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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선장' 이명박, '퍼포먼스'를 넘어 '진짜 능력'을 발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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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선장' 이명박, '퍼포먼스'를 넘어 '진짜 능력'을 발휘하라

정교한 상황 관리 성공적…'아마추어' 이명박은 없다

지난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국내외의 우려와 반발을 딛고 2차 방북을 강행했을 때의 일이다. 북일 관계 최대 현안인 납치문제에 대한 일본 국내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담판 끝에 모두 5명의 납치 피해자들과 함께 귀국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납치 피해자 가족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고이즈미 총리의 참모진은 당초 예정돼 있던 TV 설명회를 축소해 진행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이를 거부했고, 예정대로 피해자 가족들 앞에 섰다.

반발은 거셌다. '가족회(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 연락회)' 등 한 자리에 모여 낭보를 기다리고 있던 피해자 가족들은 "총리가 아니라 차라리 아이들을 보내는 게 나을 뻔 했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묵묵히 견뎌 냈고, 이 모든 과정은 같은 날 일본 전역에 방송됐다.

다음 날 일본의 주요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은 9%p~11%p까지 수직상승했고, 납치 피해자 가족들은 오히려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5명을 귀환시킨 성과에 감사할 줄 모른다"는 반응이 여론을 압도한 것이다.

비교적 최근까지의 북일 관계와 북핵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망한 <김정일 최후의 도박>의 저자 후바나시 요이치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가상의 적을 만들고, 그것에 과감하게 맞서는 모습을 연출해 인기를 높이는 고이즈미 정치는 여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번에는 '가족회'를 가상의 적으로 삼았던 것이다 (중략) 고이즈미의 활극 정치, 고이즈미 퍼포먼스의 완승이었다."

▲ ⓒ청와대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이명박 퍼포먼스'

천안함 사태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응을 보며 '고이즈미 퍼포먼스'가 떠올랐다. 자신을 비난하는 상대를 오히려 속좁은, 혹은 부당한 공격자로 만들어버리는 노련함은 임기 초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비판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촛불'을 대하던 '아마추어' 같은 대응과는 확연히 다르다.

돋보이는 국정 주도력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자칫 여권에게는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악재였다. 그러나 사건 수습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보여준 주도면밀함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키고 있다. 사건의 원인과 진실 규명에 근접해가느냐와는 별개로, 정국 관리 면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직후 국방부와 해군은 정보 공개에 소극적이었다. 사고 당시의 상황을 담은 TOD(야간관측) 촬영내용도 숨기고자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교통정리에 나섰고, 해당 영상은 곧바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사고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 및 분석작업이 끝나지 않은 시점이기에 온전한 평가는 어렵지만, 사태 초반부터 이 대통령은 '투명한 정보공개' 기조를 천명하며 군 당국의 '비밀주의'와 차별화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합동조사단에 민간 인사를 포함시킬 것을 직접 지시했다. 원인 조사를 미국과 영국, 호주, 스웨덴 등 국제 공조 구도 속에서 진행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는 군에 대한 '불신 여론'을 흡수하며 청와대가 컨트롤타워로서의 중심을 잡는 듯한 효과를 냈다.

이 대통령은 여야 대표들과 종교 지도자, 군 원로, 전직 대통령 등을 잇달아 청와대로 초청해 사고 원인과 후속 조치 등을 직접 설명하고 제언을 듣는 자리도 마련했다. 일종의 '국론 통합' 행보다. 여기에 사고발생 나흘 만에 백령도 현장을 직접 방문한 기민함을 보였고, 생방송 특별 연설을 통해 희생 장병들의 관등성명을 부르며 눈물을 훔치는 등 '감성적 요소'도 시의적절하게 구사하고 있다.

