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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분단은 남의 탓, 통일은 우리 손으로!

[평화통일시민강좌] <1> 역사학자 김기협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2015년과 지난해에 이어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평화통일시민강좌'를 연재합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평화통일시민강좌는 '새정부 통일정책, 이렇게 가야한다'를 주제로 7월 15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진행합니다. (☞강좌 소개 바로 가기)

10.4 선언의 주역이었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지난 10년간의 남북대결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는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정부가 시급하게 취해야 할 정책들이 무엇이 있을지 살펴보고 다시 6.15시대로 돌아가기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자리입니다.

새로운 정권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냉전의 적폐를 해소하고 평화통일의 새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여론형성의 장이 될 ‘평화통일시민강좌’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총 5강으로 구성된 강좌의 시작은 역사학자 김기협 선생의 강연입니다. 김 선생은 근대부터 현대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 양상을 살펴본 뒤 향후 우리가 통일을 향해 나가야 할 방향을 짚었습니다. 다음은 주요 강연 내용입니다.

▲ 역사학자 김기협 ⓒ평화통일시민행동

전론 : 인류사회의 정치 환경이 바뀌고 있다.

평화통일 운동을 실천하는 분들에게 문명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의견을 내놓게 된 이 기회를 반갑게 생각합니다. 지금 인류사회가 문명사의 큰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으며, 그에 따라 평화통일 운동을 둘러싼 전 지구적 정치 환경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평화통일 운동의 전망과 바람직한 방향에 관한 의견을 내놓고자 합니다.

제 의견이 유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전제로 하는 사실의 타당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가 아닌 분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에서 이런 명제의 엄밀한 확인은 어려운 일이지요.

유럽에서 발원해 19-20세기 동안 인류사회를 휩쓴 "근대문명"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그에 따른 현상 중 오늘의 주제와 관련해서 생각할 점을 몇 가지 뽑아 놓겠습니다.

1. "西勢東漸"(서세동점), 즉 서양 사정의 변화가 다른 곳의 사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19~20세기 동안 전개되었던 형세가 해소되고 있습니다.

2. 개인주의 원리에 입각한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역시 개인주의 원리에 입각한 선거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근대인이 경멸감을 품고 "봉건적"이라고 불렀던 유기론적 질서 원리의 복원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3. 절대주권의 주체인 "국가"를 앞세운 세계질서의 원리가 효용성을 잃고 있습니다. 국가보다는 민족이 공동체의 틀로서 역할이 커지겠지만, 그 또한 근대 민족주의와 같은 배타성을 극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자연과의 긴장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권리로서 인권보다 인류사회의 총체적 득실로 관심이 옮겨갑니다.

본론 : 평화통일의 전망과 그에 따르는 과제들

제목에 "남의 탓"을 넣었습니다. 통일처럼 민족 주체성을 강조해야 할 과업 앞에서 남의 탓 앞세우는 것이 엉뚱하게 들릴 수 있지요. 도덕적 수련을 위해서는 "내 탓"을 앞세우는 것이 좋지만 현실 속의 사업을 놓고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잘못된 일을 놓고 반성할 것은 투철히 반성하되, 상황이 바뀔 때는 변화의 의미를 정확하게 포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현대사를 통해 우리 민족공동체의 대응에 반성할 잘못이 전혀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많은 잘못이 있었는데, 그 대부분이 외부 사정으로 촉발된 것이었습니다. 그 외부 사정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우리의 잘못된 자세가 굳어진 것도 많습니다. 그 외적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내부 투쟁에 너무 치우쳐 주체 형성에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외부 사정이 크게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정확한 이해와 판단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세계정세 변화의 네 가지 측면을 전론에서 짚었습니다. 이제 그 각각의 측면을 놓고 우리의 통일 과제에 관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치욕과 고통의 역사에서 벗어날 기회


