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라는 새로운 유전자 가위가 발견됨에 따라 실용적 적용 가능성이 매우 낮고 비효율적이었던 기존의 유전자 가위 기술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정밀성과 효율로 생명체의 유전정보 전체에 해당되는 유전체에 대한 편집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크리스퍼 기술의 응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미생물, 곤충, 동물, 식물, 나아가 인간까지 그 적용 범위를 거침없이 넓혀가고 있다.
2013년 이후의 짧은 기간이지만 앞의 글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크리스퍼 기술이 성공적으로 적용되어 생명체를 인간이 원하는 바대로 변형시키는 많은 경우들이 보고되었고 보고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과 인간 기술의 성공스토리로 보고되고 또 그렇게 읽힌다.
그 예로 아주 최근 우리나라의 한 일간지는 셀레틱스(Cellectis)라는 생명공학회사의 CEO인 안드레 쇼리카(André Choulika)가 지난 10월부터 사회 유명 인사들을 초청하여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편집한 식재료만을 사용한 만찬을 비정기적으로 열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그리고 21세가 밥상은 '유전자 가위'로 만들어진 식재료가 주식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셀레틱스는 크리스퍼 이전 탈렌(TALEN)이라는 유전자 가위 기술 시기부터 유전자 편집에 의한 암치료법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였다.
그리고 내년부터 크리스퍼 기술로 유전체를 편집한 다양한 식물들을 대량생산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런 식용 식물들을 시장에 내놓기 전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이런 만찬을 선전에 이용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물을 것이다. 유전자 편집 식용 먹거리들이 인간에게 해로운가. 현재의 과학적 지식으로 특정 유전자를 잘라 내거나 바꿔치기하는 유전자 편집이 먹어서 해로울 이유는 없다.
또한 빨리 자라거나 외부 스트레스에 강한 식물이 되어 경제적 효과가 좋아질 수 있다. 그래서 대중은 크리스퍼를 오류에 대한 걱정 없이 모든 생명체의 유전체에 적용해 사용할 수 있는 '만능 가위'와 같이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인간이 개발한 기술은 대부분 양면적이며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유전자 편집에 대한 효율성과 성공 확률이 획기적으로 증대된 크리스퍼 기술 또한 기술적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가장 중요한 기술적 불안정성은 유전체에서 원하는 부분만이 아닌 의도하지 않은 비슷한 염기서열의 다른 유전자 부위를 절단하는 현상이 자주 관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off-the-target' 효과라고 한다.
이 효과는 크리스퍼 기술 개발 초기부터 과학자들이 고민했고 지적되어온 문제이다. 의도하지 않은 유전자 부위에 대한 오류는 이 기술을 적용하는 개체가 아주 많을 때, 그리고 그 오류가 눈에 보이는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때 묵인될 수 있다. 즉 미생물이나 식물의 씨 등의 유전체에 이상이 생기면 오류를 갖는 개체들을 모두 제거한 후 원하는 방식으로 편집된 유전체를 갖는 개체만 골라 이용하면 된다. 인간에게 이런 불특정 유전자의 오류들을 갖는 미생물이나 식물들이 어떤 생리적 변화가 있고 생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스퍼를 개체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오류가 있는 생명체가 태어나는 문제가 눈에 가시화되는 생명체에 적용할 때 이 문제는 달라진다.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해 2015년 7월 돼지의 유전체에서 마이오제닌이라는 단백질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제거하여 일반 돼지보다 근육량이 많은 '슈퍼근육 돼지'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던 서울대 김진수 교수 연구팀은 동일한 유전자 편집을 소에도 적용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32마리의 태아 중 12마리만이 출생 후 8개월 동안 생존 할 수 있었고, 그 중 단 한 마리만이 건강하게 생존했다고 한다. 이렇게 원래 계획한 유전자 편집 효율이 매우 낮고 상대적으로 의도하지 않던 다른 유전체 부위의 변형과 이로 인한 발생 이상은 앞의 글에서 언급한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 실험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물론 과학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리스퍼 기술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Cas9이라는 가위 대신 유사하지만 특이성이 다른 Cpf1 등 다른 가위를 찾고 이런 시도를 통해 'off-the-target' 효과를 기술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크리스퍼 기술을 유전체에 적용하는데 따른 'off-the target' 효과는 우리가 아직 유전체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 그 근본 원인이 있다. 우리는 유전체 해독기술로 DNA 염기 서열을 읽어내고 유전체에서 유전자로 발현되는 부분들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전체가 세포 내에서 어떻게 3차원적 구조를 갖고, 또 인간의 경우 유전체 전체에서 단지 1%에 불과한 유전자의 발현이 어떻게 나머지 대부분의 유전체 부분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조절되는지 그 수수께끼를 아직 풀지 못하고 있다.
또 과학자로서 이 수수께끼를 완전히 푸는 것이 가능 할지 의문이다. 이런 비유로 설명하는 것이 적당한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우리는 커다란 건물의 다양한 조명등이 작동하는 전체 스위치와 그 조절 방식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면서 각각의 조명등을 형광등에서 원하는 경우 LED등으로 교체하는 것과 유사하게 크리스퍼 기술로 원하는 유전자를 교체하는 기술을 손에 넣은 것이다. 전등의 교체가 전체 전기의 흐름과 스위치의 작동에 어떻게 작용할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크리스퍼 기술은 단지 유전체의 원하는 부분을 자르는 기술이다. 또 다른 문제는 크리스퍼 가위가 원하는 유전자 부위를 잘라도 잘린 부분이 모두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유전자 가위로 유전체가 잘린 후 원하는 유전자를 잘라 내거나 다른 유전자로 대체할 때 우리는 그냥 생명체가 원래 가지고 있는 복구 시스템에 의존한다. 이 복구 시스템은 유전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생존하고자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복구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할지, 즉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작동해 줄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또 다른 변이를 만들어 낼지 우리가 예측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의 지식으로는 복구 방법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냥 시도해 보는 것 밖에. 여러 개 해보면 그 중 원하는 방식인 것이 나올 수 있고 실제로 나오기도 하므로. 이것이 크리스퍼 기술이 갖고 있는 또 다른 과학적인 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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