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민항일전쟁 기념관에서
8월 27일.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예약한 이비스 베이징 다청로드 호텔을 찾아가려고 바이두 맵에 주소를 입력하려고 하니까 잘 안 된다. 영어로 입력해도 안 되고, 지도상에 이비스 호텔 건물 표시도 찾을 수 없었다.
한참 동안 노상에서 스마트폰을 주무르고 있는데 마침 한국에서 2년간 어학연수를 받은 젊은 여성을 만나 물어보니 바이두 맵에는 ‘이비스’를 ‘이필사’ 즉 ‘李必思’라는 중국어 발음으로 입력해야 한단다.
이비스 호텔 앞에서 중국인민항일전쟁 기념관을 가려고 택시 뒷문을 연 채 운전기사와 요금을 흥정했다.
“기념관까지 얼마입니까?”
“…….”
운전기사가 뭐라 뭐라 하면서 손가락으로 택시미터기를 가리키는 걸 보니 미터기에 표시되는 대로 지불하라는 얘기 같았다.
목적지에 도착해 지폐로 30위안을 주고 잔돈 9위안을 거슬러 받았다. 아마 미리 흥정을 해야 한다는 택시는 개인이 무허가로 호객 영업하는 택시의 경우인 모양이었다.
중국인민항일전쟁 기념관은 베이징 중심가에서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중일전쟁이 시작된 1937년 ‘7ᆞ7사변’의 발생지인 노구교 다리 바로 옆에 명나라 때 지어졌다는 ‘완핑청’이란 고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기념관은 중일전쟁 50주년인 1987년에 세워졌는데, 1931년 ‘9․18사변’(일명 만주사변)부터 1945년까지의 항일전쟁의 과정을 기록해 놓았다고 한다. 기념관 입간판은 중화인민공화국에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문호를 개방한 등소평이 직접 썼다고 한다.
기념관에 들어서자마자 높이 5m, 길이 20m가량 되는 거대한 구리로 된 부조 조각이 한눈에 들어왔다. 군인, 농민, 학생, 부녀, 아동들이 저마다 눈을 부라리며 무기를 들고 서 있고, 부조 위에는 여러 개의 커다란 구리종이 무겁게 걸려 있었는데 이는 일본군에 맞서 싸우는 경종을 계속 울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기념관 내부에서는 일본군의 중국인 학살, 일본군과의 전투 장면, 당시 쓰이던 각종 무기들을 그림과 조각, 모형으로 전시해 놓고 있었다.
윤봉길 조선항일지사가 1932년 4월 29일 상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을 암살하고 그해 일본에서 순국했다는 기록도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일본군의 ‘위안소’ 운영 사진도 꽤 넓은 벽면에 전시돼 있었다. 난징학살 전시장에는 1937년 12월 13일 당시 일본군이 40여 일 동안 30만 명의 중국 양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는 기록을 보여주고 있었다.
731부대(일명 마루타 부대) 코너에서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극악한 생체 실험을 자행했던 생생한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보기도 힘들 정도로 처참한 장면들이었다.
기념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이런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과 일본의 참회와 배상 수준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해당 국가, 그리고 국제사회가 용인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져야지 자신들의 잣대로 사죄를 하면 아픈 역사는 치유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기념관 광장에서 ‘광복 70주년 기념, 화해와 배려, 지난 아픈 역사는 화해로 풀고 밝은 미래는 배려로 열어 나가자.’라고 적힌 여행 소개서와 빨간 기념 풍선을 관람객에게 나눠줬다.
베이징 우체국 직원에게
8월 28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 인근에 위치한 이비스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이동 중에 추니의 자전거 기어가 변속이 되지 않아 가까운 자이언트 MTB 전문점을 찾아갔더니 주인은 정성들여 고쳐 주고, 다른 부분도 일일이 기름 치고 청소까지 해줬다.
이곳에서도 역시 무료로 서비스를 받았다. 벌써 네 번째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신세를 졌다.
이비스 호텔 체크인. 더듬거리며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 조금 편리했다. 게다가 하루 숙박료 칠만 원이면 베이징에 있는 다른 호텔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편이었다.
객실이 호화롭지도 않고 기본 용품만 비치되어 있는데 깨끗하고 수수해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하긴 이 정도면 우리 자전거 보헤미안에겐 솔직히 과분하다.
아뿔싸!
천안문 광장을 찾아 나섰는데 9월 3일 전승절을 앞두고 기념식 준비를 하느라 경찰들이 광장 출입을 막고 있었다. 다른 관광객들도 모두 발걸음을 돌렸다.
꿩 대신 닭! 우린 20분 정도 터덜터덜 걸어 왕푸징 거리에 도착했다. 1인당 육천 원을 내고 오픈카에 올라 40분간 베이징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왕푸징 거리로 되돌아왔다.
먹자골목으로 유명한 이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이 뭐가 그리 많을까?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살아 꿈틀거리는 전갈을 나무 꼬챙이에 꿰어 숯불구이를 하고 있었다. 허연 등뼈가 드러난 채 빙빙 꼬인 뱀과 왕거미, 매미, 사마귀 같은 혐오 식품 가게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고, 몸이 허하신 분들이 먹는 음식이라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골목에는 액세서리와 보석 가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추니가 삼십만 원짜리 가방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돌아서려 하자 가게 주인은 이십만 원에 팔겠다고 흥정을 한다.
그래도 발길을 돌리자 십만 원에 가져가란다. 우리가 가격 때문에 주저하는 줄 안 모양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