개항기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한국근현대사를 정리하면서 저는 외인론(外因論)에 기운 입장을 취합니다. 어느 시기에나 착한 사람, 악한 사람이 있었고 현명한 사람, 우둔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백여 년 동안 착하고 현명한 사람들의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하고 악하고 우둔한 사람들이 활개를 친 일이 많았던 것은 민족사회 외부의 형세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1945년까지는 일본의 위세가 민족사의 흐름을 수렁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이후에는 미국의 존재가 한반도 형세에 질곡으로 작용했습니다. 을사오적이 도장을 찍은 것은 일본의 압력 때문이었고 이승만이 힘을 쓴 것은 미국을 등에 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함으로써 한반도를 긴장 상태에 묶어놓고 있습니다.

서세(西勢)가 가장 강한 때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였습니다. 거의 전 세계가 열강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서세의 끄트머리에 달라붙은 일본의 위세만으로도 동아시아 천하체제를 무너트리고 한반도를 넘어 중국까지 유린할 정도였지요.

두 차례 세계대전을 계기로 서양의 위세가 내리막으로 접어들었지만 변화는 완만했습니다. 20세기 말까지도 미국의 패권이 당당한 것으로 보였지요.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자원과 환경 문제가 갈수록 두드러지게 부각된 것은 문명과 자연의 관계가 한계에 이른 결과였고, 서양의 위세를 위한 근거가 무너진다는 신호였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반동노선이 나온 것은 체제 운용이 어렵게 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냉전"이란 이름으로 반세기를 끌어온 두 진영의 적대적 공생 관계가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무너졌습니다. "세계경찰"이란 이름으로 제시된 미국 패권의 1극 체제는 신기루였습니다. 경쟁자가 보이지 않으니 유일 패권처럼 보였지만, 그 기반이 무너져 있었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드러나 왔지요.

21세기 들어 중국의 부상 앞에서 미국의 모습은 갈수록 초라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정권"이란 괴이한 지도부를 갖게 된 것도 미국인 대다수가 만족할 만한 밝은 전망을 누구도 제시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결과로 보입니다.

사드 배치 문제에서도 미국의 곤경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사드만이 아니라 어떤 미사일방어망도 실용 가치가 없는 무기 개념입니다. 투척무기(projectile weapon)는 던지기 전에 못 던지도록 막아야 방어가 됩니다. 일단 발사된 투사체를 맞추는 데는 고정된 표적 맞추는 데와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높은 기술이 필요하고, 설령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 해도 비현실적 수준의 비용이 듭니다. 미사일방어망은 현대인의 과학 신앙을 이용해서 군수산업에 돈을 끌어들이는 야바위일 뿐입니다. [정욱식의 <사드의 모든 것>, 크레이그 아이젠드래스 등의 <미사일 디펜스 - MD, 환상을 좇는 미국의 방위전략> 참고.]

▲ 지난 4월 26일 새벽 사드 발사대를 포함한 주요 장비가 성주 롯데 골프장 안으로 반입되고 있다. ⓒ연합뉴스

그 야바위의 대상은 한국보다도 미국 국민입니다. 지난 30년간 미국 정권이 이 야바위에 국고를 털어 넣은 것은 군수산업의 지지가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체제의 기반조건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상황에 순탄하게 적응하는 길을 틀어막으며 미국인의 삶의 질을 형편없이 악화시킨 반동노선의 대표적 정책이 이것입니다.

그런 엉터리 정책으로 국제관계까지 훼손시키고 있는 것이 사드 배치 문제입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이 정책으로 인해 일부 한국인이 아직도 갖고 있는 "혈맹" 의식조차 크게 위축될 것이 예상됩니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일반 한국인의 대외관계 인식을 일거에 중국 쪽으로 기울게 하고 있습니다.

