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 만리장성을 찾아 나섰다. 지구촌에 건설된 수많은 인공 구조물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한 성. 자전거를 타고 성에 올라가 볼까 생각해 봤지만 참아야 했다. 만리장성은 TV를 통해 대충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가 보면 어떤 느낌일까?
지하철 2호선 지수이탄역에 하차해 5분 정도 걸어가니 그곳으로 가는 버스 터미널이 보였고, 버스는 승객이 꽉 차는 대로 즉시 출발하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한 시간이 걸리는데, 요금은 버스 안에서 1인당 이천 사백 원을 냈다.
베이징 북쪽 만리장성의 일부 구간인 팔달령장성 성벽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걸어서 올라가거나 슬라이딩카 또는 케이블카를 선택할 수 있는데 우린 슬라이딩카를 택했다.
만리장성은 2천 년 전 진시황제 때부터 북쪽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쪽 랴오양에서 서쪽 간쑤성까지 연결됐는데 갈라져 나온 지선 성벽까지 포함하면 총 5,000여 km에 달한다고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열두 배가 넘고, 우리의 자전거 동북아 대장정에서 석 달 동안 달리는 거리보다도 더 멀다. 덜커덩, 삐거덕. 슬라이딩카를 타고 아찔한 급경사를 내려오느라 진땀을 뺐다.
다음 날. 바이두 맵을 열어 베이징 북쪽 따산즈에 위치한 ‘798예술구’를 택시기사에게 보여줬다. 원래 이곳은 무기를 생산하던 공장 지대였는데 냉전이 끝나면서 무기 생산이 활력을 잃고 공장들이 폐쇄되거나 외부로 옮겨지자 그 자리에 2002년부터 예술가들이 임대를 얻어 예술 공간을 조성하고, 국제 예술제를 개최하면서 점차 세계적인 명소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곳에 도착해 보니 카페, 화랑, 갤러리들이 거친 고철 구조물들과 친한 척 어울려 있었다. 무엇보다도 관심을 끄는 것은 무기 생산 공장과 창작 예술과의 만남이 주는 정반대의 극적인 느낌이었다.
냉전의 모습이 이렇게 평화와 예술의 공간으로 승화되어 나타날 줄이야. 비가 내리는데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왔다. 대부분의 갤러리 입장이 무료였는데, 입장료 천 원을 받는 곳도 있었다.
오후에 지하철을 타고 서울 인사동과 흡사하다는 ‘난뤄구샹’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액세서리 같은 예쁜 소품 가게들로 늘어선 500m 되는 좁은 골목이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상점마다 간판 디자인이 깔끔하고, 실내 인테리어는 수수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중국 상품이 싸고 조잡하다는 그동안의 인식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20분 정도 걸어서 ‘스차하이’로 발길을 옮겼다. 크게 보면 난뤄구샹과 비슷하지만 굳이 구별한다면 난뤄구샹은 젊은 층이 선호하는 예술 소품과 카페 위주고, 스차하이는 멋진 호수와 함께 고전풍이 드리워지고 먹자판이 조금 더 강하다고 할까.
이곳에서 유명한 양꼬치구이를 먹어 보려고 긴 줄에 이어 섰다. 쭈~욱 꼬챙이 끝으로 노릇노릇하게 익힌 연한 고깃살을 빼내자 속살 육즙이 가득 차 있고, 후추 향이 독특하고 매콤했다.
9월 1일. 보름 전 땅바닥에 떨어뜨려 혼수상태에 빠진 삼성카메라를 베이징 에서 고치려고 서비스센터를 찾았는데 이곳에서 구입한 제품이 아니면 수리기간이 오래 걸리고 또 며칠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휴우,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카메라를 한국으로 보내 수리해서 우리가 도쿄에 도착하는 날짜에 맞춰 일본으로 다시 보내도록 하려고 영안리 우체국을 찾아갔다.
“실례합니다만, 말씀 좀 묻겠습니다.”
“…….”
“한국에서 왔어요. 카메라를 한국으로 좀 부치려고요”
“이곳에선 안 됩니다.”
“이걸 한국으로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른 손님이 들어와 우리의 대화를 가로채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렸다.
“카메라를 한국으로 부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의자에 비스듬히 등 기대고 앉아 대답하는 영안리 우체국 여직원에게 번역기로 우리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 여직원은 다소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건국문 우체국의 위치를 알려줬다.
“네, 감사합니다.”
택시를 타고 운전기사에게 바이두 맵에 표시된 목적지를 확대해서 보여줬다. 도착해 보니 규모가 꽤 큰 건물이었다.
“저쪽으로 가 보세요.”
“코너를 돌아서 끝으로요.”
이리저리 세 번 창구를 옮겨 가져간 사진기를 배낭 속에서 꺼내 보였다.
“이곳에선 사진기를 외국으로 보낼 수 없어요.” 남자 직원의 대답은 명료했다.
“아까 영안리 우체국에서 이곳에 가면 부칠 수 있다고 해서 왔는데요.”
“여기는 우편물 이외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외국 화물운송회사를 알려드릴 테니 그쪽으로 가세요.”
‘DHL 국제운송회사’라는 곳이었다.
40분간 이동해 택시기사가 내려준 곳에서 국제운송회사를 찾기 시작했다. 길 가는 이에게, 구멍가게 크기의 편의점인 ‘초시’ 직원에게, 한국 식당 종업원에게, 환경미화원에게 닥치는 대로 위치를 물으며 동서남북을 헤맸다.
가르쳐 준 주소가 ‘신원가 45호’는 분명 맞는데 우리가 찾고 있는 ‘DHL’은 안 보인다. 주소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DHL이 없는 걸까? 뺑뺑 몇 번 돌고 나니 배가 고프고 힘들었다.
베이징 건국문 우체국 직원들이 미웠다.
‘외국인에게 이런 식으로 안내를 해 주다니, 그동안 한 달 여정에서 가는 곳마다 중국인들의 따뜻한 정을 흠뻑 받았는데 더욱 잘 해야만 할 공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이 이렇다니…….’
중국 우체국 공무원들의 좀 뻣뻣하고 무성의하고, 거드름을 피우던 모습과 종일 헛수고를 한 서운함이 교차되면서 괜스레 공무원들만 원망했다.
드디어 베이징을 떠날 때가 됐다. 호텔에 돌아와 짐을 새로 싸고, 체인에 기름도 치고, 마음을 다잡고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했다.
우린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자전거 보헤미안(Bike Bohemian)이다. 속세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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