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주요 보수 언론과 경제지들이 이같은 논리를 내세워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을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겪고 있는 위기의 근원이 최저임금 인상은 아니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소상공인, 자영업자 위기는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 위축, 무차별적 시장 진입으로 인한 과잉 공급, 그리고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 '갑'으로 대표되는 시장 생태계 강자들의 착취에 있다. 이른바 '갑질'이다.
이처럼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한채 소상공인, 자영업자 위기의 원인이 최저임금 인상인양 호도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골목상권 문제의 고질적 병폐인 가맹본부의 '갑질'에 대해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자영업자인 점주가 가맹본부의 폭리로 인해 적은 수입에 허덕이는 상황을 시정하기 위함이다.
지난 16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가 자영업자 보호 종합 대책을 발표한 후 18일 법무부가 부처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공정거래위원회까지 가맹사업 폐단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과도 맞물리는 소득 기반 성장 촉진 대책으로 볼 수 있다. 본사가 취하는 폭리를 줄이고, 점주의 정당한 이익을 늘리면 자연스럽게 알바들에 대한 정당한 임금 지급이 가능할 수 있다.
최근 회장의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진 미스터피자 사태와 같은 일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정부가 노사간 적극 중재자로 나서 부응하는 한편, 이에 따른 자영업자 우려 해소를 위해 각 부처 합작으로 자영업자 보호에 본격적으로 나선 모양새다.
50개 가맹본부 필수물품 상세 내역, 마진 공개 조치
김밥전문 브랜드 A는 시중에서 3만 원대에 구입 가능한 특정 브랜드 쌀(20㎏)을 가맹점주에게 5만 원대에 공급하며 폭리를 취했다. 계약체결 당시 관련 가격 정보는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최근 A 브랜드는 가맹본부와 점주간 가격 분쟁이 과열되는 상황이다.
피자전문 브랜드 B는 식자재 폭리에 대응하기 위해 가맹점주들이 단체를 구성해 항의하자, 표적 점검을 통해 가맹점주협의회 대표와의 가맹계약을 해지했다.
이같은 '갑질' 근절을 목표로 공정위가 가맹본부 규제 종합대책을 18일 발표했다. 공정위는 김상조 위원장 취임 후 특히 프랜차이즈 문제를 우선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공정위 대책을 보면, 정보공개 강화 방안이 우선 눈에 띈다. 공정위는 관련 시행령을 올해 말까지 개정해 필수물품 가격 분쟁 해소를 위해 정보공개서의 필수물품 의무 기재사항을 대폭 확대토록 했다. 아울러 가맹본부가 납품업체 등으로부터 받는 리베이트 등 각종 대가, 물품 공급·유통 등 가맹사업 과정에 참여하는 특수관계인 관련 정보도 공개토록 했다.
또 피자·제빵 등 대표적 프랜차이즈 외식업종 주요 50개 가맹본부의 필수물품 상세 내역과 마진 규모를 공개하고, 가맹점 필수물품 구입 비중도 공개한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공정위는 또 공정거래협약 평가 기준에 마진율 인하·인건비 지원 등 상생 노력을 포함하고 배점을 높여 인센티브를 부여키로 했다.
가맹본부 필수물품이란 가맹본부가 가맹사업의 통일성 유지 명목으로 가맹점주에게 직접 공급하는 물품이다. 지난해 서울시 실태조사 기준 가맹점주 구입물품 중 필수물품 비중은 87.4%에 달한다.
'음식점 가맹사업이 실은 장치 산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필수물품은 가맹사업의 갑질 논란을 규정하는 핵심 항목이다. 가맹본부는 각종 기자재, 음식 원재료 등을 정해진 품목만 사도록 강제하는데, 이 과정에서 매입단가에 마진을 붙여 가맹금을 수취해 이익을 남긴다.
하지만 마진 규모 등의 정보 대부분이 사전에 제공되지 않아 가맹점주는 실제 어느 정도 비용 부담을 지는지를 확인하기 어렵다. 비용부담 문제와 밀접히 연관되는 부분에서 가맹점주는 비용 예측이 쉽지 않은 부분이다.
이와 관련, 공정위에 따르면 떡볶이전문 브랜드 C는 가맹본부 대표가 가맹점의 인테리어 시공 및 식자재 공급과 관련해 독점권을 주는 조건으로 납품업체 등으로부터 수십억 원의 리베이트를 수령한 사실이 드러나 대표가 배임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해당 리베이트는 가맹점의 비용에 그대로 전가된 사실이 드러나 추가 논란을 낳았다.