사드 문제를 놓고 중국이 피해자 시늉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콧노래를 부르며 표정관리에 바쁘다고 저는 봅니다. 물론 사드 배치가 이론적으로는 중국에 불리한 조치이지만 그에 비해 정치적 이득이 엄청나게 더 큰 "꽃놀이패"라고 보는 것입니다. 한-미간의 "혈맹" 관계 약화는 약간의 군사적 부담과 비교할 수 없는 중국의 큰 이득입니다.

20세기 후반을 통해 "서세"의 주축 노릇을 한 미국 패권의 퇴조에 따라 한민족의 장래를 위한 자주적 결정의 공간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정책은 한반도 정세에 계속해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서 그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입니다.

2. 새로운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은 "워싱턴에서 기침을 하면 감기에 걸리는" 입장을 아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영향력에 묶이게 된 원래 원인은 미국의 막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의 경제력이 크게 쇠퇴하고 있고 절대적 군사력도 흔들리기 시작하는 상황까지 한국의 예속성이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큰 이유가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선거민주주의, 두 측면을 담는 믿음입니다. 그중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래전부터 "빨갱이"로 몰려 왔습니다만, 지금은 빨갱이 소리 듣지 않고도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도록 여건도 바뀌고 연구도 축적돼 있습니다. 그 측면은 경제학자들에게 맡기고, 저는 오늘 다른 측면, 선거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선거민주주의에 관련된 문제들은 아직도 잘 부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리한 비판의식을 가진 연구자와 운동가들도 선거민주주의 강화를 통해 자본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흔히 갖고 있지요. 단기적으로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본주의와 선거민주주의가 근대문명의 특성인 개인주의의 제도적 장치로서 표리관계에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 주는, 불가분의 한 세트로 보는 겁니다.

이번 정권교체는 "선거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촛불의 승리"라고 저는 봅니다.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새누리당 정권의 행태 때문에 시민이 광장에 나선 것은 선거민주주의 체제로부터의 일탈이었습니다. 대통령선거는 선거민주주의 형식에 따라 치러졌지만 변화의 방향을 결정한 것은 그 형식을 벗어난 시민운동이었습니다. 그 결과 훨씬 말 되는 정권이 세워진 지금도 그 정권이 국가사회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세우고 수행하는 데 선거민주주의 제도가 (특히 국회를 통해) 상당한 제약을 가할 것이 전망됩니다.

선거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살피는 데는 제가 최근 번역한 대니얼 벨의 <차이나 모델>을 권합니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유일한 절대적 정치 원리로 채택하는 데 따르는 문제들을 지적하며 민주주의와 현능주의(meritocracy)의 병용을 제안합니다. 모든 주요 공직을 임기제 선거로 선출하는 선거민주주의는 현능주의든 뭐든 다른 원리의 병용을 배제하는 성질을 가졌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의 실현마저 가로막아 왔다는 것입니다.

판웨이의 <중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모델론>도 참고할 만합니다. 그는 다수결의 원리에 아무 정치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나마 선거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소수결"로 전락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런 주장들이 중국을 배경으로 활발하게 나오는 것은 중국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대안의 타당성은 차치하고, 선거민주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근혜나 트럼프 같은 인물들이 선출되는 상황 앞에서.

또 하나 권하고 싶은 책은 악셀 호네트의 <사회주의 재발명>입니다. 사회주의 이론의 거장 호네트는 이 책에서 "사회적 자유"를 말합니다. 원자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개인주의를 벗어나 유기론적 세계관의 도입을 제창하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또한 미래 세계에서 가치를 발휘하려면 개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전망입니다.

