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는 '보스'의 불개입 속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진 채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6.2 지방선거 참패와 함께 '변화'의 깃발을 들고 나와 주목받았던 쇄신파는 결국 현실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한나라당을 움직이는 여전하고도 유일한 척도는 '계파의 논리'임을 웅변해 주는 결과다. '안상수 대표'가 탄생한 순간, 홍준표 후보는 "역시 사람보다는 조직이더라"는 뼈있는 소감을 남겼다. 누구나 '화합'과 '쇄신'을 외치지만 정작 그 대상과 주체인 친박 진영과 쇄신파는 질식해 버린, '역설의 정치학'이다.
▲ 14일 한나라당의 새 대표로 선출된 안상수 후보. ⓒ연합뉴스 |
박근혜의 '철저한' 외면
박근혜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 참석했고, 직접 투표도 마쳤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선 끝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한 명의 당원'으로서 전당대회에 참석한 것 이상의 의미부여를 철저히 차단한 행보다.
'보스'의 외면 속에서 친박계는 모래알이었다. 서병수, 이성헌, 이혜훈, 한선교 등 4명의 친박 후보들은 내부의 단일화 압박에도 불구하고 결국 완주를 선택했다. 중진 의원들이 중심이 된 단일화 요구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는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 가슴이 아프다"는 반응을 보이며 불개입 기조를 이어갔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최근 한 중진 의원이 재차 박 전 대표를 만나 "이러다 4명 중 한 명도 지도부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건의했지만, 박 전 대표는 "그럼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친박 후보들은 교통정리에 실패한 채 각개약진했다. 각자 '박근혜와의 인연'을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했지만, 유일한 영남권 친박 후보인 서병수 후보 한 명만을 지도부에 입성시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것도 중도파 나경원 후보에게마저 밀린 '턱걸이' 당선이다. 계파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후보들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화합"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박 전 대표의 입장 자체가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집권 후반기를 맞이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과 전면적인 대결을 벌이기에는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서병수 후보의 '나홀로 생존'은 박 전 대표 본인에게도 그다지 나쁠 게 없는 결과다. 친이 주류로 채워진 당 지도부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추후 이 대통령 및 주류계와 '본격적인 차별화'를 시도할 공간을 보전한 셈이기 때문이다.
지도부 입성에 성공한 서병수 후보 역시 같은 맥락에서 당분간 친박 진영의 이해를 노골적으로 앞세우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쇄신-소장세력의 '명확한' 한계
이번 전당대회는 '변화'의 주역임을 내세워 온 한나라당 내 쇄신·소장 세력에게도 뼈아픈 성적표를 남겼다.
원조 소장파의 '얼굴'이었던 남경필 후보는 친이 핵심으로 분류되는 정두언 후보와의 단일화를 선택했고, 김성식 후보는 총 득표율 3.1%로 간신히 '꼴찌'만을 면했다. 남경필 후보가 계파에 '흡수'됐다면, 김성식 후보는 높은 계파의 벽 속에서 '질식'한 셈이다.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것일까. 김성식 후보는 전대 현장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거대한 계파의 벽, 기득권의 벽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라며 "그러나 그것을 여러분이 해 주시는 게 국민의 감동이 될 것"이라고 호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방선거 이후 마치 한나라당의 키워드와도 같았던 '변화와 쇄신'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쇄신파'의 현실적 힘은 결국 이 정도였던 셈이다. 이러한 한계는 한나라당 내부의 쇄신·소장 세력이 걸어 온 궤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나라당 소장파는 2005년 이재오 당시 원내대표의 선출부터 김문수 경기지사 후보의 공천, 오세훈 서울시장 만들기 등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만만치않은 '존재감'을 과시한 바 있다.
이듬해 열린 전당대회에서도 소장파는 당 안팎의 회의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권영세 당시 후보를 단일 후보로 옹립하는 데 성공해 파란을 예고했다. 이명박-박근혜 진영의 줄세우기, 계파갈등 논란 속에서 이들이 앞세운 '변화와 쇄신, 화합'의 가치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권영세 후보는 남경필 의원, 임태희·박형준 전 의원 등 여타 소장파 인사들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계파의 벽'을 끝내 넘지 못하고 6위에 그쳐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이후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소장파들은 사실상 친이계로 흡수됐고, 당시만 해도 '소장파'의 핵심 멤버였던 임태희 전 의원은 장관과 대통령실장으로, 박형준 전 의원은 청와대 참모로서 각각 이명박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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