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카지노산업의 ‘전설’은 단연 파라다이스 창업주 전락원 회장(2004년 작고)이다.
그는 마카오 ‘카지노 황제’로 유명한 스탠리 호(97)와 말레이시아 겐팅그룹의 림고통(1998년 작고) 창업주와 수십 년 이상 친분을 맺어올 정도로 아시아 ‘카지노전설’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전락원 회장의 부친은 함경북도 무산이 고향으로 국내 1세대 개척교회의 목사인 전주부(1991년 작고)씨다.
슬하에 6남매를 둔 전주부씨는 외아들인 전락원씨의 이름을 기독교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전 회장의 삶은 부친의 기독교 정신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1948년 성균관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그는 6.25전쟁 때문에 아쉽게도 대학을 졸업하지는 못했다.
한국전쟁 당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미군부대 군속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이후에는 미군을 상대로 운수업을 하며 관광산업에 눈을 뜬 것으로 알려졌다.
5,16군사혁명이 나던 그해 12월에 서울시 청년회의소 부회장에 올랐고, 이듬해인 1962년 한국관광협회 서울시 이사를 지내면서 관광산업에 대한 견문을 넓혀 나갔다.
전락원 회장은 관광협회 이사로 재직당시, 마카오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산업의 성공사례를 제시하며 카지노사업의 유치를 추진했지만 군사정부는 시기상조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65년 인천 풍치지구에 민간 자본에 의해 최초의 대형 호텔인 올림포스 호텔을 신축하던 유화열씨라는 관광산업에 안목이 있는 전문가를 만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당시 38세의 젊은 사업가 전락원씨는 유씨의 호텔경영 참여제의에 흔쾌히 수락했다.
젊은 사업가들이 호텔사업을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당시 올림포스는 적자를 면치 못하는 어려운 처지였는데 이듬해 1966년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박정희 대통령이 인천을 방문하면서 외국인 VIP들에게 인기라는 인천 올림포스 호텔소식을 듣고 직접 찾은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수도 서울의 관문인 인천에 외국인을 위한 관광호텔인데도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유화열 사장과 전락원 회장으로부터 전해 듣고 흔쾌히 지원을 약속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당시 엄민영 내무부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인천 올림포스 호텔 지원방안을 강구토록 지시한다.
전락원 회장과 유화열 사장은 엄민영 내무부장관을 만나기 전, 회심의 카드인 카지노 영업허가를 내놓기로 하고 엄 장관을 만났다.
전락원 회장은 엄민영 장관에게 “외국인 전용카지노를 오픈하면 많은 외국인들이 호텔을 방문하게 되어 호텔 경영이 정상화 되고, 외화 획득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카지노사업은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상이군경회장을 맡고 있던 유화열 사장도 “상인군경회장을 맡고 있어 아는데 대부분 상이군경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며 “수익금 가운데 일부를 한국전쟁 유가족들을 돕는데 쓰도록 하겠다”고 거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엄민영 장관은 이런 내용을 보고하고 청와대의 재가를 얻어 국내 최초의 카지노 영업허가를 내주게 된다.
카지노 허가를 받은 전락원 회장은 카지노 개장에 필요한 전문인력의 확보와 카지노 영업장 설치를 협의하는 등 카지노사업 전략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
이윽고 전 회장은 1967년 8월 1일 인천 올림포스에 국내 최초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 개장을 위해 필리핀 여성 딜러 10여 명을 스카우트해 개장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경영전략을 세웠다.
국내 첫 카지노인 인천 올림포스 호텔 카지노는 박정희 정권의 파격적인 혜택으로 허가를 받은 뒤 경영여건이 상당히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올림포스 호텔과 카지노가 자리를 잡던 1972년 다시 인천 올림포스를 방문해 기념식수를 했다. 이처럼 인천 올림포스호텔은 전락원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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