서세동점의 해소가 몰고 올 현상은 미국의 영향력 쇠퇴만이 아닙니다. 미국의 힘에 의지해서 형성되고 유지되어 온 정치-사회-경제 구조에 변화의 필요가 함께 닥칩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근대체제"를 지향해 왔습니다. 이제 그 체제 가운데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살려서 보다 안정적인 미래 체제를 빚어갈 수 있을지 체계적 탐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 역사학자 김기협 ⓒ평화통일시민행동

3. 국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선거민주주의는 근대세계에서 정권 정통성의 가장 일반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선거민주주의의 부작용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쉽게 버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국가를 "절대주권"의 주체로 보는 근대세계의 고정관념이 이 문제에 영향을 끼치는 점도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냉전이 끝날 때 "문명의 충돌"을 말한 새뮤얼 헌팅턴의 통찰력은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보다 훨씬 윗길이었지요. 미국의 힘이 대표하는 근대문명의 승리를 후쿠야마가 구가할 때 헌팅턴은 근대문명의 흐름을 규정해 온 이념의 약발이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 머릿속의 이념이 아니라 존재하는 현실의 대표로서 문명권들이 세계의 앞날을 견인하는 주체가 될 것을 헌팅턴은 예언했습니다.

근대적 주권국가는 이념으로 획정된 존재입니다. 국가는 문명사회에 늘 있어 온 자연스러운 존재죠. 하지만 그 형태는 역사적 조건에 따라 다양했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모습의 절대주권을 가진 국가들이 지구를 쪼개 가진다는 관념은 근대세계의 특이한 현상이었고, 근대체제의 해소에 따라 이 관념도 흐려질 것입니다.

헌팅턴이 문명권을 미래 세계의 주체로 내다보면서 다른 관계 아닌 "충돌"을 얘기했다는 데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칠 때 충돌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관계가 또한 가능합니다. 그런데 인간을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규정하고 이해관계의 충돌만 보려는 경향이 있죠. 하나의 근대적 현상입니다. 마찬가지로 국가 간 관계도 이해관계의 충돌로만 보는 시각이 근대국가의 관념 밑에 깔려 있습니다. 국가 아닌 문명권이 관계의 주체가 되더라도 "충돌"의 가능성만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겠지요.

자오팅양은 <천하체계>에서 세계정치, 세계정부의 관념을 못 가진 것이 근대 정치철학의 근본적 결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동아시아의 "천하" 관념이 세계정치의 표상이었고 그 회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슬람권의 "움마"(이슬람의 집) 관념도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이슬람의 전통 정치사상은 우리 사회에 생소하지요. 저는 <프레시안>에 게재되는 이병한의 글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 약간의 이해를 얻고 있습니다. 세계질서 내지 세계정치에 대한 인식은 근대 이전 안정성을 이룬 어느 문명에서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근대세계에서 그 인식이 사라진 것은 지속적 안정성을 갖지 못한 근대문명의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세력이 주도한 근대문명이 퇴화하고 있는 지금 단계에서 한민족 통일국가를 구상함에 있어서도 국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민족의 역사가 5000년이라고 하는데 민족국가의 역사는 1000년 가량으로 봅니다. 고려 통일을 계기로 한반도를 영역으로 하는 민족국가가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민족국가의 역사 대부분은 중국 중심의 천하체제의 한 단위로 존재했습니다. 중국의 왕조에 조공관계로 종속된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의 왕조에 종속된 위치가 한민족 국가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위치였다고 제가 말한다면 "사대주의"라고 기분 나빠할 분들도 있겠죠. 조선의 중국에 대한 사대관계에 "사대주의"란 말을 만들어 폄하한 것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조선의 개항을 강요한 제물포조약에서도 청일전쟁을 마무리한 시모노세키조약에서도 일본은 조선이 "독립국"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청나라와의 특수관계를 부정해야 조선에 마음 놓고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의도에서 "사대주의"란 말도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대관계는 일방적인 예속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이 명나라, 청나라와 사대관계를 맺고 있던 500년간 중국 군대의 조선 주둔은 임진왜란 때와 청일전쟁 직전, 두 차례뿐이었지요.

