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저녁 MBC를 통해 생중계된 서울시장 후보들의 TV토론만 봐도 그랬다. 각종 현안을 두고 상대방을 향해 날선 공방을 주고 받던 여야 후보들이지만, 이들의 칼끝이 마지막으로 향한 것은 다름 아닌 전·현직 대통령들이었다.
비장한 오세훈 "미래세력과 무능·부패·과거세력 간의 전쟁"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부동산, 사교육비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당시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싸잡아 비판했다.
오 후보는 "사교육비 문제의 책임이 어디에 있나, 책임 소재를 따지면 바로 노무현 정부 5년에 있다"며 "연간 12~13%의 사교육비가 증가했고,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지 않았느냐"고 몰아쳤다.
오 후보는 "당시 집값 폭등은 끔찍했다"며 "한명숙 후보의 총리 재임 중 3번의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그 때마다 앙등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오 후보는 "당시 기업도시, 혁신도시를 한다고 전국의 땅을 수용했고, 그 돈이 서울로 몰려 강남 집값이 폭등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오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는 현 세대와 함께 미래를 책임질 세력과 무능·부패·과거 회귀세력과의 전쟁"이라며 "전국 판세를 보면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고 지적하기까지 했다. 각 지역에서 예상 외의 선전을 펼치고 있는 '친노(親盧)' 후보들을 직접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어 오 후보는 "누가 미래를 책임질 시장인지, 아니면 과거 회귀세력의 시장인지 현명한 판단을 해 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또 오 후보는 "여러 후보가 복지-교육-보육에 엄청난 예산을 쓰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그 예산은 현직 시장이 목돈을 들이는 사업을 안 하면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며 "건설비는 한 번 쓰면 되지만, 교육이나 복지 예산은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절대 낮출 수 없다"고 했다. 야당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공약을 한꺼번에 비난한 발언이다.
오 후보는 "얼마나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하고 있느냐"며 "재정파탄으로 전 유럽을 위기로 몰고 간 그리스를 보라, 서울도 그리스처럼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 18일 밤 열린 MBC TV 토론에서 선전을 다심하고 있는 여야의 서울시장 후보들. ⓒ뉴시스 |
'하나고 특혜의혹' 제기한 한명숙 "이명박-오세훈-이재오-공정택의 합작품"
야당 후보들은 반대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를 정조준했다.
민주당 한명숙 후보는 "오 후보는 사교육비 증가의 원인을 참여정부에 미뤘는데,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사교육비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영어 몰입교육, 특목고 확대, 고교등급제 부활, 수능성적 공개 등 사교육비 조장정책 때문에 제기되고 있다"고 받아쳤다.
특히 한 후보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서울 은평구 소재 자립형 사립고 '하나고등학교' 특혜의혹을 거론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후보를 공격했하는 모습이었다.
한 후보는 "서울시가 1년에 875억 원을 교육비로 쓰고 있는데, 651억 원을 하나고 부지임대에 지원했다"며 "재단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이고, 정권의 실세인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전 지역구에 설치됐다"고 지적했다.
한 후보는 "자사고라는 건 지원도, 간섭도 안 하는 게 아니냐"며 "하나고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시장, 이재오 위원장, 구속돼 있는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아 합작한 특혜의혹"이라고 강조했다.
'돌아온 불판' 노회찬 "비 새고 있는데 '디자인 벽지'가 웬 말이냐"
하나고 문제에 대해 오세훈 후보가 "하나고는 80%를 비강남 지역, 20%는 배려 대상자 중에서 뽑고 있다, 비강남 지역의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가난의 대물림을 막자는 취지"라고 설명하자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공격에 가세했다.
지난 2004년 총선 과정에서 "불판을 갈자"는 명언을 남겼던 '토론의 달인'다운 면모도 드러냈다.
노 후보는 "하나고에 입학하면 1년에 1200만 원이 든다는데 강북에 루이비똥 명품관을 만들면 교육격차가 해소되느냐, 강남·북 부자들끼리의 교육격차만 해소하자는 게 아니냐"고 지원사격을 퍼부었다.
특히 노 후보는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대선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를 오버렙시키기도 했다.
노 후보는 "많은 국민이 우려하고 반대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한강에서만큼은 기어이 해보겠다는 게 오세훈 현 시장의 생각인 것 같다"며 "지금 급한게 한강에 배를 띄우는 것이냐, 천장에서 비가 새고 있는데 디자인 좋은 벽지로 방안을 도배하겠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복지예산 문제를 논쟁하는 과정에서 노 후보는 "전면적인 무상보육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고, 작년 보건복지가족부가 밝힌 계획이기도 하다"며 "반면 오세훈 후보는 소득기준 하위 70%에 대해서만 실시한다고 한다. 거꾸로 타는 보일러 이야기는 들어 봤지만, 무슨 복지정책이 거꾸로 가나"라고도 했다. 방청객들 사이에선 폭소가 터져 나왔다.
한편 자유선진당 지상욱 후보는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자제하면서 '자기 PR'에 집중하는 편이었다.
한 방청객으로부터 "심은하 씨의 남편이라는 게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은 지 후보는 "아내는 두 딸의 엄마이자 보이지 않는 내조를 해 주는 고마운 참모고, 후원자"라며 차분하게 응수하는 모습도 보였다.
"공약에 현실성 있나", "제 과거 사찰했나", "거짓말 마라"…날선 공방
후보자들 간의 신경전에도 불꽃이 튀었다.
한명숙 후보는 자신의 국무총리 재임 시절을 언급하며 공세를 편 오세훈 후보를 향해 "제 과거에 대해 사찰 수준으로 조사한 것 같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최근 무리한 수사로 비난을 자초한 검찰까지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었다.
"한명숙 후보는 총리 재임시절 무상급식을 포기하지 않았느냐"는 오세훈 후보의 역공에 대해서도 한 후보는 "거짓말이다", "허구다"라고 적극적으로 응수하기도 했다.
노회찬 후보는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세훈 후보를 향해 "현직 서울시장으로서 사과할 용의가 없느냐"고 공세를 폈다.
지상욱 후보는 "오세훈 후보가 나경원 의원에게 '내가 나중에 대선에 출마하면 서울시장을 맡으라'고 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더라"며 대선출마 여부를 명확히 밝힐 것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오 후보는 "그 이야기는 사석에서 '언제가 됐든 나경원 의원은 제 후임으로 들어와 정책을 이어갈 수 있는 자질이 있다'고 한 덕담이 와전된 것 같다"며 "4년 동안 절대 한눈팔지 않겠다. 서울을 바꾼다는 책임감으로 반드시 임기를 마치겠다"고 답했다.
각종 현안에 대한 상호 토론이 길어지자 오 후보는 "다음 토론회 때 자료를 갖고 다시 이야기를 해 보자"라며 자신감을 드러내는 한편, 노회찬 후보를 향해서는 "의욕과 열정에는 높은 점수를 드리나, 공약에 현실성이 없다"고 혹평하는 등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날 KBS, 이날 MBC 토론에 이어 3차 서울시장 선거 TV 토론회는 19일 밤 SBS를 통해 방송된다. SBS 토론회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민주당 한명숙 후보 간의 양자토론으로 진행될 예정이어서 다른 후보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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