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월요일 8시. 친황다오시를 떠나 90km 떨어진 환쭝현까지 가는 길,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마을 공터에 모여 카드놀이 하는 모습이 보인다. 도로 포장 공사로 한쪽 차선만 운행하느라 차량이 많아 힘겨운 여정이다.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
도중에 단체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났다.
“후루다오에서 텐진까지 가는 중이에요. 어디서 오셨어요?”
“예, 저희는 한국에서 왔어요.”
“후루다오는 자전거 여행하시는 분들이 많은가 봐요.”
“다른 곳 보다 많은 편이에요.”
“한국에 와 보신 적 있어요?”
“아직 못 가봤어요.”
“한국으로 자전거 여행 한번 오세요. 한국에도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고요, 오시면 저희가 길 안내해 드릴게요.”
손짓 발짓 대화가 오가고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한 줄로 길게 줄지어 서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니 옛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십년 전 그때 기억나? 처음 산악자전거 탈 때.”
“생각나죠. 어느 봄날 우연히 당신과 함께 한강 둔치를 걷다가 흙투성이 자전거 타고 가는 어떤 청년의 뒷모습에 매료되어 그날 저녁 곧바로 산악자전거 두 대를 질렀잖아요.
다음 날 인터넷 산악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해 주말에 부천 원미산 자락 번개 모임에 찾아갔었죠.”
“맞아. 그때 산 아래 열댓 명이 빙 둘러 서서 제각기 자기의 닉네임을 대며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데 우린 닉네임이 없어 이름을 댔지만 분위기가 좀 썰렁했었지.”
“그날 번개를 친 ‘어금니’라는 닉네임을 가진 번짱의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다들 각자 산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우린 맨 뒤에서 출발도 하기 전에 옆으로 자빠지고 말았지.”
“나도 넘어지고 당신도 넘어지고. 히힛.”
“맞아, 다시 일어나 시도해 봤지만 역시 헛수고였어.”
“그 때 번짱이 뒤에서 지켜보다 말고 다가와 피식 웃으며 하던 말 기억나?”
“뭐라 했는데요?”
“오늘 여기 처음 오셨죠?”
“예,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그걸?”
“산에 오르려면 앞뒤 기어를 모두 저속으로 놓아야 하는데 그냥 올라가시면 어떡합니까? 제가 기어 변속을 해드릴 테니 요기서 조기까지만 오르락내리락 하고 계세요. 곧 돌아올 테니까요. 알았죠?”
“정말 창피했지. 지금도 그때 기억이 생생해.”
“두어 시간 후에 개선장군처럼 산 능선을 미끄러지듯 내려오던 그 녀석들이 너무 부럽고 얄미웠어.”
“그래도 그때 포기하지 않고 고수들을 졸졸 따라 다닌 걸 보면 신기해.”
“맞아. 그때 그만뒀더라면 오늘과 같은 자전거 여행은 할 수 없었겠지.”
“당신은 가파른 산비탈에서 몇 번 구르기도 하고, 왼손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늘 체인에 기름을 쳐 놓았지. 참 대견스러웠어. 허허.”
미루나무 그늘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복숭아를 배부르게 먹었다. 매미 소리, 산들바람에 너무 오래 쉬었더니 일어나기가 싫어졌다.
싱그러운 바람에 점점 고릿고릿한 악취가 풍겨 오고 있었다. 생활 하수구 뚜껑이 열렸거나 젓갈을 삭히고 있거나 쓰레기 매립장 냄새다.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도로변 밀집 상가가 나타났다.
용변이 급해 가장 번듯한 상가 건물 2층 화장실을 찾았다. 다행히도 남녀 화장실 출입문은 구분되어 있었는데 위아래의 공간은 하나로 열려 있었다.
변기 물은 오목(∪)한 배관을 통해 양다리 아래로 졸졸 흘러 남자 화장실에서 여자 화장실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먼저 본 용변이 굴러 내려가다가 바로 아래 여성 칸에 멈춰 버티고 있는 바람에 남자 칸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순간순간 튀어 오르는 혼합물을 피해 엉덩이를 잽싸게 돌려봤지만 대신 허벅지가 젖었다.
집집마다 청소 상태가 불량한 까닭은 달리는 차량들이 먼지를 일으켜 곧 다시 쌓이니까 청소를 해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낡은 생활 집기들을 문밖에 무질서하게 내다 놓았는데 쓸모없다는 판단은 우리의 생각이겠지.
‘빠~앙 빵~빵~ ’
땅이 흔들릴 정도로 요란스러운 차량들의 경적 소리가 끊임이 없다.
처음엔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차량들을 많이 원망했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다. 경적을 울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다.
대형 차량이 잔뜩 짐을 싣고 달리고 있는데 소형차, 자전거, 보행자들이 갑자기 뛰어들 것만 같이 대로변 차선 가까이 다가서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로변에 들어서기 2~3m 뒤에 멈춘다면 경적은 절반으로 줄어들 것만 같다.
상가마다 들리는 고성능 앰프 소리도 도시의 상징이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볼륨을 크게 틀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다.
옆집이 크게 틀어 놓으니까 자기네 앰프 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크게 틀어 놓는 것이다. 시내 전체가 아수라장이다. 사람 사는 것 같다.
후루다오시로 가는 도중에 새파란 녹조 낀 연못에서 오리들이 노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급속한 경제 발전의 심각한 후유증으로 보이는 하천은 모두 오염 상태가 극심했다.
후루다오시를 15km 앞두고 흥성고성 유적지에 들렀다. 이곳 흥성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격전지였다고 한다. 시안 고성을 비롯해 옛 성이 온전하게 보존된 중국의 4대 성 중의 하나라고 한다.
성을 둘러싼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했다. 도자기와 목공예, 서예 작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자전거에 싣고 갈 만큼 구매 욕구는 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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