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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서로 귀를 열자는"

[현장] 죽산 조봉암 선생 서거 50주년 추도식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竹山 선생 서거 50년을 맞아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서로 귀를 열자는.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활짝 마음을 열자는.
생각이 다르고 말이 다른 사람들이
귀를 열고 마음을 열 때
세상은 아름다워진다고.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자는.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기쁨도 이웃과 함께하자는.
가진 것이 다르고
누리는 것이 다른 이웃들이
눈을 마주 보며 웃을 때
나라가 빛나는 나라가 된다고.

아름다운 세상 빛나는 나라를
어둠과 죽음으로 덮는 사람들에 의해
당신이 가신 지 반 백 년,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그들과도 길동무가 되자는.
말을 나누고 아픔과 슬픔을 나누자고.

푸르고 평화로운 땅을 위하여,
따듯하고 싱그러운 나라를 위하여.
산과 강, 돌과 바위가
풋풋하게 살아 있는 땅을 위하여.
짐승이며 새며 벌레까지
사랑과 기쁨으로 넘치는 나라를 위하여.

다시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말을 나누고 뜻을 나누자는.
이 땅은 우리만 살다 갈 땅이 아니다
이 나라는 우리만 살다 갈 나라가 아니다.

내 손자의 손자
그 손자의 손자가 우리끼리만이 아니고
이웃나라와도 어울어져 오순도순
천년을 만년을 이어서 살
푸르고 평화로운 땅을 위하여,
따듯하고 싱그러운 나라를 위하여.


▲ 31일 열린 죽산 조봉암 선생 추도식에서 죽산조봉암기념사업회 김용기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프레시안

50년 전, 조봉암 선생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며 시 '그 날'을 발표했던 젊은 시인은 이제 고령이 돼 다시 고인의 묘 앞에 섰다. 신경림 시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추모시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다'를 낭송했다.

진보당 당수였던 죽산 조봉암 선생이 간첩 혐의로 '법살(法殺)'된 지 50년이 되는 31일, 서울 망우리 공원묘역 내 죽산묘지에서 5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죽산조봉암기념사업회와 유족회의 주최로 열린 이날 추도식에는 유가족과 김용기 기념사업회장,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신경림 시인,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조승수 의원, 박상은 의원, 박찬종, 이부영 전 의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조봉암 선생의 장남 조규호(60) 씨는 유족을 대표해 "여야 정치인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아버님의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진보당의 비공식 청년학생조직 '여명회'에서 조직부장을 지내며 죽산 선생과 인연을 맺었던 김용기 기념사업회장은 "조 선생이 단행했던 농지개혁이 보여주는 것처럼, 조 선생의 정치 신념은 언제나 민생과 인권에 있었다"며 "이런 선생의 뜻을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사회학자 짐멜이 '앞서가는 자는 반드시 매를 맞는다'라고 말했는데, 죽산 선생이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자가 받았던 억압의 상징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늦었지만 '사법 살인'으로 억울하게 떠나신 고인의 명예 회복이 빨리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봉암 연구>를 펴낸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0년 전 진보당에 관련한 책을 접하면서 처음으로 조봉암 선생을 알게 됐다"며 "독재정권이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조 선생은 점차 대중들에게 잊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박 교수는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 양극화를 목도하고 있다"며 "용산 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를 바라보면서,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진 조봉암 선생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조 선생은 소통의 정신을 늘 강조하셨는데, 그것을 아는 정치인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선생의 50주기를 추모하는 정치권의 여러 행사가 국민에게 정치적으로 인식돼 소통이 단절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 죽산 조봉암 선생의 장녀 조호정 여사. 왼쪽은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말을 하고 있는 조봉암 선생의 장남 규호 씨 ⓒ프레시안
▲ 헌화하는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프레시안

죽산 조봉암 선생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정치 지도자로 평가받는 죽산 조봉암 선생은 1959년 7월 31일 북한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법살(法殺)됐다.

조봉암 선생은 1898년 인천 강화에서 출생해 활발한 항일독립운동을 벌이다 1919년 3·1 운동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5년에 조선공산당 조직중앙위원장을 지냈으며, 1930년 다시 ML당 활동으로 7년간 복역했다.

1946년 박헌영 노선을 비판하고 조선공산당과 결별한 선생은 1948년 무소속으로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농림부 장관 시절 그가 단행했던 농지개혁은 현재까지도 치적으로 평가 받는다.

1950년 제2대 국회부의장을 지내면서 대중 속에 각인된 조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적할 야당 지도자로 부상했다. 1956년 창당한 진보당의 대선 후보로 나선 선생은 그해 대선에서 "피해 대중은 뭉치라"는 구호 속에 216만 표(득표율 23.9%)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조 선생의 선전은 당시 전무했던 진보정당 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이승만 정권에게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때문에 조 선생은 1959년 7월 31일, 국가보안법상 간첩죄로 사형됐다.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진보당 사건은 이승만 정권이 정적인 조봉암 선생을 제거하려는 의도에서 저지른 비인도적 인권 유린이자 정치 탄압"이라고 결정했으며, 이에 유가족들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아직까지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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