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 1
전두환, 노태우. 육사 11기 동기생인 두 사람은 1979년 12·12 쿠데타를 함께 일으킨 절친이었다. 정권을 잡은 뒤 5공과 6공에서 각각 대통령을 지냈다.
1996년 2월 26일. 수의를 입은 두 사람이 12·12 쿠데타 및 비자금 사건으로 재판정에 섰다.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1996 8월까지 33회의 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전 전 대통령에게는 사형과 추징금 2259억5000만 원을, 노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22년6월과 추징금 2838억9600만 원을 선고했다. 그리고 나란히 수감 생활을 했다.
권력이 친구 사이를 갈랐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 뒤 벌인 '5공 청산'으로 전 전 대통령은 백담사로 쫓겨 갔다. 옛 친구의 백담사행 사흘 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사면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사적인 우정에 울림은 없었다. 여론은 냉랭했다. 전 전 대통령은 25개월을 백담사에서 보냈다.
2014년, 전 전 대통령이 전립샘암으로 투병 중인 노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아 문병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친구에게 "이 사람아, 나를 알아보시겠는가"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눈을 깜빡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뒤늦은 화해 역시 울림이 없었다. 총칼로 권력을 찬탈한 과거에 대한 참회는커녕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발포 명령 의혹을 시종 부인한 탓이다. 회고록을 낸 2017년 지금까지도 전 전 대통령은 당당하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표현하며 자신을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에 비유했다.
# 친구 2
박근혜, 최순실. 1975년 퍼스트레이디와 퍼스트레이디의 영혼을 사로잡은 주술사의 딸로 인연을 맺었다. 근 40년 오래고 질긴 인연이 그렇게 시작됐다.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최 씨가 1985년 귀국해 재회했다. 박 전 대통령을 '언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흔한 말벗이 아니었다. 권력과 돈이 둘 사이에 흘렀던 모양이다.
박 전 대통령이 이사장이던 한국문화재단에서 최 씨는 부설연구원의 부원장을 맡았다. 87년 <여성중앙> 10월호에 따르면 "최태민의 다섯 번째 딸 최순실이 박근혜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전횡을 일삼아 문제가 됐다"고 한다.
'언니'라는 호칭, 권력과 돈의 향유는 박 전 대통령이 집권한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에 따르면 "최 씨가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스스럼없이 '언니'라고 불렀다"고 했다. 대통령 박근혜와 비선실세 최순실은 어떤 자각증세도 없이 국정을 농단했다.
2017년 5월 23일. 수갑을 찬 두 사람이 법정에 나란히 섰다. 전두환, 노태우가 20여 년 전 섰던 바로 그 417호 법정. 검사는 "전직 대통령이 구속돼 법정에 서는 모습은 불행한 역사의 한 장면"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특가법상 뇌물·직권남용·강요·강요미수·공무상 비밀누설 등 15개 혐의를 받고 있다. 592억 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하고 약속받은 혐의다.
법정에서 '40년 지기' 최순실은 울먹였다. "40여 년 동안 지켜본 박 대통령께서 나오시게 된 게 제가 너무 죄인인 것 같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눈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아직도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전면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 친구 3
노무현, 문재인. 1982년 부산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법무법인 '부산'에서 재야 인권변호사로.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회고했다. "문재인 변호사와 손을 잡았다. 원래 모르는 사이였지만 1982년 만나자마자 바로 의기투합했다. (…) 나는 그 당시 세속적 기준으로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 사건도 많았고 승소율도 높았으며 돈도 꽤 잘 벌었다. 법조계의 나쁜 관행과도 적당하게 타협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변호사와 동업을 시작하면서 그런 것들을 다 정리하기로 약속했다. 그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두 사람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가 됐다. 일곱 살이나 위였지만 노 전 대통령은 늘 깍듯한 높임말을 썼다. 생전 그는 "사람은 친구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라고 친구를 자랑스러워했다.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문 대통령은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비서실장으로 친구를 보좌했다. 하지만 퇴임 뒤인 2009년, 문 대통령은 반평생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노 전 대통령의 비보를 세상에 알려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정에 선 23일. 그는 고인이 된 친구의 8주기 추모식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립다"고 했다. "보고 싶다"고 했다.
친구를 잃게 한 권력에 오른 그는 승리의 기쁨 대신 다짐을 추모사에 담았다. "이제 당신을 온전히 국민께 돌려드린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했다.
남 탓만 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울렀다. "저의 꿈은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손을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했다.
울림이 있다. 이제 국민들은 반대파도 인정할만한, 사유화되지 않은 우정의 결실을 5년 뒤 현실로 보고 싶어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