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 속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을 만나 "사드와 관련한 한국 정부 조치는 전적으로 국내적 조치로 기존 결정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 전하려는 것이 아니며 한미 동맹 정신으로 해결한다는 점 미측에 강조했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3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매티스 장관과 만난 뒤 이 같이 밝혔다.
한 장관은 또 회담에 앞서 사드에 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정리한 문안을 만들었다면서 "(회담에서) 문안대로 미국 측에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측에) 전달한 문안은 대통령이 몇 차례 사드와 관련해 말한 것을 종합 정리해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티스 장관은 사드 배치와 관련한 한국 측 조치에 대해 "이해하고 신뢰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 장관이 전했다.
한 장관은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고 문건 누락이라든지 환경영향평가라든지 이런 것을 적시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고 했으나, 사드 부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적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 앞서 한 장관은 "매티스 장관에게 사드 배치의 국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씀을 전하겠다"면서 "사드 배치의 다른 변경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전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같은 입장에 매티스 장관이 "이해하고 신뢰한다"고 밝힌 대목은 사드의 절차적 정당성을 밟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방침을 일단 수긍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측이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을 경우 사드 보고 누락에 대한 청와대의 조사가 한미 양국의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우려됐던 일은 벌어지지 않은 셈이다.
이에 앞서 1일(현지시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사드 장비 반입 보고 누락 사건에 관한 설명을 들은 허버트 맥마스터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도 "설명해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미국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 인사들이 한국의 사드 논란이 '국내적 문제'라는 점에 공감을 표하고 직접적인 말을 아낀 모양새다.
이 같은 미국측의 태도는 6월 말로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드 배치를 둘러싼 양국간의 입장이 완전히 조율된 상태는 아니어서 외교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특히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6월까지 마무리하고 연내 배치 완료 및 실전 운용에 돌입하려던 당초 한미 간의 계획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절차적 정당성 확보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 상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를 만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이 강력히 요구되고 있다"며 "(환경영향평가와 국회 논의는)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민주국가라면 치러야 할 비용"이라고 했다.
이는 주한미군에 공여한 부지가 일반 환경영향평가 기준인 33만㎡보다 적은 32만㎡이어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대상이라는 국방부의 기존 방침을 변경하겠다는 의미이다. 공청회 개최 등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경우 약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돼 사드 체계의 본격 가동 시기도 늦춰지게 된다.
이처럼 '사드 철수'와는 선을 그으면서도 절차적 정당성을 앞세워 시간 벌기를 해두고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외교적 협상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복안인 셈이다.
매티스 장관 및 맥마스터 보좌관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취지로 답하며 말을 아낌으로써 당장 외교 문제로 비화되는 상황은 막았지만,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한때 사드 비용을 한국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최종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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