가맹점주가 부당한 비용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추가로 진 셈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외식업종 가맹점의 평균 영업이익율은 16.94%로 비 가맹점(18.38%)보다 낮았다.
최저임금 오를 시 가맹점주, 본부와 공급가격 조정 가능
공정위는 가맹점주의 협상력을 높이는 대책 마련에도 나섰다. 최저임금이 오를 경우 가맹점주가 인상률 등을 반영해 필수물품 공급 가격 등의 조정을 가맹본부에 요구 가능토록 표준가맹계약서를 올해 말까지 개정하겠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가맹점주의 협상력 강화를 위해 가맹점사업자단체 신고제를 도입하겠다고도 밝혔다. 해당 내용이 담긴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현재는 가맹점단체의 협의 요청이 있어도 가맹본부가 단체의 대표성을 이유로 협의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맹점단체가 행정기관 신고만 하면 공식적으로 지위를 인정받도록 한 것이다.
가맹점 갑질 사례의 대표격인 강제적 판촉행사는 가맹점주의 사전 동의를 의무화해 부작용을 줄이겠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공정위는 아울러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에 보복하는 걸 금지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는 가맹사업법 개정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가맹점사업자단체 활동에 관한 보복만 금지하는데, 앞으로 가맹점주의 가맹본부 신고·분쟁조정신청·서면실태조사협조에 관한 보복도 금지하고, 형벌규정도 도입한다는 게 골자다.
보복조치 금지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도록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도 포함한다고 공정위는 덧붙였다.
가맹점주의 피해방지수단도 확대한다.
우선 공정위는 가맹본부와 가맹본부 임원의 위법·부도덕한 행위 등으로 인해 가맹점주가 피해를 입을 경우, 가맹점주가 가맹본부에 배상책임을 요구토록 가맹계약서에 관련 내용 기재를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편의점 등 가맹점주가 심야영업으로 인해 직전 3개월 간 영업 손실을 입었거나, 질병 등의 불가피한 사유로 심야영업이 어려울 경우 가맹점 영업시간 단축을 허용하는 방안으로 시행령을 개정한다고도 했다.
아울러 신고포상금 제도를 도입하고 가맹본부의 허위·과장 정보제공 행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가맹점주의 피해를 방지하고 대응력도 키우도록 했다고 공정위는 덧붙였다.
올해 중 외식업종 필수물품 구입 강제 실태점검
공정위는 또 올해 안에 외식업종 필수물품 구입 강제 실태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행주나 세제 등 브랜드 통일성 유지와 무관한 품목까지 구입을 강제하는 관행을 개선한다는 이유다.
아울러 공정위는 서울시, 경기도와 협력해 외식업 가맹점 2000곳을 방문, 외식업종 정보공개제도 준수 실태에 관한 현장 심층조사도 실시한다. 가맹금·평균매출액·인테리어 비용 등 주요 항목에 관해 정보공개 기재사항과 실제 가맹점 현장을 대조 점검할 계획이다.
점검 결과 위반 행위가 적발된 가맹본부는 정보공개서 등록을 취소하는 등의 조치가 예상된다.
공정위는 부족한 집행력 보완을 위해 시·도 지자체와도 적극 협력한다고 밝혔다.
우선 현장에서 법 위반 사항을 확인 후 신속히 조치 가능한 유형은 시·도지사가 직접 조사할 수 있도록 집행체계를 개편한다.
또 법 집행절차와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시·도지사가 조사한 사건은 공정위 심결 없이 직접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한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이와 관련, 공정위는 "공정위의 가맹분야 전담 인력은 1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 반해, 지난 8년간 가맹본부는 4배, 가맹점주는 2배 증가했고, 이에 따라 신고건수도 2배 이상 폭증했다"며 "가맹분야 인력이 확충되지 않아 집행력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2008년 당시 247건이던 신고건수는 지난해 511건으로 증가했다. 이 기간 신고건수 증가율은 206.9%에 달한다.
공정위는 조정원과도 가맹분야 업무연계를 강화한다. 조정원이 가맹분야 조정신청·처리 결과 등 빅데이터를 분석해 공정위로 건네면, 공정위가 이를 직권조사·제도개선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달 중에는 가맹점사업자 보호 옴부즈만 제도도 도입한다. 가맹본부의 법 위반혐의를 더 효과적으로 감시해 신속 대응하기 위해서다.
공정위는 "치킨·피자·제빵 등 생활경제와 밀접한 분야 가맹본부의 불공정행태가 계속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며 "가맹점이 예비창업자를 위한 양질 일자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가맹본부의 불공정관행 근절과 상생문화 확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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