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핵 문제에 올인한 문재인 대통령의 키워드는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 동결'이다.
CBS,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과의 잇따른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북핵 로드맵으로 "첫째는 동결이고, 둘째는 완벽한 폐기"라며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것이 시급하고, 그래야 북한이 추가 도발과 (핵과 미사일 개발) 기술의 진전을 멈출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21일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회장을 청와대에서 접견한 자리에서도 "금번 한미 정상회담 계기로 한미동맹의 발전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가 미국 조야에 확산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이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라며 "앞으로도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바탕으로 협력을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또한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인 신뢰와 우정을 돈독히 하고자 한다"며 "이를 기반으로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향한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 평화와 안전 확보라는 한미 공동의 목표를 함께 추진해나가길 기대한다"고 문 대통령은 말했다.
이에 하스 회장은 "문 대통령의 구상에 공감을 표한다"며 "한미 양국 정상이 첫번째 만남을 통해 우의와 신뢰의 기반을 구축하고 이를 토대로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 발전시켜나가길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하스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외교계 거물로 꼽힌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의 북핵 로드맵이 하스 회장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하스 회장이 북핵 동결을 통한 단계적 해법을 제안해 온 인사라는 점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하스 회장은 전날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주최한 특별강연에서 "비핵화는 가장 이상적이지만 비현실적이다. 우선 상한선을 그어놓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중간 합의를 먼저 이끌어낸 뒤 북한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CFR 특별보고서에도 '한미 군사훈련 축소' 제안
문 대통령과 하스 회장이 입을 모은 북핵 동결론은 미국 외교가에서 오래전부터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른 북핵 해법이다. 특히 한때 '제국의 두뇌'라고 불렸을 만큼 미국 정부에 상당한 정책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교단체인 CFR이 이 같은 미국 정부의 기류 변화를 대표한다.
특히 CFR은 미국 대선이 진행중이던 지난해 9월, 차기 행정부에 대한 제안을 담은 특별보고서를 통해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폐기와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제안해 관심을 끌었다. 최근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워싱턴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제안이어서 다시 주목받는다. 당시 문 특보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CFR 보고서의 허와 실을 짚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박근혜 강경책은 '구멍'...안보는 최고 민생)
당시 특별보고서에 담긴 6개의 권고사항 중 1, 2번 항목이 반향을 일으켰다. 1번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하루 속히 중국을 한반도 문제에 관한 5자 협의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했고, 2번에선 "미국은 시급히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고 비핵화와 평화협정으로 나아가도록 협상 방식을 재구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보고서는 특히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실험 중단의 대가로, 한미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식량을 지원하고 한미 군사훈련의 규모와 내용을 수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조치로 협상이 일단 시작되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북한 입국 등으로 핵능력 동결 검증에 주력할 것을 주문했다. 이 단계를 거쳐 최종 목표인 북한 비핵화와 인권 개선 및 평화협정 체결과 관계 정상화 등의 포괄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북한의 핵 동결을 입구로 삼아 궁극적으로 평화협정까지 포함하는 대화와 협상을 주문한 보고서다.
CFR 보고서는 이후 출범한 트럼프 정부가 현재까지 보여온 대북 정책의 기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의 폐기, 북한에 대한 최고의 '압박'과 함께 '관여'를 강조한 트럼프 대통령과 외교안보 라인 주요 인사들의 메시지는 일관적으로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에 방점이 찍혀있다.
문정인 특보의 '워싱턴 발언'을 꼬투리 잡아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북핵 해법을 '불협화음', 혹은 '엇박자'로 묘사하는 일부 언론들이 '의도적인 틈새 벌리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북핵 동결을 강조하면서도 문정인 특보의 소신과 선을 긋고, 미국 CBS 방송 인터뷰를 통해 "선거 과정에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축소와 조정을 언급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 문 대통령의 발언도 외교적 카드 하나를 버린 실언이라는 지적을 받는 까닭이다. (☞관련 기사 : 文대통령 "대선 때 한미 군사훈련 축소 말한 적 없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