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상황이 그렇다. 불법사찰의 주체가 넓어지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이어 국정원(정두언 사찰)이 등장하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정부의 모 기관'(정태근 사찰)까지 등장한다. 불법사찰의 대상 또한 넓어지고 있다. '친노'에서 '반 이상득파'로 대상이 넓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문제제기는 상식을 획득한다. 사정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해 반 이상득파에 대해 불법사찰을 할 정도면 친박계에 대해서는 오죽했을까 라는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하고도 남을 만하다.
정황도 있었다. 세종시 갈등이 꼭짓점에 이르렀던 지난 2월 홍사덕 의원은 "의원 누구에 대해 마치 무슨 흠이 있는 듯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위협을 한다"고 주장한 바 있고, 이성헌 의원도 "박근혜 전 대표가 모 종파의 스님과 식사를 한 뒤 정부기관에서 스님을 찾아와 내용을 캐물었다고 한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수도권의 한 친박 의원은 "나도 사정기관 쪽에서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받은 적이 있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친박 의원은 "세종시 원안 추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4~5명의 의원들이 뒷조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친박계는 입도 벙긋 안 한다. 사찰 당하고 핍박 받는 계파 이미지를 부각하고도 남을 법한데 입을 씻고 있다. 오히려 거꾸로다. 이성헌 의원이 불법사찰 내용을 민주당에 제보한 당사자로 김유환 총리실 정무실장을 지목하면서 힐난했다.
이유가 뭘까? 계파 수장마저 뒷조사를 당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불법사찰을 근절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이유가 뭘까?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연합 |
좀 더 확대 해석한다면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불법사찰 파문으로 궁지에 몰린 쪽은 이상득 의원을 필두로 하는 영남라인인 반면 기세를 잡은 쪽은 수도권 라인이다. 친박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쪽이 궁지에 몰린 반면 상대적으로 강경한 쪽이 기세를 잡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계가 불법사찰 문제를 정면에서 거론해 파장을 키우면 결과적으로 경쟁그룹의 입지만 키워준다.
친박계로선 지켜보고 기다리는 게 낫다. 검찰이 수사한다고는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의 속살을 건드리는 것이기에 끝을 보기 힘들 것이라고 간주한다면 사생결단하는 것보다 어부지리를 취하는 게 정치적으로 이득이라고 판단할 만하다. 괜히 나섰다가 친박계의 뒷조사 내역이 시시콜콜 드러나는 것보다 그게 이윤을 백 배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할 만하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검찰이 끝을 보지 못한 문제이고, 그래서 특검제 도입 문제까지 나오면서 내연상태로 오래 지속될 문제가 불법사찰 건이라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친이계의 갈등과 분화를 지켜보다가 여의치 않으면 친박계가 주도권을 거머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친박계가 친이계와,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대회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법사찰 문제를 다시 꺼내들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보면 불법사찰 문제는 친박계에게 꽃놀이패다. 아껴둘수록 쓰임새가 높아지는 꽃놀이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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