19세기 이전 동아시아의 조공체제는 쌍무적 조약기구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다만 종주국과 번속국의 위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강자와 약자,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현실을 반영하는 중층적-유기론적 국제관계를 구축한 것이지요. 주권국가의 명목상 평등을 내걸었던 근대 국제체제가 유기론적 세계질서를 추구하는 세계정부에 접근해 가는 데 동아시아 조공체제가 중요한 모델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민족통일을 현실적 과제로 추구하려면 절대주권을 가진 근대국가의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의 다른 형태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외관계만이 아니라 내부관계에서 남한 주민, 북한 주민, 해외 교민 등 오랫동안 서로 다른 국가체제에 속해 있던 여러 요소들의 원만한 통합을 위해서도 국가의 형태를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대세계를 지배한 원자론적 원리를 버리고 유기론적 원리를 추구하는 것을 큰 방향으로 생각합니다.

4. 평화통일을 위해 '종북' 정신이 필요하다.

"평화통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승만의 "북진통일"에 대항해서, 전쟁 아닌 방법을 통한 통일을 주장하는 말로 쓰였죠.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서 평화"를 넘어 "목적으로서 평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통일이 이 세상에 위험을 줄이고 평화를 늘리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통일이 아니라면 방법이 평화적이 되기도 어렵습니다. 북한의 인적-물적 자원을 남한 자본가들이 마음껏 착취하게 하는 통일이나 강대국이 되어 다른 나라들을 억압하려는 통일이라면 반대하는 세력이 없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민족통일이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되게 하려면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저는 하나의 예만 들겠습니다. 에너지 소비량입니다. 위키피디아의 "세계 에너지 소비량(World Energy Consumption)" 항목에 따르면 인류의 에너지 소비량은 1973년에서 2012년 사이에 대략 갑절로 늘어났어요. 이 소비량 급증이 인류평화에 큰 위협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에너지 소비량을 어느 수준까지 줄여야 인류문명이 어느 정도의 지속가능성을 가지게 될지는 연구가 더 필요한 주제입니다만, 최소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얼마라도 줄이기는 줄여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민족통일 역시 한반도 전체의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계기가 되어야만 "평화통일"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한의 1인당 평균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평균보다 크고 북한은 적습니다. 그렇다면 통일을 계기로 북한 주민이 남한 주민의 생활방식을 따르기보다 남한 주민이 북한 주민의 생활방식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북(從北)'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에너지 소비량 같은 기술적 문제를 놓고 '종북'이란 말까지 꺼내느냐고 웃으시겠지만,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방식과 가치관도 이에 따라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인권 의식에서도 빼야 할 거품이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 아닌 "사회적 자유"를 생각해야 한다는 악셀 호네트의 주장처럼, 인권도 개인의 절대적 인권이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 안에서 상대적으로 허용되는 인류공동체의 권리로 생각을 좁히지 않는다면 인류 전체가 불행에 빠지는 길을 피할 수 없습니다. 모든 권리는 책임과 짝을 이뤄야 합니다.

큰 복권의 당첨자 중에 오히려 그로 인해 불행에 빠지는 사람이 꽤 많아서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큰 이유가 가치관의 결함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돈이 없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손에 넣는 것만을 행복의 조건으로 보고, 행복을 위한 더 구체적인 조건을 생각지 않기 쉽지요. 그러다 갑자기 돈이 생겼을 때 그 돈에 실린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아무 데나 함부로 휘둘러서 주변에 고통을 끼치고 그 고통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쉬운 것 아닐까요.

지난 150년간 동아시아인을 괴롭혀 온 서세동점 현상이 해소된다 해서 이제는 우리가 남을 괴롭힐 차례가 되었다고 신나 할 일이 아닙니다. 박근혜의 몰락이 정권의 교체에 그치지 않고 국가체제의 개선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처럼, 근대문명의 한계점에서 우리는 패권의 교체가 아니라 세계체제의 개선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박근혜 정권이 가리고 막아 왔던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는 방법을 찾기 위해 바쁩니다. 마찬가지로 서양세력이 휘둘러 온 패권이 해소되고 있는 지금, 그 패권의 전횡에 가리고 막혀 온 문제들을 제대로 처리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 지난해 12월 3일 열린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 전경. ⓒ프레시안(최형락)

