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인 현상일까. 아니면 부활일까. 2017년 상반기 한국 조선업의 수주량이 작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치로 늘어났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계는 5월 전 세계 발주량 중 절반에 육박하는 79만CGT(21척)를 수주했다. 4월에 이어 2개월 연속 수주 1위를 기록했다. 중국은 32만CGT(17척), 일본은 8만CGT(3척)를 수주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한국은 1~5월 누계 수주실적에서도 중국을 누르고 처음으로 1위로 올라섰다. 이 기간 한국의 수주실적은 207만CGT(57척)로 중국의 184만CGT(101척)를 앞섰다.
자연히 수주잔량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은 5월말 수주잔량이 전월 대비 15만CGT 증가했다. 5월 기준으로 전세계 수주잔량 7619만CGT 중 한국은 1749만CGT로 중국(2576만CGT)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1717만CGT로 집계됐다. 한국의 수주잔량이 전월보다 늘어난 것은 2015년 5월말 이후 처음이다.
늘어난 수주량, 왜?
이렇게 올해 들어 수주가 늘어난 이유는 선주사들이 더는 선박 가격이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요인이 크다. 반대로 말하면 선주사들은 앞으로 선박 가격이 오를 거라 판단하고 있다. 이에 지금이 배를 살 적기라고 생각한다는 것. 작년과 비교해서 전 세계적으로 선박 수주량이 늘어나는 배경이다.
현재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가격은 약 8000만 달러로 2008년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세계 경제의 침체, 그에 따른 선박 수요의 '제로'가 만들어낸 가격이다. 하지만 이 가격도 조만간 상승한다는 게 전문가 견해다.
무엇보다 원자재의 가격 상승이 주요 원인이다. 2016년 말부터 올해 1분기까지 철광석 가격은 지속해서 상승했다. 철광석은 선박 제작비용의 15%를 차지하는 후판의 주원료다. 원자재가 오르면 선박 가격은 자연스럽게 오를 수밖에 없는 이치다.
일반적으로 철강제품은 1~2분기 정도의 기간을 두고 원자재 가격을 후행한다. 예를 들어 3~6개월 전 철강 가격이 현재에 반영되는 구조다. 즉, 철광석 가격 상승 반영이 올해부터 반영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선박 가격 상승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수주량 증가는 2020년부터는 선박에 탈황 설비를 장착해야 하는 등 해상 환경 규제 강화와도 맞물려 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선박 연료에 들어가는 황산화물(Sox) 함유량을 3.5%에서 0.5%로 낮추는 환경 규제를 2020년부터 시행키로 했다.
선주사들은 이번 기회에 노후한 배를 폐기하고 신규 선박을 발주하는 추세다. 조선업 관계자는 "선주사들은 연식이 15년 넘어가는 배에까지 탈황 설비 하느니 차라리 조기 퇴선하고 신규 선박을 발주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며 "탈황 설비 설치비도 문제지만, 기술 개발로 연비 좋은 선박 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배를 만드는데 드는 시간이 2~3년 정도 갈린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올해 상반기부터 선주사들은 선박을 주문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국, 일본과 달리 유독 한국에 수주량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업 관계자들은 중국과 한국의 선박 가격이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는 기술력 등에 우위가 있는 한국 선박을 선주사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현대중공업 선박의 경우, 중고선 가격이 중국선보다 비싼 실정이다.
늘어난 수주량에도 노동자는 순환휴직?
일단 수주량이 늘어난 것은 다행이나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것. 좀더 지켜보자는 게 일반적 견해다. 또한, 수주량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물량은 부족하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2015년~2016년간 수주량이 워낙 적었다는 게 근거다.
한국은 조선업 위기설이 나돌던 2015년 12월말 기준 수주잔량이 3108만CGT를 기록하는 등 2016년 내내 수주잔량을 줄곧 3000만CGT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2017년 1월 들어 2939만CGT으로 떨어지면서 지속해서 수주잔량은 하락해왔다. 2017년 5월 기준으로 1749만CGT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수주한 선박을 도크에 앉히기까지, 즉 설계도 제작, 원자재 구입 등 과정을 거쳐 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물량이 되기까지는 대략 3~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문제다. 하반기에도 물량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올해 1만600명의 노동자 중 5000명을 순환휴직해야 한다고 밝혔다. 추가로 비는 도크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노조는 반발한다. 순환휴직을 할 정도로 물량이 부족하지 않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김병조 현대중공업노조 정책실장은 "물량이 잘 나갈 때 비하면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있는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수주산업의 특성상 6개월 정도 지난 뒤 노동자가 물량을 가지고 일할 수 있지만, 지금은 기존의 물량도 소화가 안 돼 있는 상황"이라며 "그런데도 5000명을 순환휴직 돌린다는 게 회사의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김 실장은 노조 차원에서 물량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조선업 호황일 때는 회사의 배만 불리다 이젠 회사가 어렵다며 노동자만 쥐어짜는 게 지금의 회사"라며 "함께 살자고 하면서 정작 노동자만 죽으라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2015년간 적자를 기록했으나 2016년 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5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2014년 전에는 10여 년 넘게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의 사내유보금을 보면 2002년에는 3조3500억 원이었으나 2015년에는 12조4000억 원으로 약 4배 정도 늘었다. 노동자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순환휴직 관련, 여러 이야기가 있었으나 이를 노조에 통보한 적은 없다"며 "임단협을 앞두고 순환휴직을 한다는 것은 또다시 문제가 될 것이라 판단, 잠정 보류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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