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변화 대신 '안정'을 택한 이번 전당대회의 최고 승리자는 나 최고위원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인지도가 높은 탓에 "여성 몫은 따놓았고 잘 하면 5위 안에도 들 수 있지 않겠냐"는 전망이 있긴 했지만 친이직계 이슈 메이커 정두언, 친박이자 영남 대표격인 서병수 두 사람을 제치고 3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일반 여론조사에서 나 의원은 23.9%를 얻어 홍준표, 안상수 두 사람을 다 따돌리고 1위를 기록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소장파 대표격으로 원희룡 의원이 최고위원회에 입성한 적이 있지만 이 정도 성적은 아니었다. 송영길, 안희정 등 비슷한 연배의 민주당 광역단체장들이 최고위원을 거쳤지만, 나 최고위원은 이번 전대를 거쳐 '비운동권 386' 가운데 여야 남녀를 통틀어 독보적 위치에 올랐다.
비슷한 연배인 김두관, 송영길, 안희정, 이광재 등 야당 광역단체장들과 더불어 차차기 주자군으로 꼽힐 만한 성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 정도면 더 이상 외모 덕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 14일 전당대회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는 나경원 최고위원. ⓒ뉴시스 |
"흥행카드로 띄웠다? 그 말 믿고 나갈 수 있었겠나"
나 최고위원의 저력은 이미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단초가 보였다. 오세훈 시장에게는 역부족임을 확인했지만 앞선 단일화 경쟁에서 한나라당 내 원조소장파의 대표격인 3선의 원희룡 의원을 꺾는 파란을 일으킨 것. 특히 이 과정에서 원 의원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무상급식' 철회를 관철시킨데 대해선 당내 평가가 높았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피로도가 높았기 때문에 나 최고위원은 사실 이번 전대 출마에 대해 망설였다. 또 "흥행카드 차원에서 청와대는 물론이고 이상득 의원 등이 막후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 최고위원의 서울법대 후배로 적극적으로 캠프에서 뛰었던 이두아 의원은 "열심히 해보라는 식의 이야기는 많았지만 '누가 판을 다 짜줬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누가 그런 말을 했다손치더라도 그 말 믿고 출마할 수 있나? 시장 후보 경선 때 우리도 보고 느낀 바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나 최고위원은 정두언 의원 등 일부 친이계와 교감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나 최고위원 측은 "사실상 그 땐 뒤통수 맞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입장이다.
물론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나 최고위원 경선 때 한나라당 내에선 "나경원 의원이 끼면 모양새도 좋고 흥행에도 도움이 된다"는 식의 여론이 꽤 았었지만 이를 호조건으로 보긴 힘들다. 오히려 "일은 안하고 꽃단장하는 사람", "민심이 아니라 청와대의 선택이다"는 식의 역풍도 거셌었다.
하지만 일반여론조사 1위, 대의원 투표 5위, 합계 3위라는 성적 앞에서 더 이상 군말을 붙이긴 어렵다.
'나경원 스타일' 먹혀드나?
나 최고위원의 약진 이면에서 몇 가지 특징을 짚어볼 수 있다. 화려한 이력과 빼어난 외모에 스스로 '플러스 알파'를 찾았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여성 정치인은 대체로 두 가지 스타일로 나눠진다. 박근혜 전 대표나 민주당 추미애 의원의 경우 일찍부터 '여성성'을 스스로 뛰어넘으려 하거나 거부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던 경우다. 강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하고 가끔씩 여성성을 활용하는 경우다. 두 번째는 수없이 명멸해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여성성'을 적극 활용해 '배려 몫'을 챙기는 경우다.
나 최고위원의 출발점도 '여성 배려 몫'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력을 쌓으면서 그는 여성성을 수용하지만 여성 몫에는 눈독을 들이지 않는 캐릭터를 형성해왔다. 이두아 의원은 "나 최고위원의 그런 모습은 미래지향적 여성 리더십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번에 우리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에 큰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여성 의원들과 대의원들이 말 그대로 사심 없이 도왔고, 전당대회 대비 사무실도 못 꾸리고 빵집에서 모여서 회의했는데 자기 돈으로 빵값, 커피값, 전화비 내면서 선거운동을 했다"고 전했다.
물론 나 최고위원에 대해선 "아직도 2%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독자적 컨텐츠도 부족하고 여러 결정적 국면에서 자기 색깔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보수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선 '스타'지만 젊은 층에선 비토 정서도 만만치 않다.
이 의원은 이를 수긍하면서 "부족한 점이 아직 많지만 지난 서울시장 경선을 하면서 부쩍 성장한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면서 "무엇이 장점이고 무엇이 부족한 점인지를 확실히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홍준표 최고위원이 '이제 나도 조직을 좀 해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도 똑같은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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