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도시의 거리 곳곳에는 국기가 게양됐고, 밤이 되면 '10'이라는 숫자를 담은 네온사인이 환하게 불을 밝힌다. 수많은 공연과 파티도 열리고 있다. 모로코의 지중해 연안 상공에는 에어쇼가 연일 펼쳐진다.
전통 축제와 각종 문화공연도 왕의 즉위를 축하하고 그간의 업적을 기리는데 주제에 맞춰졌다. 정부 소유의 주요 언론도 왕의 치적을 추켜세우는 특집기사로 장식되고 있다.
무함마드 6세는 모로코 1666년에 시작된 알라위트 왕조 제18대 왕이다. 1961년 즉위한 후 38년 동안 통치한 아버지 하산 2세가 1999년 7월 폐렴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왕위를 이어받았다. 입헌군주제 전통에 따라 국가 최고지도자에 오른 것이다.
프랑스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무함마드 6세는 개혁적 국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0년간 '인권탄압 개선 특별화해위원회'를 가동해 과거의 권력 남용 사례들을 조사하는 등 자국민의 인권 개선에 힘썼다.
일부다처제의 제한과 남성 중심의 이혼제도 개선에도 앞장섰다. 즉위 10주년을 맞이해 29일에는 재소자 2만4865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사면을 단행하기도 했다.
무함마드 6세는 35세에 왕위에 올랐다. 현재의 추세라면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최고지도자로 남아있을 전망이다.
▲ 지난 6월 모로코 수도 라바트에서 정당 응원을 하는 군중 ⓒ로이터=뉴시스 |
왕정, 공화정 가릴 것 없는 권력 세습
사우디아라비아, UAE, 오만, 쿠웨이트, 요르단, 카타르, 바레인 등 중동의 다른 왕정 국가에서도 왕위는 아들 혹은 형제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한 가문이 한 국가를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통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왕정체제에 대한 심각한 내부적 도전이 없어 왕위 계승은 지배가문이 알아서 결정한다.
왕정뿐만이 아니다. 공화정을 채택하고 있는 중동국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리비아의 무암마르 카다피 지도자는 1969년에 정권을 잡아 아직도 통치하고 있다. 무려 40년이다. 옆 나라 이집트의 후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1981년 취임했다. 29년째다.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리흐 대통령은 1978년부터 집권하고 있다.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중동의 대부분 국가는 '죽어야 바뀌는' 장기 정권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왕정에 이어 공화정에서도 왕위를 대물림하는 현상이 등장하고 있다. 시리아가 대표적인 예다. 1971년에 정권을 잡아 2000년까지 29년을 통치한 하피즈 알-아사드 대통령의 후계자는 그의 아들이었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영국에서 의학공부를 하던 중 아버지의 죽음으로 급작스럽게 귀국해 대통령이 되었다. 정치 경험도 전혀 없던 그는 아버지 측근의 도움으로 현재까지 큰 탈 없이 시리아를 통치하고 있다.
더욱이 이 '시리아 모델'이 확산될 분위기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둘째 아들 가말 무바라크에게 정권을 물려주기 위해 물밑작업 중이다.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현재 둘째 아들은 집권여당인 국민민주당의 사무총장이다. 사실상 여당의 제2인자 자리에 올라있다.
리비아도 그렇다. 둘째 아들 사이프 이슬람이 최근 정국을 주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리비아의 대외적인 업무를 상당부분 장악하면서 정권의 핵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공화정으로 헌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지만 큰 어려움은 없다. 상징적인 직선제 혹은 간선제 찬반투표를 거치기 때문에 당선은 확실시 된다.
장기집권은 부의 집중으로 귀결
중동의 장기집권 현상에 가장 고통 받는 대상은 당연히 국민이다. 왕족, 지배가문, 군사정권 하에서 국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장기집권은 부패를 낳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국가에서 왕족과 대통령 일가 혹은 측근은 무소불위의 권력과 부를 차지하고 있다. 왕족과 대통령 일가가 정부의 주요 부처 그리고 최대 정부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의사결정과정도 불투명하기만 하다.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집권층의 부와 이익을 위한 정책이 난무한다.
