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기술을 최초로 인간 배아에 적용해 유전자 편집을 시도했던 중국 중산대 황진주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2015년 4월 발표되자 전 세계 과학계가 한번 유전정보를 바꾸게 되면 자손 대대손손 전해질 수 있는 인간의 배아 유전체 정보를 편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한 그 윤리적 문제를 놓고 찬반 논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런 찬반 논쟁 속에서 가장 먼저 개인이 아닌 집단적으로 반응을 한 것은 영국의 과학자들이었다. 2015년 9월 2일, 영국 의학연구위원회를 비롯한 다섯 개의 연구단체는 "법적으로 정당한 경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인간배아 편집은 가능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9월 8일,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의 캐시 니아칸 박사는 인간 배아의 초기 발생 과정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하는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 실험에 대한 승인을 정부에 요청했다. 과학자들은 "이미 인간 배아를 파괴하는 많은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는 데, 크리스퍼 기술을 사용한다고 해서 승인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며 실험에 대한 승인을 지지했다. 결국 올해 2016년 2월, 영국 보건부 산하 인간생식배아관리국(HFEA: Human Fertilization and Embryology Authority)은 니아칸 박사의 연구를 승인했다.
이렇게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기술을 적용하는 니아칸 박사의 연구 승인 요청과 이에 대한 영국 정부의 승인 배경에는 인간 배아를 이용하는 연구에 대한 '힝스턴 그룹(Hinxton Group)'의 입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많다. ‘힝스턴 그룹’은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의 'The Johns Hopkins Berman Institute of Bioethics' 내의 줄기세포 정책과 윤리에 대한 프로그램(Stem Cell Policy and Ethic Program)의 구성원들이 주축이 되어 인간 배아와 줄기세포를 대상으로 한 연구의 규제와 윤리적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자 2004년 영국의 힝스톤에서 처음 모였던 국제적이고 다학제적인 위원회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여기에 참여했던 다양한 학문적 배경의 영미학자들은 '힝스톤 그룹'으로 불리며 정기적인 모임을 개최해왔고 인간 배아와 줄기세포 연구, 유전자의 지적 소유권과 같은 다양한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 의견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015년 9월 3일, 8개국에서 모인 22명의 힝스턴 그룹 회원들은 유전자 가위기술을 인간 배아에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 "유전자 편집 기술을 생식 분야에 적용하는 것은 시기상조이지만, 인간 배아를 이용한 실험실 연구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들은 시험관 아기 등 생식 목적의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유전자를 편집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지 않았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과학연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는 확고한 입장을 취했다.
인간 배아 편집 연구에 대해 호의적인 분위기는 작년 12월 워싱턴에서 열렸던 '국제 인간유전자 교정 정상회담'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 미국 국립 의학 아카데미, 영국 왕립 과학 협회, 중국 과학원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20개국 500여 명의 과학자가 참여한 이 회의에서는 "생식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배아의 조작 연구는 자제하는 것이 좋지만, 유전자 교정 연구를 당장 중단하지는 말자"는 합의안이 도출되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인체에 응용하는 연구에 선구자로 인간 배아의 유전자 교정에 찬성하는 대표적인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이 회의에 참석했던 하버드 의과대학의 조지 처치 교수는 "설사 일부 과학자들이 배아의 유전체 교정을 삼가 하는데 동의하고, 일부 국가에서 배아 교정을 금지하더라도 누군가는 연구를 계속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배아에 대한 유전자 교정 연구를 금지함으로써 최악의 시나리오에 빌미를 제공하는지 모른다"는 입장을 내보이기도 했다. 즉, 공식적으로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 연구를 허가하고 인정하는 것이 이를 금지해서 밀실에서 이런 실험이 진행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던 황진주 박사의 연구 발표가 있고 1년 뒤인 올해 4월 중국 광저우 의과대학의 판 용 박사는 인간 배아에서 HIV 감염을 억제할 수 있는 CCR5 유전자 편집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지만 이 연구는 1년 전처럼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1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인간 배아의 유전체 편집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통해 '생식 목적이 아닌 인간 배아의 조작 연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닌가 싶다. 일례로 에든버러 대학교의 생명윤리학자 사라 챈은 "나는 중국의 과학자들이 한 일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전적으로 변형된 GMO 인간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올해 4월 스웨덴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을 승인했다.
현재까지의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기술을 적용해 유전자를 교정하거나 편집하는 실험 결과는 이 기술의 몇 가지 한계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 배아에 이 기술을 적용하였을 때 원하는 대로 유전자가 교정되거나 편집되는 효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는 것이다. 예로 황진주 교수의 연구에서는 86개의 배아 중 4개의 배아에서만 표적 유전자 변이가 일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것도 전체 유전자가 아닌 엑손(exon)이라고 부르는 유전자 중 단백질로 발현되는 부분의 변이 여부만을 조사한 것이라 실제 성공 확률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1년 후 진행된 판 용 박사의 실험에서도 26개의 인간배아 중 4개에서만 유전자가 성공적으로 변형된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또한 유전체의 아무 부위에 원하지 않는 변이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도 중요한 기술적 장애이다. 이를 보통 오프 타겟(off-target) 효과라고 부른다. 앞으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인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표적 유전자에 정확하게 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효율을 증대시키고 유전체의 원하지 않는 부분에 무작위적으로 변이가 생성되는 것을 막는 이 두 가지 기술적 한계 극복 여부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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