든 곳에서 한나라당 압승이란다.

물론 여러 세부적 요인이 있을 것이고, 이미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이재오는 역시 셌고, 후보가 문제가 있었고, 후보단일화를 너무 늦게 했고, 선거 전략이 안이했고, 어디서는 투표율이 높았는데 패배했고, 어디서는 투표율이 낮았기 때문에 패배했고, 등등. 물론 무의미한 분석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나무 가지 숫자까지 다 세면서 산을 보지 못한다. 선거전략 문제에 시야가 갇혀서 한국 정당정치의 깊은 구조적 문제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 28일 착잡한 표정으로 개표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 ⓒ뉴시스
이걸 보지 못하면 개개 사건에 대해 합리적 설명을 제공하려는 모든 시도는 목적론적 환원의 오류에 빠진다. 민주당은 선거에 졌다. 그래서 이재오는 셌고, 장상 후보는 잘못된 선택이었고, 후보단일화는 늦었고, 정권심판 전략은 진부했다. 하지만 선거에 이겼다면? 이재오는 '왕의 남자'라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고, 장상 후보는 한명숙의 한을 풀었고, 후보단일화를 선거 직전에 터뜨린 게 유효했고, 국민의 정권심판 의지는 역시 강렬했다 하지 않았겠는가? 지금 필요한 건 이런 식의 사후적 합리화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오히려 2000년대 들어 계속된 표심의 진자운동, 그것의 의미, 그것이 요구하는 정치개혁의 과제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선 많은 사람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예상을 깨고 전국에서 민주당 등 야당 세력이 압승을 거둔 것이다. 7·28 재보선 역시 그랬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럭비공이 튄 방향이 반대쪽이라는 거다. 이런 극단적인 '예측불가능성'은 의미심장하다. 정치민심의 예측불가능성은 무엇보다 정당과 (예비)정치인들에게 불안 요소일 것이다. 여론조사기관이나 정치컨설팅 전문가들에게도 숙제일 것이다. 하지만 더 넓은 시야에서 본다면 이것은 한국 정치가 직면해 있는 구조적 위기에 관해 뭔가를 말해주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표피적 전략 분석이 아니라 정당들의 근본적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현상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정당정치는 더 이상 '그들만의 게임'이 아니게 되었다. 정당의 조직과 문화는 여전히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민주적인 선출제도가 정착되고 시민사회의 정치적 자의식과 자존감이 커져감에 따라, 정당들과 정치권력은 시민사회의 '스윙' 한 방에 쓰러지고 일어나는 일을 반복하게 됐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고 2004년 총선에선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했다. 불과 2년 뒤 2006년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났고,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거대 보수권력 구조가 완성됐다. 핵심 요인은?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능력과 방식에 대한 심판이란다. 그런데 2008년 총선 다음 달에 폭발한 촛불집회는 정권의 정당성 기반을 흔들어 놓았고, 2년 뒤 2010년 지방선거는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핵심 요인은?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능력과 방식에 대한 심판이란다. 그리고 두 달 후 재보선에서 우리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바로 그 지역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을 목격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거정치, 정당정치는 '변수'를 찾아내지 못할 만큼 우연성이 지배한다는 얘기인가? 그렇진 않다. 문제는 선거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점점 더 복잡해져 가고 있으며, 그 변수들 자체가 다른 국면적·우발적 변수에 의해 급변하는 변수라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점점 더 불확정적(contingent) 성격이 강해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정치체제의 불안정 요인이 될 수도 있고, 정치개혁을 위한 자극과 역동성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그 출발점은 지역균열의 약화 혹은 상대화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정치에선 1987년 민주화 이후 강한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지배해왔다. 하지만 2002년 대선을 계기로 지역균열은 이념균열, 세대균열 등의 변수와 중첩됐다. 출신 지역만 중요한 게 아니라, 진보 성향이냐 보수 성향이냐, 청장년층이냐 중노년층이냐에 따라 투표 성향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균열에 의해 참여정부-열린우리당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는 정반대 의미에서 지역주의가 상대화됐다. 경상도뿐 아니라 다른 대도시, 특히 수도권에서 보수 성향이 강력해졌다. 이는 출신지역주의라는 온정적 차원이 거주지역주의라는 합리적 차원과 결합되었음을 뜻한다.

