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에 허덕이는 유원지에서 ‘문화관광지’로…관광업계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인 남이섬(사장 전명준)에 거의 모든 조형물은 ‘재활용’을 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활용은 남이섬의 원천이자 상징이다. 깨진 타일은 불을 밝히는 등대가 되고, 찌그러진 캔은 공연장 벽면이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주병인데, 소주병은 때로 타일이 되었다가, 식당의 휴지꽂이가 되기도 한다. 남이섬을 돌아보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주변에 모든 것이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새 것’ 보다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남이섬식 재활용은 관광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왔다. 남이섬 동선을 따라 재활용의 성공사례를 되짚어 보자. <편집자주>
<사랑과 평화의 등대>-화장품 공병의 화려한 변신
멀리서 보면 하얀 잎사귀를 단 나무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장품 공병 1만개로 만든 가짜 나무다. 밤이면 섬 입구를 환하게 밝히는 등대로 변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등대를 못보고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너무 감쪽같이 만들어놔 화장품 공병으로 만들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기 때문이다.
2008년 아모레퍼시픽이 환경의 날을 맞아 남이섬과 공동으로 화장품 공병을 활용한 친환경 설치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 탄생했다.
세르비아, 미국, 필리핀, 한국 등 4개국 설치미술가 7명이 참여해 설화수 공병과 고철 등 재활용품들이 사용됐다. 남이섬을 찾는 이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비춰주는 등대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청담 빛길>-밤에 더 빛나는 관광포인트
하얀 풍선 수백개가 370m 중앙잣나무길 사이로 은은하게 빛난다. 남이섬을 처음 찾는 이들에겐 남이섬의 첫 인상이기도 하다.
풍선이 나무 사이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온 풍선등이다.
남이섬에 밤이 내리면 인적 드문 잣나무길 위에서 은은하게 불을 내뿜는 풍선등은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준다.
2013년 풍선등이 남이섬에서 처음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기 전, 하얀 겨울을 더 하얗게 밝혔던 적이 있었다. 강남구는 겨우내 청담빛길을 조성해 서울시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풍선등을 버리기엔 못내 아쉬워 남이섬을 찾았다.
쓰고 버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풍선등은 남이섬에서 새생명을 얻어 길을 더욱 아름답게 비추고 있다.
아무도 없는 밤, 중앙잣나무길을 따라 걸으면 헛헛했던 마음이 더 밝아지는 이유다.
<상상마루&유리메타>-애물단지에서 보물단지로
쓸모 없는 것도 적재적소에 쓰면 쓸모가 있게 된다. 그게 남이섬의 재활용 정신이다.
2009년, 삼성증권이 본사사옥을 이전하며 발생한 12.5t 분량의 폐기물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왔다.
남이섬은 주저 없이 분수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남이섬 중앙광장에 분수정원과 환경 연못 다리 등으로 이루어진 ‘상상마루’는 강화유리 101장, 일반유리 312장, 책상과 의자 70세트 등이 재활용됐다.
심지어 ‘증권조사파트, 채권조사파트’ 등 부서명칭이 박힌 채 그대로 세워져 로고와 함께 붙어있다. 남는 강화유리는 ‘겨울연가 첫키스 장소 벤치’로 가는 다리 옆에 세워 새로운 조형물로 탄생했다.
이름하여 ‘유리메타’. 여름에는 시원한 물줄기를, 겨울에는 얼음조형물로 변하는 상상마루. 남이섬 메타세쿼이아 길을 본떠 만든 유리메타. 남이섬은 재활용 속에서 생성되고, 확장한다.
<이슬정원>-소주병, 골칫거리에서 자랑거리로
남이섬은 원래 평범한 유원지였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는 남이섬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남이섬 성공신화’는 사실 쓰레기에서 비롯됐다.
버려진 것들을 모아 어떻게 하면 다시 쓸까 고민했다. 어디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처치 곤란인 소주병은 남이섬에서 새생명을 얻었다.
소주병을 녹여 누르면 벽면을 장식하는 타일이 되고, 쌓으면 벽이 됐다. 유원지 시절 원숭이 우리였던 터를 허물고 3천개가 넘는 소주병으로 정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지금은 어엿한 호텔의 모습을 갖춘 호텔정관루 프론트도 대부분이 소주병으로 이뤄졌다. 섬 곳곳에 있는 화장실 벽면에도 예술품으로 재탄생한 소주병이 가득하다.
지금도 공예원에서는 소주병을 녹여 만드는 유리공예체험을 할 수 있다. 남이섬은 소주병도 예술품으로 탄생하는 재활용의 천국이다.
<송파 은행나무길>-가을 내내 ‘노란 양탄자’
남이섬의 겨울은 유난히 빨리 온다. 단풍시즌이 되면 어느 곳보다도 빠르게 노랗고 빨갛게 물드는 곳이기도 하다.
가을과 겨울을 겪어보지 못한 동남아 관광객들은 이런 남이섬의 계절감을 사랑한다. 시기를 놓쳐 단풍잎을 보지 못했을 때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남이섬은 그런 외국인 관광객과 함께 안타까워했다. 그러던 중 서울 송파구의 명소 은행나무 길의 은행잎을 치우는 게 골칫거리라는 걸 알았다.
독성이 있어 퇴비로도 쓸 수 없는 은행잎은 남이섬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매년 가을이면 송파구에서 온 은행잎이 송파 은행나무길에 깔린다. 버려졌다면 수천 만원의 처리비용이 든다고 하니 재활용의 가장 모범사례가 아닐까. 낙엽을 뿌리고 묻히며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환하다.
남이섬도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남이섬은 재활용으로 재활에 성공했다. 재활을 넘어 부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작은 나무조각, 돌멩이 하나까지도 허투루 쓰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름의 가치. 무엇보다 쓸모 없는 고철부터 빈 병까지 남이섬에서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섬 곳곳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손끝정성’은 어디서든 진가를 발휘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틀에 박힌 디자인에 익숙해진 요즘. 남이섬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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