중동에서 수주하기 위해서는 왕족과의 커넥션이 필요하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수조 달러에 달하는 오일머니를 가지고도 중동의 산업과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 정치의식이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동의 상당수 국민도 자국의 장기집권 현상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수십 년간 똑같은 지도자를 바라봐야하고 강성해지지 못하는 국력과 경제를 지켜보면서 중동의 거리에는 반정부 감정이 가득 차 있다.
이들 반정부 세력을 대변하는 것이 이슬람 세력이다. 물론 세속적 반정부 운동도 있지만, 국민 다수가 믿는 이슬람 종교를 이념으로 하는 반정부 이슬람세력이 더 효과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극소수는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대부분 이슬람 운동은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라는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민주화에 대한 공포증이 정치개혁 막아
장기집권에 대한 누적된 불만으로 반정부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현 독재정권들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중동에서는 민주적인 선거가 치러지지 않고 있다. 오만, UAE, 사우디 등에는 아예 의회 선거 자체가 없다. 다른 국가에서도 상당히 제한적인 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최근에는 선거에 대한 공포증이 독재정권에 확산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치러진 소위 대부분 '자유선거'에서 이슬람 세력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2005년 1월 이라크 총선에서는 시아파 정치연합이,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는 이슬람 정치세력인 하마스가 승리했다.
자유화 혹은 민주화에 대한 공포증이 중동 정권의 자발적인 정치개혁에 발목을 잡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자유선거만 치르면 이슬람 운동 세력이 승리를 거둔다는 얘기가 수년 전부터 나돌고 있다.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의 왈리드 카지하 정치학과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이 이슬람세계 민주화의 딜레마"라고 지적했다. "수십 년간의 폭정과 장기집권을 해온 대부분 중동정권들에 저항해온 실질적인 야권은 이슬람 세력이기 때문이다"고 교수는 설명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 개혁을 통한 선거를 실시할 경우 대부분 국가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예는 1991년 알제리 선거에서 이슬람주의 정당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에 알제리 집권 군부는 선거결과를 무효화하고 내부 쿠데타를 통해 계속 집권하고 있다. 결국 알제리는 10여 년 넘게 지속되는 내전으로 1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외부적인 요인도 있다. 시리아와 이란 그리고 과거의 리비아(현재는 미국과 화해 진행 중)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동의 독재왕정과 군사정권은 미국의 정치적 지원을 받고 있다. 사우디, 이집트, 모로코 등이 대표적인 친미정권이다.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모두 거짓으로 드러나자 조지 부시 대통령이 주장한 '민주화를 위한 이라크 독재정권 제거' 논리도 이 때문에 근거가 없다. 사담 후세인 보다 더 오래 독재를 행해온 중동국가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이 지지하는 많은 중동의 독재정권이 있는 상황에서 부시가 내세웠던 '대중동 민주화 구상'은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
중동국 정치제제 분류 ● 대통령중심 공화제 이집트: 대통령 중심 공화제 수단: 공화제(군사정부) 시리아: 사회주의 공화제 예멘: 입헌 공화제 알제리: 인민공화제 지부티: 공화제 리비아: 사회주의 인민공화제 튀니지: 공화제 소말리아: 공화제 지부티: 공화제 ● 기타 공화제 팔레스타인: 수반 중심 자치정부 레바논: 공화제 (종파간 권력분점) 아랍에미리트: 연방공화제(실제로는 왕정) 모리타니아: 이슬람공화제(구국 군사위 중심) 이란: 이슬람공화제(신정) 이라크: 연방공화제 이스라엘: 공화제(내각책임제) ● 왕정 요르단: 입헌군주제 쿠웨이트: 입헌군주제 오만: 절대군주제 카타르: 입헌군주제 모로코: 입헌군주제 바레인: 입헌 군주제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주의 절대군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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