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풀에 대한 생각은 '산과 들에서 자라는 초록색 그 무엇, 나와는 거리가 있는 식물군, 기분 좋은 생명체…' 와 같은 매우 막연한 것이다.
그런 풀이 시골에 오자 갑자기 나의 생활권 안으로, 그것도 매우 가까이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하게 살아왔는지 여지없이 드러나게 되었다. 초록색 그 무엇이던 풀이 가까이서 보니 종류가 수없이 많은 것이다. 저마다 생김새며 성질이 다른 개개의 풀인 것이다.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우기도 하는 것이다.
얘, 풀들
우리 이제 좀 잘 지내보자
세월이 이렇게나 흐르도록
나는 네가 있는 줄도 몰랐구나
너도 내가 있는 줄 몰랐겠지
얘, 풀들
우리 인사라도 트고 지내야지
너는 뭐라고 허는 풀이냐
나는, 거 뭐시냐 나는
인자 네 옆에서 살아갈 동무풀이여
아무리 내가 풀에 대해 갑작스레 친근감을 느낀다 해도, 내 눈에 다 신기하고 이뻐 보인다 해도, 시골집에서 내가 살려니 어쩔 수 없이 풀을 베어야 한다. 왜? 풀 속에 뱀이 숨어있다. 마당에 한걸음 내딛다가 발밑을 스윽 스치는 뱀과 마주칠 수 있다. 뱀과 아주 친하게 지내지 않을 바에야 풀을 베어야 한다. 또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으려면 풀을 베어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풀을 베더라도, 이름이나 알고 베어야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는가. 모양이 죄 다른 풀들을 보면서 그 이름을 모르니 내 자신이 답답하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내년이면 조금 나아질지, 그래서 풀에 대한 예의를 조금 차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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