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만두집
9월 2일. 베이징을 떠나는 날 새벽부터 비가 내려 우비를 꺼내 입었다. 빗물이 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챙 달린 모자를 쓰고 그 위에 헬멧을 푹 덮어 썼다.
도로 갓길 중간중간 고여 있는 물웅덩이의 깊이를 알 수 없고, 혹시 하수도 뚜껑이 열려 있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차들이 과속으로 지나치며 아랑곳하지 않고 흙탕물을 튀겨댔다.
중국인들은 정말 성질이 급한 것 같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경적을 요란스레 울려대고, 한 뼘 빈틈만 보이면 잽싸게 범퍼를 들이민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운전을 하다 보니 성질을 내거나 다투는 걸 좀처럼 볼 수 없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베이징에서 싼허시로 가는 102번 국도변의 점포 간판들은 한 폭의 예술이었다. 앞 가게의 간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니까 뒤로 갈수록 간판이 조금씩 더 크게 돌출되면서 회화에서의 원근법을 상기시켰다.
비도 피할 겸 버스 정류장에서 바이두 맵을 열고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다가 우연히 3성급 숙박 시설을 찾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나마 페이스북과 블로그 포스팅을 한다며 스마트폰과 가까이 지낸 덕분에 여행 와서 인터넷 지도를 활용하고, 현지 정보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젊은이들에게 더 많이 배워야겠다.
해 저물어 싼허시 관문이 저만치 보이고 ‘이곳에 오신 것을 중국인민들이 환영한다’는 빨간색 전광판이 눈앞에 보였다.
9월 2일 아침 8시. 싼허시를 떠나 동쪽 위텐현 방향으로 달렸다. 어젠 우중 라이딩이었는데 오늘은 햇살이 따갑다.
시안에서 한단까지 108번 국도변에는 미루나무가 많았고, 한단에서 베이징까지 106번 국도변에는 버드나무가, 베이징에서 지금 동쪽으로 달리고 있는 102번 국도변에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많이 보였다.
제철 과일을 펼쳐 놓은 노점상 앞에 멈추자 아주머니가 얼른 다가와 먹어 보라며 작은 대추를 한 개 건네준다. 작은 게 참 달다.
추니는 한 봉지에 5위안(1천 원)어치를 사고서 덤을 달라며 비닐봉지를 벌린 채 조르고 아주머니는 안 된다고 계속 버티다가 한 움큼을 더 주며 웃는다. 정겹다. 호두도 천 원어치 더 샀다. 올해 수확한 속살 꽉 찬 호두라서 싱싱하고 고소했다.
오늘의 목적지 위텐현을 3km 앞두고 호두를 아스팔트에 내리쳐 까고 있다. 오늘따라 추니가 여유만만하다.
9월 3일. 오늘은 중국의 전승절이다. 즉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승리를 기리는 날이다. 나라마다 날짜가 다른데 중국은 일본의 항복 문서가 접수된 날을 기준으로 기념일로 한단다.
베이징을 출발해 동쪽으로 가는 102번 국도에서는 두텁게 덮인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하루 종일 살수차가 오가며 물을 뿌려댔다. 전승절을 앞두고 스모그를 막기 위해 며칠 전부터 베이징 인근 만여 개의 공장 가동을 중단시켜서 그런지 베이징에 있는 동안은 늘 공기가 맑았다.
말끔한 위텐현 거리에는 빨간색 자원봉사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청소를 하거나, 삼삼오오 상점 앞에 모여 전승절 행사 TV 생방송을 시청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념 풍선을 주며 광복 70주년과 전승절의 의미를 함께 나눴다.
9월 4일. 탕산시 펑룬구를 떠나 친황다오시 루룽현으로 향했다. 3일 동안 계속 라이딩을 해서 하루 쉬어 갈까 생각하다가 아침때의 가벼운 기분에 주섬주섬 짐을 쌌다.
잔뜩 흐린 날씨는 얼마 달리지 않아 보슬비로 바뀌었지만 우비를 꺼내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후 1시. 점심을 먹으려고 작은 만두집 야외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여기 만두 한 접시 주세요.”
“…….”
대답 없는 주인아저씨에게 벽에 붙은 사진을 가리키며 다시 말을 건넸다. 잠시 뒤 만두를 가져왔는데 한 입 베어 무니 자박자박 육즙이 고소한 맛을 냈다. 양고기와 야채를 썰어 넣은 것 같았다. 국물은 따로 없어 콜라 한 병을 주문했다.
바로 옆 식당 호빵 집 아주머니가 앞마당에 서서 우리를 줄곧 지켜보고 서 있었다. 내가 보기엔 중국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는데 설마 한국 사람을 처음 본 걸까?
부부 같기도 하고 친구 사이 같은 커플이 몸에 착 달라붙은 쫄바지 차림에 자전거에 잔뜩 짐을 싣고 다니는 모습이 신기해서 쳐다보는 건지, 불쌍해서 쳐다보는 건지, 아니면 자기네 집 호빵도 맛있으니까 좀 사 먹어 보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주머니 호빵 두 개 주세요.”
옆집 아주머니에게 손가락 두 개를 펴 들자 후다닥 들어가 한 접시에 담아왔다. 속에 부추를 잔뜩 넣은 야채 호빵이었다.
“2위안, 여기 있어요. 참 맛있어요.”
식사 도중에 옆집 호빵 값은 먼저 계산했다.
“여기요, 만두 두 개만 더 주세요.”
이번엔 중국 만두를 좋아하는 추니가 한 접시 더 주문했다. 만두를 좋아하기 보다는 그동안 딱히 입에 맞는 요리를 먹어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식당 안에서 신발을 신은 채 식탁 위를 건너뛰며 부산을 떨고 있던 꼬마에게 빨간 풍선 한 개를 불어줬더니 풍선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 엄마 손을 잡고 나왔다. 아이 엄마가 우리한테 고맙다는 말을 한다.
아이 엄마에게 청실홍실을 줬더니 받자마자 양손으로 뒷머리를 모아 쥐고 질끈 동여맸다. 아마도 머리띠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음식 값 여기 있어요.”
지갑을 열어 20위안(4천 원)을 꺼내 들었다.
“아녜요, 아녜요.”
손을 내저으며 받지 않겠단다.
“아니, 그러시면 안 되죠. 받으셔야죠.”
“…….”
뒷걸음치며 뭐라 하면서 극구 사양을 한다.
“아녜요. 여기 있어요. 20위안.”
10위안짜리 지폐 두 장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돌아서자,
“여기, 여기 보세요.”
식당 아저씨가 10위안짜리 지폐 한 장을 들고 와 나에게 건네준다.
이 작은 구멍가게에서 얼마나 이윤이 남는지는 몰라도 또다시 만나기 어려운 한국 손님에게 점심 한 끼를 무료로 주는 게 어디 그리 쉬우랴. 마음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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