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친절 자전거 가게 아저씨
9월 9일. 후루다오시 시청과 각급 공공 기관이 양옆으로 늘어선 용만대로에 위치한 중화상무 대주점에 여장을 풀었다.
이제 한 달이 훌쩍 지나 중국 음식에 서서히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마트에 들러 라면을 샀다.
때로는 식당에서 메뉴판의 사진만 보고 주문했다가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주문할 때 ‘샹차이 넣지 말아 주세요’라는 말을 깜빡 잊어버리면 그것도 낭패였다.
식수 문제도 있었다. 중국의 수돗물은 끓여 마시면 괜찮다고 하는데, 1.5리터 한 병에 3위안(6백 원)씩 내고 늘 사 마셨다.
마켓에 간 김에 박스 테이프를 미리 샀다. 중국 선양공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려면 자전거를 분해해서 박스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선양공항에서 일본 도쿄 나리타행 항공권은 국내 여행사에 이메일로 부탁했다.
사실 이번 대장정의 예정 루트는 압록강을 건너 북한 지역을 통과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해 오느라 중국 선양에서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은 미리 구입하지 않았었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지만 중국 여행 기간 중이라도 남북의 긴장이 완화되고 민간 교류가 활성화 된다면 신의주 철교를 건널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중국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북한 지역 통과는 미래의 과제로 남길 수밖에 없게 됐다. 훗날 꼭 국도 1호선을 따라 한반도를 종단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9월 9일 아침. 자전거 박스를 구하려고 주점 직원들과 논의했는데 방법을 찾지 못해 숙소를 나와 무작정 택시를 탔다.
“자전거 판매점 좀 가 주세요. 자이언트.”
미리 입력시킨 중국어 번역기를 보여 주자 운전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내를 가로질러 20여 분 달려 어떤 상가 앞에 멈췄다.
“…….”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이곳에 있던 자전거 판매점이 없어졌다며 핸들을 돌려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5분 정도 더 달리다 보니 길 건너 자전거 가게가 눈에 띄었다.
“기사님, 저기요. 저기 세워 주세요.”
운전기사는 우리 손짓을 보고 유턴해서 길 건너에 내려줬다. 40위안을 주고 거스름돈 3위안은 팁으로 줬다.
이번 중국 여행에서 우리와 인연이 많은 자전거 판매점이었다. 우린 머뭇머뭇 숨 고르기를 하고 나서 정중히 인사를 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한국에서 왔어요.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데 자전거를 박스에 넣어 비행기에 싣고 일본으로 건너가려고 합니다. 박스 두 개 좀 구할 수 있을까요?”
“자전거가 고장 났어요?”
매장 안쪽에 있던 빡빡머리 주인아저씨가 나오며 우리에게 묻는 걸 보니 우리가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다.
“고장 난 게 아니고요. 자전거 박스를 두 개 얻으려고요.”
번역기를 보여줬다.
“여기 우리의 여행 소개서입니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빡빡머리 주인은 우리의 소개서를 읽어 보고 나서는 2층으로 올라갔다.
“이런 거 말입니까?”
잠시 후 주인은 빈 박스 두 개를 덜렁 들고 계단으로 내려왔다.
“와우, 예, 맞아요.”
행운이었다. 이렇게 쉽게 박스를 구하다니!
“어제 새 자전거 두 대를 판매한 겁니다. 오늘 빈 박스를 버리려고 했는데 때 맞춰 잘 오셨습니다.”
“네, 박스 비용이 얼마죠?”
물론 버릴 것이니 돈은 안 받겠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물어봤다.
“아닙니다. 그냥 가져가세요.”
“고맙습니다.”
주인은 나한테 스마트폰 번역기를 열어 달라며 무어라 얘기를 한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사는 게…….”라고 적혀 있었다.
우린 소중한 인연을 상징하는 청실홍실을 주면서 번역기로 의미를 알려줬다. 잠시 후 주인 양반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우리에게 줄 선물이라며 뭘 들고 나왔다.
1m 크기의 두루마리 족자였다. 대충 한자를 읽어보니 불경을 적어 놓은 것 같았다.
“허어, 이런 선물까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나자 주인 양반이 다시 묻는다.
“이 박스 어떻게 숙소까지 가져가려고요?”
“반으로 콱 접어서 택시 트렁크에 싣고…….”
웅얼거리는 제스처를 주인 양반은 쉽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주인 양반은 박스 두 개를 자기네 트럭에 덜렁 싣고 나서 숙소까지 가져다주겠단다.
“아니 택시에 싣고 갈 수 있는데…….”
솔직히 솟는 기쁜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우린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다. 자이언트 후루다오시 자전거 구락부(箶芦島市自轉車俱樂部) 임장복(任長福)사장이었다. 첫 인상이 후덕하고 처음 만난 사이지만 오랜 친구 같았다.
“과분한 신세를 졌어요. 한국에 꼭 한번 놀러 오세요. 가족과 함께요. 저희 집에서 묵을 수 있어요.”
우린 그날 밤 숙소에서 박스 포장 작업을 완료했다. 다음은 선양국제공항까지 박스를 싣고 갈 차량을 구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일 운송회사를 찾아가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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