이처럼 지역균열은 한국정치에서 여전히 중요한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이념균열과 세대균열, 경제적 동기 등 다른 변수들에 의해 그 상대적 영향력이 달라졌다. 지난 6·2 지방선거는 다시 한 번 지역균열의 약화를 확인해줬다. 민주당은 전통적 지역기반인 전라도뿐 아니라, 서울·수도권과 강원·충청 지역 등에서 승리를 거뒀다. 두 달 뒤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다시 전세를 뒤집은 지역이 바로 이 지역이다. 지역균열의 본거지인 경상·전라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선거정치는 점점 더 예측불가능하게 되고 있다. 왜일까? 지역균열은 대단히 구조화되어 있는 데 반해, 다른 균열들은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현대적 정당정치의 역사가 깊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계급·인종·종교·정당일체감 등 사회적 균열이 비교적 고착돼있고 그것이 투표성향으로 꽤 표현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념과 세대, 경제적 동기 등에 의한 투표성향이 변화무쌍하다. 말하자면 어제 진보였던 사람이 내일도 그러하리라 단언할 수 없으며, 어떤 연령층이 항상 진보적 혹은 보수적이라 말할 수 없으며, 경제적 계급위치가 투표 성향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고하고 일관된 지역투표, 이념투표, 정당투표를 하는 시민층을 제외한 다수 시민들에게 대한민국의 정당들은 다 거기가 거기로 보인다. 모든 정당에 무관심해질 수도 있고, 이 당에서 저 당으로 지지를 옮기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어떤 정당에 실망하고 분노하면 다른 정당에 쉽게 권력을 줬다가, 거기서 또 실망과 분노가 깊어지면 버렸던 정당을 다시 불러들인다. 한국정치에서 지난 선거 결과로 다음 선거를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 거시적 갈등구조로부터 선거민심을 유추해내기 어려운 이유, 선거 직전 돌발 변수나 후보·동원·유세 전략 등 국면적인 요인들이 전체 권력구조를 이리저리 흔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한국정치가 진자운동을 계속 하는 근본 원인은 정당정치가 시민사회 내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정당들은 반복적으로 시민사회의 표심에 '떠밀려' 권력을 얻고 잃어 왔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민심의 힘을 알고, 그에 상응하는 제스처를 취할 줄도 안다. 하지만 정당들은 매번 진정성 없는 감사와 사죄의 멘트만 날릴 뿐, 아직까지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 이들의 메시지를 감지하는 '센서', 이들의 인정과 신뢰를 이끌어내기 위한 자기혁신의 '비전'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어느 정당도 시민사회 내에 폭넓고 안정된 자기 기반을 갖고 있지 못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정당일체감과 정치적 균열구조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도·진보 성향의 정당들이 그러하다. 이 정당들은 자신의 주된 지지기반이 되어 온 사회세력, 즉 진보적 가치지향을 가진, 20~40대 연령층, 화이트칼라 계층, (최근에는) 저소득·저자산 계층을 확고한 기반으로 다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주면 추는 '좌스윙', 이들이 이탈하거나 침묵하면 추는 '우스윙'한다.

그런데 정당들이 이들과 교감하지 못하고 있으니, 정치 다이내믹은 시민들 자신이 바람을 일으키느냐 아니냐에 좌우된다. 한국 정치는 '두 트랙'으로 굴러가고 있다. 정당정치와 시민정치가 별개의 궤도로 움직이면서, 때론 만나 어울리고 때론 충돌하여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 양자가 하나의 궤도를 돌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따로 돌면서도 대화가 있어야 하고 상호계몽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게 안 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지난 10년 동안 한나라당과 민주당(열린우리당)이라는 양대 정당이 보여준 둔감·불변·구태의 책임이 크다. 양당은 1990년대 말 이후 한국인들의 일상을 괴롭히고 있는 청년실업, 비정규직 확대, 교육 불평등, 자산 불평등, 노후 불안 등 근본 문제를 진정성을 갖고 의제화하고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당이 미워지면 마지못해 제1야당에 권력을 주고, 그 당이 여당이 되면 반대 방향으로 추를 민다. 2006년 지방선거에선 한나라당이 독식하다시피 했지만, '한나라당이 좋아서' 찍었다는 사람은 7% 밖에 안 됐다. 70% 이상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국정운영 능력과 방식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진자가 반대쪽을 때린 것뿐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가야 할 것인가? 자극이 왔다면 반응이 있어야 한다. 7·28 재보선 직후 민주당은 '안일했던 것이 사실이다'라고 인정했다. 어떤 의미에서 안일했다는 것인가? 만약 단지 선거운동을 게을리 했다거나 전략이 부적절했다는 의미에서라면 문제를 표피에서만 이해한 것이다. 민주당은 근본부터 쇄신되어야 한다. 인적으로 훨씬 더 젊어져야 하고, 원외에 있는 유능한 정치 인력을 영입해야 하고, 사회경제적 이슈에서 더 개혁적으로 되어야 하고, 이제는 정말 중장기적인 국가개혁 비전과 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번 재보선의 최대의 성과는 어쩌면 이정희 대표가 이끄는 민주노동당이 보여준 가능성이다. 민주당 지역기반의 핵이라 할 수 있는 광주에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의 턱 바로 밑에까지 올라왔다. 젊고 역동적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미래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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