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창원지청, 사고현장 작업중지 명령
"소규모 건설현장 노동자 작업중지 권리 보장을"
시간당 30㎜의 기습적인 폭우가 내리자 하천으로 흘러든 빗물은 걷잡을 수 없는 급류로 변해 복개구조물 보수공사를 하고 있던 작업자 4명을 덮쳤다.
폭우가 쏟아지는 바깥 상황을 하천 구조물 안에서 작업하고 있던 이들에게 알려줄 사람도 없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밀려드는 하천 급류를 속수무책으로 맞닥뜨려야 했던 이들 가운데 1명은 공사용 전등과 연결된 전선을 붙잡아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나머지 3명은 인근 바다 등에서 싸늘한 주검이 돼 발견됐다.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는 양덕천에서 지난 4일 벌어진 이번 사고는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전형적인 산업재해로 파악되고 있다.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은 해당 현장에 대해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또 이날 기상청의 예보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도 양덕천 복개구조물 보수공사 발주처인 마산회원구청과 시공업체를 상대로 과실 여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기상청 예보에도 무리하게 작업 강행 의혹
지난 4일 창원지역은 하루종일 궂은 날씨가 이어지며 순식간에 물폭탄이 쏟아지기도 했다.
사고가 발생하기 40분쯤 전 프로야구 NC-LG전을 앞두고 마산야구장에서 타격연습을 하고 있던 NC 다이노스 선수들도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에 연습을 중단해야 했다. 그라운드는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고, 경기는 취소됐다.
같은 시간 양덕천 복개구간 아래에서 균열된 구조물 보수공사를 하고 있던 현장 작업자들은 바깥 날씨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산회원구청 측이 “기습적인 폭우에 대해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없었고, 작업공간에서는 휴대전화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듯하다”고 해명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당시의 상황이다.
그러나, 기상청의 예보는 이날의 기습적인 폭우를 예고하고 있었기에 사고예방 차원에서 최소한의 대비조차 없이 무리하게 작업이 진행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더구나, 양덕천은 창원지역에서도 재해위험지구에 속한다. 지난 2003년 제14호 태풍 ‘매미(MAEMI)’가 부산·김해·마산·창원 일대를 휩쓸고 지나갈 때도 불어난 물을 하천이 감당하지 못해 인근 지역은 물바다로 변했다. 뿐만 아니라 2009년과 2014년에도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데도 양덕천 복개구조물 보수공사는 지난 4월 시작해 오는 15일까지 완료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었다. 본격 장마철임을 감안하지 않은 공사계획임을 방증한다.
경찰과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이 마산회원구청과 시공업체를 상대로 과실 여부나 기상청 예보 등에도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했는지 조사를 벌이기로 한 것도 이 부분에 초첨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현장 노동자에게 작업중지 권리 보장돼야”
이번 양덕천 사고와 관련해 소규모 건설현장에 대한 산업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될 경우 현장 노동자가 직접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37조에는 ‘악천후 시 작업을 중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당 경남도당(위원장 안혜린)은 5일 “대기업조차 산업안전보건기준 준수와 관련해 비일비재하게 법규 위반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소규모 건설현장은 말할 것도 없는 사각지대로 전락한 지 오래”라며 “양덕천 사고처럼 발주처가 공공기관인 경우에도 그러한데, 민간의 경우는 어떠하겠나”라고 지적했다.
노동당 경남도당이 이날 밝힌 자료에 따르면 소규모 건설현장의 산재사망사고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건설업의 산업재해율은 다른 업종과 달리 큰폭으로 증가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3월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 산업재해율은 0.84%로 한 해 전보다 0.09%p 늘어났다. 전체 업종 산업재해율이 같은 기간 0.50%에서 0.49%로 감소한 것과 대조되는 수치이다.
또 건설업 종사자 중 사망하거나 사고를 당한 인원은 499명으로 전체 산업 종사자 사고사망자 969명의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지난해 건설업 사망재해율은 1.76%로 한 해 전 1.47%에 견줘 큰폭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사망재해의 경우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자료에서는 1~9인 노동자 건설사업장은 1,000인 이상 사업장에 비해 사망자 비율이 14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고용노동청 등 관련 기관은 소규모 건설현장이 셀 수 없이 많고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산업안전관리가 어렵다는 입장만 피력하고 있다. 또 해당 현장의 작업자들 스스로가 안전의식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고도 주장한다.
노동당 경남도당은 “관련 기관의 항변이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며 “하지만, 그런 논리가 실효성을 지니려면 실제로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되짚었다.
작업 현장의 상태나 위험성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직접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므로 산업안전관리와 관련한 참여 기회나 권한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당 경남도당은 “가장 낮고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는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관련 기관과 정치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도 이날 “산업안전보건 강조 주간임에도 복개구조물 보수공사 현장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며 “진상조사와 함께 매뉴얼 마련 등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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