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론' 뛰어 넘은 '일꾼론'
은평을 지역은 이번 7.28 재보선이 치러진 8개 선거구 중에서도 야당 정서가 강한 지역으로 분류된 바 있다. 지난 총선에서는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지역구 3선인 이재오 의원을 무려 11.2%포인트 차이로 누르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지방선거에서도 야당인 민주당에 표를 몰아줬다. 이 지역의 잠정 투표율이 평균치를 훌쩍 뛰어넘는 40.5%로 집계되자, 민주당 측에서는 "이재오를 눌렀다"는 성급한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은평을 민심의 선택은 이재오였다. 무엇보다 '정권의 실세', '이명박 정부의 2인자' 이미지를 의식적으로 탈피한 이 후보의 '지역일꾼론'의 승리라는 평가다. 이 후보는 선거운동 초반 "나를 이재오 개인이 아닌 정권의 후보로 보는 눈이 참 부담스럽다"고 토로한 바 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이 후보는 "은평을은 내 삶의 모든 것"이라며 토박이 정서에 호소하는 데 집중했다.
동정론도 주효했다. 출마선언 직후부터 한나라당 지도부의 지원 유세를 모두 물리치고 지역구민들과의 면(面)대 면 접촉을 통한 저인망식 선거운동을 선언했던 이재오 후보다. 민주당 장상 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 후보를 뽑겠다는 유권자들 중에서도 '이재오 씨가 참 안됐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지역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도 "'나홀로 선거운동'을 내세우면서 동정론에 호소하는 한편 '정권의 2인자'라는 식의 프레임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전략이 먹힌 것 같다"고 했다.
이와 함께 야권의 후보 단일화 전략의 한계도 여지없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은평을뿐만 아니라 민주당 후보로 단일화가 성사된 충북 충주에서도 야권은 패배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후보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 단일화'가 곧 승리의 공식일 수는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철저하게 '홀로서기'를 선언했던 만큼 화려한 재기의 정치적 성과도 온전하게 이재오 후보 개인의 몫으로 남았다. 한 친이(親李)계 의원은 "재보선 이전까지의 이재오 선배와 이후의 이재오 선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 본인도 "내 정치 인생에서 지금까지가 1막이었다면, 선거 이후부터는 2막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었다.
당장 정치권에서는 "단순한 군기반장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명실상부한 '실세 정치인'으로서의 공간이 열렸다"는 관전평이 나온다. 안상수 체제 출범 이후 흔들리고 있는 한나라당의 리더십 부재가 곧 이재오 후보로서는 만만치 않은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 홈페이지. |
계파갈등 고조될 듯…'권력사유화' 논란도 2라운드?
물론 어떤 의미에서 그의 가시밭길은 지금부터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친박(親朴)계와의 계파갈등은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이 후보는 출마선언과 함께 "내가 다시 어느 계파의 수장이 되고, 갈등의 중심에 서는 일은 없다"고 목소리는 높였지만, 그의 화려한 귀환을 바라보는 친박계의 시각은 편치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재오 후보를 중심으로 친이 진영이 결집한다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될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 플랜에 만만치않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 전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는 지역에서 이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진행하기까지 했다.
정치권의 최대 쟁점인 영포회-권력사유화 논란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전망이다. 이재오 후보와 정두언 의원은 지난 총선 직전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퇴진을 요구하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재오-정두언 등 수도권 친이계와 이상득-박영준 영남 친이계 사이의 권력 갈등과 이를 중심으로 한 친이계의 분화가 촉진될 공산이 커졌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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