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면 그렇다. 강성매파 친이계가 당 대표가 됐고 범친이계 4명이 선출직 최고위원의 8할을 점유했으니 이명박 대통령의 직할체제는 강화됐고 친이계의 기득권도 유지된 것처럼 보인다. 정반대로 친박계는 겨우 한 명만, 그것도 턱걸이로 최고위원이 됐으니 정치적 입지가 오그라들게 됐다. 게다가 대의원 투표에선 기존 계파 지분(66.1 대 30.3%)이 철옹성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모른다. 오히려 안정 기반이 불안정 요인을 증폭시킬지 모른다. 이런 이치다.
박근혜 전 대표로선 좌시할 수 없다. 전당대회 결과를 받아들여 자숙할 수 없다. 잠깐은 몰라도 길게 자숙 모드를 유지할 수는 없다.
분명히 확인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방선거 패배로 유효타를 맞았는데도, 자신을 향한 국민 지지율이 굳건한데도 '월박'은커녕 '주이야박'조차 나타나지 않은 점을 똑똑히 확인했다. 이 현상을 순순히 받아들이면 죽는다. 자신의 대망이 고사해버린다.
이번에 새로 구성된 지도부가 어떤 지도부인가. 2012년 총선 공천을 주도하고 대선후보 경선을 관리할 지도부다. 이런 지도부의 독주를 멀건이 쳐다보면 거리가 멀어진다. 대선후보 공천장이 아스라이 멀어져간다.
▲ 안상수 새 한나라당 대표가 14일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외곽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다. 민심을 잡아 당심을 조이는 것이다. 그렇게 철벽 당 조직에 구멍을 내는 것이다.
이러려면 나서야 한다. 물밑에서 잠행할 게 아니라 물위에서 헤엄쳐야 한다. 국정과 당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존재감을 키워야 한다. '천천히'가 아니라 '빨리', '살살'이 아니라 '세게' 치받아야 한다.
물론 리스크는 있다. 이렇게 하면 '산토끼'는 잡을지 몰라도 '집토끼'를 잃어버릴 수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아닐 공산이 커지기에 어쩔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표를 어쩔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하나 더 있다. 정치권 재편 움직임이다. 안상수 대표가 전당대회가 끝나자마자 언급한 개헌 문제, 그리고 여권 일각에서 모색하는 보수대연합이 그 요인이다.
한나라당 새 지도부가, 친이계가 전당대회 결과에 고무돼 개헌과 연합에 팔 걷어붙이면 박근혜 전 대표의 입지는 더 좁혀진다. 개헌 때문에 꿈속의 대권 범위가 좁혀지고 보수대연합 때문에 꿈의 구현 가능성이 좁혀진다.
박근혜 전 대표의 '여유'는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소진됐다. 그는 더 이상 '잠 자는 숲속의 공주'로 남을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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