문명사를 공부해 온 저로서는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사람들이 생각을 많이 쏟아야 한다고 봅니다. 근대문명은 사회 안의 개인도 세계 안의 국가도 원자 같은 독립된 개체로 보면서 그 개체들 사이의 경쟁을 부추겼지요. 경쟁에 몰두한 개체들은 "공동체"의 과제들을 잊어버렸습니다. 자연을 착취(개발) 대상으로만 보는 근대인은 자연과의 관계를 인류공동체의 과제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 반성할 점이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갑질을 삼가자는 얘기는 좋습니다. 그것은 상대적 존엄성입니다. 그런데 자연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절대화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시스템에 속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자연을 소외시키는 태도는 결국 인간 자신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피할 수 없습니다.

5. 통일을 위해 "내 손으로" 할 일은?

"남의 탓"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근현대사를 통해 우리 민족공동체의 대응에 반성할 잘못이 많이 있었지만 그 대부분이 외부 사정으로 촉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남의 탓 할 일이 줄어 가고 있다는 전제 위에 "내 손으로" 할 일을 생각해 봅니다.

근대화를 추구하는 동안 우리 사회는 부유하고 강한 나라들을 부러워하며 그 뒤를 따르려고 애써 왔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 민족 분단도 감수했고 사회 양극화를 초래했으며, 베트남 참전처럼 이웃을 괴롭힌 일까지 있습니다. 그 결과는 "헬조선"입니다.

민족통일은 이 사회가 당면한 여러 과제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듦으로써 "인간세상다운 인간세상"을 열어가는 노력의 한 측면으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분단은 근대세계 속에서 민족사회가 처해 온 곤경의 한 측면일 뿐입니다.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인류사회 전체가 근대세계 속에서 많은 문제를 품고 살아 왔는데 그 문제들 중에는 오랫동안 겪다 보니 당연한 것, 또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 것도 있습니다. 물을 마음 놓고 먹지 못하게 된 지 수십 년인데 이제 공기도 마음 놓을 수 없게 되어가고 있는 환경 문제, 에너지 절벽을 바라보면서도 경제개발의 박차를 늦추지 못하는 자원 문제, 생산인구 감소와 복지 수요 증가 사이의 모순 등, 근대체제로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인류사회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분단"이라는 우리 사회의 독특한 문제는 근대 세계체제의 모순을 직시하게 해주는 열쇠일 수 있습니다. 그 열쇠를 잘 활용하는 데서 분단으로 겪은 고통의 보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분단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체념한다면 지난 150년간 겪어온 치욕과 고통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한 근대 세계체제의 한계를 넘어설 길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비장한 자세를 취해야만 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자세를 냉철한 눈으로 돌아보기만 하면 나아갈 길이 떠오를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지난 반년간의 촛불 운동이 이런 낙관을 뒷받침해 줍니다. 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어떤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내다보기 힘들었지요. 그러나 이제 들어선 문재인 정권의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안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좋은 시작입니다.

투표가 진행될 때까지도 저는 "문재인 정권"의 성격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막상 나타난 모습을 보고 예상치 못했던 큰 신뢰감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경쟁과 대립의 정치를 벗어나 협력과 상생의 정치를 바라보는 자세가 진행되고 있는 문명 전환의 방향에 잘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이 어제보다 좋아졌다는 사실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공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내일이 오늘보다 좋아질 것입니다. 꾸준한 실천 속에서 평화와 통일이라는 과제도 점점 더 구체성을 띄고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긴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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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

40세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둔 후 20여 년간 독학으로 문명교섭사를 공부해 온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 입학 뒤 사학과로 전과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프레시안 장기 연재를 바탕으로 <해방일기>, <뉴라이트 비판>, <페리스코프>,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등의 책을 썼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와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 교수가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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