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행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된 지 3일 된 시점에 인천공항을 방문,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났다. 메시지도 파격적이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인 셈이다. 특히 각종 편법, 탈법의 온상이 되는 간접고용제 문제를 손보겠다는 취지로 풀이됐다.
한국 사회에서 간접고용 규모는 해가 지날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2016년 8월 기준 용역노동은 69만6000명, 파견노동은 20만1000명으로 모두 90만 명에 이른다. 전체 임금노동자(1960만 명) 중에서 4.6% 차지한다. 이러한 간접고용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01년에는 44만 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간접고용은 공공기관, 그리고 대기업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다.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청의 사용자 책임도 회피할 수 있다는 이점이 간접고용을 확대한 배경이다. 반면, 간접고용 노동자는 박봉, 열악한 노동환경, 그리고 노동권 침해 등의 부당대우를 받아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선언이 의미가 큰 이유다.
하지만 씨줄과 날줄로 얽히고설킨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는 쉽지 않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관련, 자회사를 설립, 여기에 비정규직을 취업시켜 정규직화 하는 방안을 유력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이러한 자회사 형식이 '도로 비정규직'이라고 비판한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21일 민주노총 주최로 서울 중구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는 현재의 문제가 되는 간접고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비정규직 권리,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2015년 3월 기준으로 정규직 평균임금은 299만 원인 반면 파견노동자는 163만 원, 용역 노동자는 142만 원에 불과하다. 사회보험 및 노동조건 적용률을 보면 정규직은 4대 보험, 퇴직금, 상여금 등에서 90% 수준의 적용률을 보여주는 반면, 파견 노동자는 국민연금 64.4%, 건강보험 71.5%, 고용보험 73.5%였다.
뿐만 아니라 간접고용 비정규직들은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사업실장은 "원청과 하청 업체 사이에 맺는 도급계약 등은 보통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재계약을 맺는다"며 "이러한 계약 만료시점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항상 고용 불안을 떨어야 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오 실장은 "또한, 사용자를 사용자라 부르지 못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특징은 '고용하는 자'와 '사용하는 자'를 분리해 사용자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데 있다"며 "고용하는 자(하청)는 형식적 고용주일 뿐 실질적인 지배력은 사용하는 자(원청)가 모두 행사한다"고 말했다.
오 실장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이 자신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당사자임을 잘 알지만 원청에서는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말 한 마디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하청은 '모든 권한은 원청에 있다'고 변명하면서 정작 비정규직의 권리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사실상 모든 업무를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 실장은 "SK브로드밴드만 보더라도 업무를 통째로 외주, 하청화 해버리면서 원청은 오로지 관리 업무만 담당하고 있다"며 "반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SK브로드밴드의 상품을 설치, 수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SK브로드밴드 근로감독 결과를 보면 '비용지급, 비용청구, 완료확인' 세 가지 업무를 제외한 콜센터 고장 신고 및 수리, 신규 신고 접수, 기사 배정, 기사 고객 방문 등 모든 주요업무를 간접고용 노동자가 하고 있다.
오 실장은 "이러한 사례는 LG유플러스, 삼성전자서비스를 비롯한 유사 업종은 물론, 인천공항을 비롯한 공공부문과 대기업 사업장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 간접고용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 관련 원청 사용자의 책임 △ 안전 관련 원청 책임 강화 △ 노조 할 권리 강화 △ 상시, 지속업무의 직접고용, △ 노동기본권 보장위한 법제도 개선 등을 제시했다.
오 실장은 5대 요구 관련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 상시, 지속업무 직접고용, 정규직화 등 2가지를 기본 방향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패널로 참석한 국책연구기관 한국노동연구원의 배규식 선임연구위원은 민주노총의 5대 요구안을 두고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며 난색을 보였다.
배 위원은 "간접고용에 대해 원청의 공동사용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법 개정사항이라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으면 실제로 실현되기 어렵다"며 "또한 상시지속업무에 정규직 직접 고용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는 것도 법 개정을 요구하는 사항이기에 사회적 합의가 없으면 실현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배 위원은 "노사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합의한다 하더라도 정부의 예산(정규직화 비용)은 기본적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에 정부 임의로 정할 수도 없다"며 "노사가 합의한다 해도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구조 아래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배 위원은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배 위원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의 기대나 요구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그동안 누적돼 해결되지 못한 숱한 노동이슈를 고려할 때, 특히 비정규직 입장에서는 갑갑한 구석도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배 위원은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이라는 행동에 의해 탄생된 정부기에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할 수 있었고, 기타 과감한 조치를 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아무리 의욕이 있어도 법개정을 요구하며 국민적 동의를 필요로 하는 개혁이나 굳어진 구조를 바꾸는 개혁, 재정이 많이 소요되는 개혁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배 위원은 "문재인 정부는 역량도, 재정도, 국민의 지지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계의 높고 많은 요구는 불감당 상태가 될 것"이라며 "10년 만에 찾아온 기회니만큼 때로는 정부와 협력을 하면서, 때로는 정부에 촉구하되 조건을 만들어 나가면서 개혁이나 요구를 달성하는 방법으로써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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