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설프다. 특정 정당 후보를 찾아가 격려를 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것인데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었다"고 손사래 친들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람은 상대방의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는 법이다.
그래서 엄기영 전 사장의 말보다 강원도 현지에서 전해지는 말이 더 신빙성 있게 들린다. 한나라당 후보 선거운동원이 했다는 말이다. "지역에선 (엄기영 전 사장이) 강원지사를 노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말이다.
이 말에 따르면 엄기영 전 사장의 '개인적 격려'는 '도장 찍기'이자 '간보기'다. 한나라당 후보 격려를 빌미로 강원 주민에 '얼굴도장'을 찍고 현지 여론을 떠보려는 행위다.
▲ 엄기영 전 MBC 사장이 2월 8일 사퇴 의사를 밝힌 후 방문진 이사회가 열린 롯데호텔을 떠나고 있다. ⓒ연합 |
묻지 말자. 이광재 강원지사에 대한 상고심은 아직 열리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몸을 푸냐고 되묻지 말자. 정치 경쟁력은 순간의 기회와 조그만 틈새를 낚아채는 데서 좌우된다고 하니까 엄기영 전 사장은 정석 플레이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또한 묻지 말자. 강원지사에 출마해도 왜 하필 한나라당 후보냐고 되묻지 말자. 6.2지방선거에서 분 이광재·민주당 바람은 일시적인 것일지도 모르니까, 강원도는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강세지역이었으니까 엄기영 전 사장은 길게 보고 튼튼한 동아줄을 잡으려는 건지도 모른다.
정색하고 물어야 할 건 엄기영 전 사장의 출마 전략이 아니라 출마 정당성이다.
엄기영 전 사장이 정말 출마한다면 그는 두 가지 도리를 어기게 된다. 자신이 사장으로 있던 MBC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고, 언론계의 공감대를 팽개치는 것이다.
엄기영 전 사장의 사퇴로 촉발된 MBC 사태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노조위원장은 해고됐고 노조 조직은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인사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마당에 엄기영 전 사장이 정치 행보를 그으면 MBC노조가 '조인트'를 맞는다. 정치적 사유로 사장직에서 밀려났다고 평가되는 사람이 그런 정치 외풍에 항의하고 항거하기는커녕 가해 집단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는 정당에 의탁하면 MBC사태가 블랙 코미디가 된다. MBC 사장 출신이, 그것도 정치적 외풍 때문에 사퇴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방송 독립 저해 요소의 인자가 되면 방송 독립을 외치는 MBC 후배들의 목이 쉰다.
그가 민주당에 몸을 의탁해도, '야당 투사'가 되어 방송사에 대한 정치 외풍 차단에 나서겠노라고 선언해도 시선이 곱지 않을 판이었다. 방송 독립은 정치적 방법이 아니라 방송 본연의 정신과 터전 위에서 구현하는 것이기에 그의 정치 명분은 자기 합리화를 위한 언사로 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판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엄기영 전 사장이 정말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면 그는 또 하나의 윤리를 어기게 된다. 언론인의 직업윤리다. '폴리널리스트'의 폐해가 극심한 점을 감안해 언론인이 정계에 진출하더라도 2~3년의 유예기간을 두자는 언론계의 공감대를 팽개치는 것이다.
뒤를 보고 앞을 봐도 마찬가지다. 엄기영 전 사장이 한나라당 강원지사 후보가 되면 그는 어떤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한다. 은퇴 대안형 출마, 노후 대비용 출마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다. '개인적인' 출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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