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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서 월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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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서 월경까지

[페미니스트 정치포럼] ④ 월경에 대한 금기를 깨자

한 중학교 도서관에서 월경을 주제로 학부모 연수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 날은 사서 선생님께서 소개와 인사말을 담당해주셨는데 원래는 늘 교장선생님이 하시던 역할이라 들었다. 그렇지만 주제가 월경이다보니 교장선생님께서 자리를 피하셨다는 이야기다. 함께 강의를 듣는 것도 아니고 그저 '월경에 대한 연수를 준비했으니 좋은 시간되시길 빈다'는 상투적인 인사조차 못할 이유가 뭘까 싶었다. 월경에 대한 회피 혹은 금기가 어디 이뿐일까.

일회용 비닐봉지가 전부 유료화 되던 시절, 편의점은 물론 동네 작은 가게들까지도 물건을 담아가려면 비닐 봉투를 돈을 주고 사야만 했었다. 그렇지만 유일하게 생리대만큼은 예외조항이었는데, 아무 광고도 실려 있지 않은 새카만 비닐봉지로 둘둘 감아 내어주곤 했었다. 마치 누구도 보아선 안 되고 누구도 아는 척 해선 안 되는 것처럼.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볼드모트는 제 이름보다 'you-know-who(그 사람)'로 불린다. 마법사들은 볼드모트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서 맞설 용기를 잃고 두려움에 떨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지 못하고 공산당, 빨갱이, 매직이라고 돌려 말하면서 무엇을 잃고 있을까.

말에는 힘이 있고 말하지 않으면 그 힘을 잃어버린다. 인류의 반이 겪는 일, 한 사람 한 사람이 40년 동안 겪는 일이지만 사회가 쉬쉬한 사이 월경이 가진 말의 힘을 잃어버렸고 그 사이 거짓 정보들이 너무 많이 자리를 잡아버렸다. 월경 전후로 산부인과에 방문해서 질 내벽을 초음파로 씻어내라는 광고가 버젓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질 세척 전후의 사진을 보여주며 깨끗함을 강조하고 있는 사진을 보고 있자면 어디서부터 문제제기를 해야 하나 막막해진다. 여성 청결제 광고도 마찬가지다. 해당 제품을 사용해 씻으면 탄력이 되살아난다는 과학적으로 무지몽매한 제품 설명은 건너뛰더라도 청결제를 사용해 깨끗하고 향기롭게 관리하라고(심지어 어떤 청결제는 살정제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외쳐대는 광고를 보고 있자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청결히 하라는 것인지 마음이 답답해온다. 이들이 말하는 청결은 과연 우리의 건강을 위한 것이기나 할까.

사회는 월경에 대해 너무 모른다. 한쪽에선 월경 중인 여자들이 하얀 스키니진을 입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광고를 내보내고 다른 쪽에선 월경을 시작하면 무조건 고통에 못 이겨 주변사람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으로 묘사한다. 월경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동영상이랍시고 주인공 남성이 월경 체험중이라며 밑도 끝도 없이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내뱉거나 친구들에게 이유 없이 시비를 건다. 마지막에는 여자친구(혹은 그 역할을 맡은 배우)를 껴안으며 모든 것을 용서하고 이해한다는 식의 황당한 결말을 내보낸다. 화가 난 여성에게 ‘생리하냐?’고 다짜고짜 묻는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이미지 뱅크를 이용했는데 월경과 관련한 사진은 죄다 배를 잡고 허리를 숙이고 얼굴을 찌푸린 여성의 사진밖에 없었다. 두통-치통-생리통이라고 광고하는 딱 그 포즈였다. 나는 월경 기간이 되면 평소보다 많이 졸리고 가끔 허리가 아프지만 배가 아프지는 않다. 월경에 대한 경험을 나누다보면 월경통의 여부와 강도도 다 다르지만 누구는 머리가 아프고 누구는 몸살이 나고 누구는 허리가 아프다고 한다. 생리하는 여성의 모습을 한 가지로밖에 상상할 수 없는 이유는 사회가 개개인의 경험을 너무나도 몰라주기 때문이다.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한심한 이 상황을 개선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당사자들의 목소리다. 수년의 경험동안 쌓인 불편함, 요구,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다. 국민안전처가 재난구호물품에서 슬그머니 생리대를 빼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생리대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며 다 같이 화를 냈던 일은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냈던 경험이다. 생리컵을 써보니 좋더라는 경험담을 서로 공유하고 식약처에 안전한 제품을 손쉽게 구입할 방법을 마련하라는 민원을 넣으면서 여름부터는 국내에서도 월경컵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환경연대는 일회용 생리대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을 어떻게 관리하고 규제할지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있다. 제대로 된 제품을 기업에 요구하고, 품질에 대한 규제와 차별 없는 접근성 보장 정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의 경험과 권리를 더 이상 숨기지 않는 것이 건강한 월경을 지켜내는 첫 번째 걸음이다.

월경의 '경'자는 성경, 불경할 때 쓰는 말씀 '경'이자 경험을 나타내는 지날 '경'자이다. 그러니 월경은 여성의 몸이 지닌 지혜의 말씀을 고대로 설명한 이름인 셈이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처럼 월경이란 이름을 다시 불러줄 때 월경이 가진 지혜와 내 몸이 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월경을 월경이라 부를 수 있는 사회는 안전하고 자유롭게 월경을 맞이할 수 있는 세상이며 선택 없이 월경을 받아들어야 했던 여성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이다. 월경이 당당한 나라를 꿈꾸며 월경에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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