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노동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날아와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그러는 것 같다."
지난 4월 30일 노동절을 하루 앞두고 열린 '이주노동자 2017 노동절 집회’에 참석한 섹알마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한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이주노동자는 한국사회에서 인간이 일할 수 없는 극한의 노동환경에서 작업하는 '기계'로 분류되고 있다.
실제 지난 5월, 한 달 동안 돼지 분뇨를 치우다 4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지난 12일, 경상북도 군위군 양돈장에서 네팔 노동자 2명이 사망한 것에 이어 27일에는 경기도 여주에서 중국과 태국 노동자 2명이 사망했다. 모두 돼지 분뇨 정화조를 청소하다 봉변을 당했다.
기계가 해야 할 일을 사람이 하다 결국...
이번에 문제가 되는 양돈장 정화조 청소는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하는 일이다. 돼지 분뇨의 악취는 물론, 분뇨에서 황화수소나 암모니아 등 유해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 12일 사망사건이 발생한 군위군 양돈장의 경우, 황화수소가 유해가스 농도 기준치의 2.5배나 검출됐다.
당시 사업주는 청소기계가 고장이 났다는 이유로 사망한 두 명의 노동자에게 수작업을 지시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업주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마스크와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비조차도 지급하지 않았다.
사고 후 대구고용노동청에서 실시한 특별근로감독에서 이 사업장은 산업안전법 관련 위반 사항이 18건 적발됐다.
지난 27일 경기도 여주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도 마찬가지다. 사망한 두 명의 이주노동자는 분뇨를 치우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함께 작업하던 또 다른 이주노동자 한 명도 현재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분뇨에서 발생한 유독가스에 질식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시신을 부검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근로감독 실시해야 한다"
문제는 이번에 알려진 양돈장 같이 열악한 처우에 놓인 이주노동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였다 하더라도 사업주 허가 없이는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산업안전보건법, 근로기준법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민주노총과 이주노도, 이주공동행동 등은 4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에 사망사건이 일어난 양돈장 한두 곳만의 문제는 결코 아닐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규제가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 비규제 상황에서, 법전에 적힌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 조항들은 활자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이거나 차별을 겪어도 사업주 허가 없이는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법전에 적힌 규제들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에 이들은 이에 가장 먼저 취해져야 할 조치를 두고 "해당 사업장의 사업주를 구속하는 것"이라고 꼽았다. 이들은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경험들을 통해 노동법 어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장들"이라며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법을 어기면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이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사고가 터진 후에야 부랴부랴 수습에 나서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반복되는 죽음을 막을 수 없다"며 "다른 사업장에서 문제의 양돈장과 같은 일들이 발생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근로감독을 당장 실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관이 협력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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