'북한 개입설'과 관련해서도 이 대통령은 자로 잰듯 정교한 각도만큼만 기울어 있다. 사고 직후부터 강경보수 진영이 보여온 알레르기적 반응과 '안보장사'를 하고 있는 일부 언론의 부채질에 이 대통령은 무턱대고 편승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여러 차례 '선(先)원인규명' 원칙을 밝히며 공식적으로는 객관적 입장을 취해 왔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북풍(北風)' 논란에 대해 이 대통령은 "내가 북풍을 하려고 했다면 처음부터 북한 소행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언급을 천안함 사건의 원인과 상관 없는 맥락에 절묘하게 섞어냈다. 지난 21일 지역발전위원회에선 "불과 40마일 밖에 장사정포로 무장된 북한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고 '안보의식 고취'를 강하게 주문했다. 북한의 '태양절 불꽃놀이'를 언급하며 "북한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대변인 공식 브리핑을 통해 군 원로들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재검토 요구에 이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중하게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같은 이 대통령의 발언과 청와대의 행보에선 보수언론의 '북풍몰이'와 때마침 나온 '황장엽 암살조' 사건 등의 여파로 시간이 갈수록 '북한 도발설'이 여론의 다수를 점한 데 대한 상황적 고려가 읽힌다.

강경 보수 일각에선 '응징론'을 진두지휘하지 않는 이 대통령의 태도가 마뜩치 않아 보일 수도 있겠으나, '과학적' 원인 규명과 '단호한' 대응이라는 두 축으로 정국을 관리하는 '합리적 보수'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이 대통령은 "책임을 냉정하게 묻겠다"며 군에 대한 대규모 문책을 시사함으로써 정치적 반대파들을 다독이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야당조차 'MB 책임론'을 입에도 담지 못하는 까닭은 이같은 '이명박 퍼포먼스'가 촘촘하게 짜놓은 국면관리의 그물망을 뛰어넘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 도발설'에 오락가락하는 야당은 국회 대정부질문이나 상임위에서 보여준 '민망한' 수준의 질문과 "음모론에 불을 지핀다"는 면박 속에 천안함 사건의 하위변수로 침몰했다.

李대통령의 '진짜 능력'을 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앞으로 넘어야 할 파고는 만만치 않다.

원인 규명은 가장 큰 난제다. '북한 도발'을 사실상 기정사실화 해놓고 진상조사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군을 청와대가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우선 관건이다. 이 대통령의 거듭된 공개 지시에도 불구하고 군의 비밀주의는 여전히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제공조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합동조사단의 면면마저 군 당국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이는 향후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북한 도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명명백백한 물증없는 '심증 굳히기'를 방치할 경우 이명박 정부는 임기 끝까지 남북관계의 파탄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반북(反北) 정서'를 지방선거에 악용하려는 세력이 창궐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이 이를 묵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건 일종의 '역할 분담'처럼 해석되기도 한다. 이 대통령이 23일 전두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두 전직 대통령은 "북한 어뢰가 100% 확실하다", "북한 소행이 틀림없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청와대 측은 비공개 회동에서 나온 이같은 발언들을 상세하게 전했다.

"원인규명이 우선"이라는 공식적 입장을 앞세우면서 보수 진영이 중심이 된 '북풍놀이'을 청와대가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혐의는 그래서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도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전작권 전환 시기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오는 6월 G20 정상회의 때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전작권 전환 연기를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보수 진영은 숙원인 전작권 전환 연기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물밑 논의를 시인하는 듯한 발언을 해 의구심은 더욱 짙어져 있다.

하지만 전작권 전환 연기를 한국 정부가 미국에 요청할 경우 주한미군기지 이전, 방위비 분담금 협상, 미국 무기 구매 요구 등 막대한 비용부담이 되돌아오게 된다는 점, 전작권 전환은 이미 한미 양국 간의 공식적입 합의 사안이라는 점, 특히 이는 전략적 유연성 측면 즉 미국의 국익차원에서 제기된 문제라는 점은 함께 고려돼야 할 대목이다. 보수의 '막연한 불안감'만을 고려해 무작정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자신의 원칙'에 충실하라

이처럼 결코 만만치 않을 지금부터의 국면 전개는 지금까지 보여 온 상황 관리의 치밀함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자칫하면 지금까지 벌어놓은 점수를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다.

천안함 함미와 함수가 모두 물 밖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출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투명한 정보공개와 '선(先)원인규명' 원칙으로 첫단추를 비교적 제대로 맞춰 끼웠다는 평가를 얻었다. 이 대통령 제시한 그대로 전개될 것인가. 이 대통령의 '진짜 능력'을 국민과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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