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는 개식, 국민의례 및 동학의례, 동학농민혁명 폐정개혁 12개조 낭독, 기념사 추모사 축사, 동학행진곡 합창, 심고, 폐식, 문화행사 순으로 진행됐다.
동학농민혁명은 조정의 탐학과 수탈,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외적의 침략에 대항해 보국안민과 척양척왜의 깃발을 높이 든 혁명이다.
대접주 백낙도를 중심으로 지난 1894년 4월 초 기포했으나 세부족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은 단성, 의령, 사천, 고성, 남해, 하동, 함안, 의령, 진주 등 서부경남 전역으로 세력을 확산했고, 9월 제2차 기포 때에는 영호남 동학군이 협력해 진주성을 무혈 입성하기도 했다.
10월 하순까지 동학군과 일본군과의 크고 작은 전투가 서부경남지역에서 일어나 결정적으로 10월 14일(양 11월 11일) 하동 고성산에 결집한 서부경남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의 신식무기에 무너졌지만, 이후 동학농민군은 서부경남 지역 항일운동의 중심세력이 됐다.
지난 2015년 10월 28일 산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동학농민군의 고귀한 희생을 위령하고 척양척왜·보국안민의 높은 뜻을 기리고자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에 '동학농민혁명 영남지역 발상기념비'를 세웠다.
하재호 산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장은 “동학혁명군과 후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이들의 보국안민 정신을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이번 기념식을 개최했다”며 “동학농민혁명의 인간 평등 정신과 맑은 사회를 이룩하려는 의지를 이어받아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말했다.
이창규 시천면장은 “영남지역 최초의 동학혁명 발상지인 시천면 내대리에서의 지속적인 기념식 개최를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관심과 호응이 필요하다”며 “순도하신 선열들을 위령하고 그 뜻을 계승하는데 다 같이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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