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프런트에 내려가 요점을 적은 번역기를 보여줬다.
“선양국제공항까지 자전거 두 대를 싣고 갈 차량을 구하려고 합니다.”
여직원은 우리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는 이해하는 눈치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옆자리 동료한테 물어도 보고, 칸막이 뒷자리 직원들과 상의도 해 본 결과 방법을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흐음, 그럼 어쩌지? 경찰서에 가 볼까, 차량 렌탈 회사를 찾아가 볼까? 무작정 대주점을 나와 대로를 따라 그냥 걸었다. 걷다 보니 저만치 후루다오 시청이 눈에 띄었다. 그렇지. 민원실에 가서 물어보자.
‘흐음, 모두들 수고 많아요. 그렇지, 민원인한테 인사성도 밝고. 이 부서 책임자가 누구요? 다름 아니라 나는 대한민국 원주시 부시장을 역임하고 작년에 명예 퇴임을 한 사람이요.
흐음, 승합차 한 대를 빌리려고 하는데 좋은 방법을 알려 주시오. 모레 새벽 4시까지 내가 묵고 있는 숙소로 차를 보내시오. 알아들었어요? 이거 대답이 시원찮아….’
우린 시청 현관을 들어서다가 말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다시 한참을 걸어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아직 점심때가 되지 않았는데 닭튀김 집에 들어가 통닭 한 마리와 맥주 두 병을 단숨에 들이켰다. 하는 일 없이 목이 탔다.
“어제 갔던 그 자전거 가게에 가서 물어봐요.” 추니의 의견이다.
“거기 또 한 번 가 볼까?”
10분 걸려 자이언트 판매점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니 마침 빡빡머리 주인이 가게에 있었다. 다시 만나니 오랜 친구처럼 반가웠다.
“오늘 날씨 좋다. 밥 먹었냐. 바쁘냐. 어제 그 잘생긴 아들은 어디 갔냐.”
역시 대화하기 편하고 좋다. 우리는 뭐 좀 물어볼 게 있다며 주인에게 요점을 적은 번역기를 보여줬다.
주인은 요점을 읽고 나서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내 친구, 믿을 수 있는 친군데 조금 이따가 이곳으로 차를 갖고 온다. 상의해 보자.”
상황이 급진전됐다.
“그 번역기를 입에 대 봐요.”
“자 말하세요.”
“이 번역기 나도 좀 할 수 있게 다운로드해 주세요.”
“오케이 그거야 간단하지. 후훗.”
인터넷을 연결해 앱을 다운로드 해서 줬더니 엄청 좋아한다. 잠시 후, 친구가 작은 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적정한 비용을 지불하기로 하고 선양공항 가는 차량 렌트 문제를 풀었다. 무한 친절 임장복 사장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표한다.
자전거 박스를 구하고 차량 문제가 해결되자 곧바로 일본에서 첫 사흘간 묵을 호텔 예약을 국내 여행사에 메일로 부탁했다. 그러나 나리타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 자전거를 가져가는 게 문제다.
국내 여행사를 통해 알아봤는데 승합차량 렌탈 비용이 칠십만 원이란다. 일본에서 저렴하고 친절하기로 소문 난 MK 택시를 알아봤지만 그것도 역시 오십만 원이다.
공항 리무진을 이용하면 저렴하지만 호텔 인근에 하차해서 짐을 다시 호텔로 들고 가는 불편함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비록 경비가 좀 들더라도 박스에 포장한 상태로 호텔까지 가져가야 느긋하게 조립도 하고 출발이 순조로울 텐데 걱정이다.
만일 안 되면 공항에서 자전거를 조립해 시내까지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원주 동료한테서 전화가 왔다. 친구 동생과 아는 사이인 이케다라는 일본 분이 도와주겠다며 차량 사진도 카톡으로 보내왔다.
“와! 승합 차량, 이거면 되겠다.” 좀처럼 풀리지 않던 차량 문제가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풀렸다. 휴우~ 감사하다.
전자우편으로 받은 항공권을 출력하려고 주점 프런트에 내려갔는데 안 된다고 한다.
“프린트 기기가 저기 있는데 왜 안 되죠?”
출력이 안 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꽤 힘들었다. 직원들은 프린트 기기를 복사기로만 사용하고 있고, 인터넷과 연결된 컴퓨터는 별도 사무실에 있는 상사의 컴퓨터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들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상사를 좀 불러 주세요. 내가 직접 부탁을 좀 해 볼게요.”
“알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잠시 후 다른 곳에 가 있는 상사를 불러와 다시 설명을 하고 나서 항공권 두 장을 출력했다.
9월 13일. 자전거 동북아 대장정의 중국 여정이 끝났다. 우린 산시성 시안을 출발한 지 43일 만에 타이항 산맥을 넘고, 황하 유역을 가로질러 2,200km를 달려 랴오닝성 선양국제공항으로 가고 있다. 그야말로 한여름 밤 한바탕 꿈을 꾼 것만 같다.
오전 7시. 중국 선양국제공항에 도착해 아나항공(전일본항공)에 짐을 부치려고 줄을 섰는데 항공사 여직원이 다가오더니 줄자를 꺼내 자전거 박스의 가로 세로 높이를 잰다.
“짐 크기가 규정을 초과합니다. 삼십만 원의 비용을 더 내야 합니다.”
헉! 이게 웬일?
“한 달 전 대한항공으로 중국에 올 때는 괜찮았는데요.”
“거긴 대한항공이고, 여긴 아나항공입니다.”
이런! 항공사별로 짐 규격 제한이 다른 모양이다. 이거 어쩌지? 우리의 소개서를 꺼내 보여줬다.
“우리는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하고 있어요. 작년에 유럽 5개국 횡단에 이어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한 번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여직원은 잠깐 기다리라며 우리의 여권과 소개서를 들고 안쪽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여러 명과 토의를 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규정에는 어긋나지만 그냥 통과해 드리기로 했어요.”
여직원은 아예 우리의 좌석 번호까지 미리 출력해서 나왔다.
“짐 부치는 일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저쪽 남자 분을 따라가십시오.”
에구~ 길게 줄 안서도 되겠다. 하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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