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에는 전년 가을에 뿌려둔 뿔시금치, 둥근시금치, 부추, 달래, 쪽파, 대파, 갓, 마늘, 양파, 앉은뱅이밀, 흑보리, 겉보리, 지역에 따라 토종상추 등이 밭에 있어 솎아 먹을 수 있다. 또한 들풀이 지천으로 널려있으니, 자연의 선물인 봄풀은 2월 말부터 밥상에 오른다.
냉이전
냉이는 두해살이풀로 가을에 돋아서 겨울을 지낸다. 검붉은 색에 뿌리는 곧고 길다. 봄에 싹이 튼 냉이는 여리고 파르스름하다. 냉이는 독특한 향이 있다. 봄에 먹으면 춘곤증이 달아난다. 옛날부터 눈을 밝게 하고 위를 튼튼하게 해 주는 약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냉이는 흙과 검불이 많으니 흙이 가라앉도록 물에 담가둔 후 여러 번 씻는다. 깨끗이 씻은 후 송송 썬다. 먹다 남은 채소가 있다면 당근 조금, 양파 4분의 1개를 넣고, 없다면 안 넣어도 된다(취향에 따라 오징어나 새우를 송송 다져 넣어도 좋다). 매운 고추를 송송 썰고, 쌀가루와 계란, 물을 조금 넣고 고루 섞는다. 소금을 조금 넣어 밑간한다. 팬을 달군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전을 부친다. 밀가루가 아닌 쌀가루를 넣으면 기름을 덜 쓰게 되어 깔끔한 맛이 난다.
생냉이통들깨무침
민들레전과 민들레무침
이파리를 씻은 후 통밀가루와 물을 조금 넣어 갠 후 소금으로 밑간하여 전을 부친다. 쌉싸름한 민들레를 전으로 부치면 쓰지 않고 독특한 맛이 있다. 민들레 무침은 민들레 이파리, 집간장 조금, 고춧가루, 물엿 또는 매실액, 식초를 넣어 살짝 버무리면 완성.
쑥전과 두부쑥찜
여러해살이풀인 쑥이 텃밭에 있으면 밭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다. 쑥은 보이는 대로 캐내지만 땅속에 있는 검은 원뿌리를 캐내야 쑥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풀 중에 쓰임새가 가장 많은 게 쑥이니 많이 채취해 두면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2월 말과 3월 초순 쑥은 어리고 작다. 많이 뜯어도 막상 먹으려고 하면 한 끼 정도다. 쑥국, 쑥전, 쑥버무리에 이용하고, 삶아서 말린 후 가루를 내면 1년 내내 요긴하게 쓰인다. 깨끗이 다듬어 씻은 후 통밀가루를 풀어 쑥만 넣고 튀김을 하듯 전을 부치면 쑥 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두부쑥찜은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쑥은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살짝 데쳐 물을 짠 후 송송 썬다. 두부는 으깨서 물기를 꼭 짠다. 으깬 두부와 쑥을 섞고 소금으로 밑간하여 반죽을 한다. 동그랗게 빚어 전분을 한쪽만 살짝 묻혀 찜기에 넣고 약 5분간 찐다. 집간장이나 장아찌 소스를 살짝 얹는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버무리떡
쑥을 넣으면 쑥버무리, 콩을 넣으면 콩버무리, 호박고지를 넣으면 호박버무리, 채소를 넣으면 채소버무리. 25분이면 완성되는 버무리를 만들어 보자. 쌀은 3~4시간 물에 불렸다가 떡집으로 가서 가루를 낸다. 쌀가루는 굵은 체로 두어 번 친 후 준비한 재료를 넣고 골고루 섞는다. 떡쌀을 준비하는 동안 찜솥을 불에 올린다. 물이 끓으면 삼베나 면포를 깔아 준비한 떡쌀을 안친다. 센 불에 20분 동안 찌면 떡 향이 향긋하게 배어 나온다. 약 불에서 5분간 뜸을 들이면 버무리떡 완성이다. 손님이 집에 올 때 혹은 남의 집에 방문할 때 떡 한 덩이를 선물하자. 텃밭 잔치 때도 멋스럽다.
명아주무침
개망초와 망초나물
개망초는 어릴 때 채취한다. 망초는 꽃이 피기 전에 줄기 끝 부드러운 부분을 꺾는다.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푹 삶아야 부드럽다. 너무 오래 삶으면 뭉그러지니 살피면서 삶는다. 된장국을 끓여도 좋고 된장이나 간장에 무치면 감칠맛이 있다. 데쳐서 말려 묵나물을 만들면이듬해 정월대보름에 보름나물로 쓸 수 있다.
상추쌈밥과 상추나물
고슬고슬한 밥에 담가둔 장아찌 간장을 조금 넣는다. 먹다 남은 각종 채소를 다지고, 작년 김장김치도 잘게 송송 썰어 넣는다. 깨소금과 참기름을 살짝 뿌린다. 김밥을 하듯 상추에 말아 예쁘게 썬다. 혹여 상추가 많다면 살짝 데쳐서 무치면 아삭한 상추나물이 된다.
상추김치
열심히 따 먹던 상추는 6월 중순에 꽃대가 올라온다. 꽃대가 생기면 온갖 양분을 꽃으로 보내 이파리는 작아지고 쌉싸름하다. 이때 씨앗 받을 몇 포기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꺾는다. 손가락 굵기의 상추꽃대는 부드러운 부분을 칼등으로 지그시 누른 후 반으로 가른다. 배추겉절이하듯 김치를 담그면 쌉싸름한 상추김치 맛이 일품이다.
삼층거리파(삼동파)강회
삼층거리파는 봄에 분얼을 하고 5월이 되면 줄기 끝에서 주아가 생긴다. 그 주아에서 또 파가 자라고 그 위에 또 주아가 생겨 파가 자란다. 아파트처럼 3층으로 자란다고 해서 삼층거리파라 부른다. 지역에 따라 삼동파라고도 한다. 맵지 않고 단맛이 난다. 분얼(分蘖)한 삼동파를 뽑거나 주아가 생긴 맨 위 3층에 있는 것은 심고, 2층에 난 파를 떼어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별미다. 처음에 주아 세 개를 얻어 3년간은 증식과 나눔을 하느라 먹어보지 못했다. 겨우 2년 전부터 맛있게 먹고 있다.
단군 이야기에도 나오는 마늘은 겨울 농사의 백미다. 농사를 시작하면서 마늘 농사는 빼먹지 않고 자급을 하고 있다. 처음 5년간은 한지형 마늘인 의성마늘과 서산마늘을 심었다. 주아를 받아 심고 씨마늘까지 키웠으나, 4년 전에 연천마늘을 구해 심어 이젠 씨마늘이 되었다. 6월 말에 수확한 마늘은 그해 10월 중순에 심을 씨마늘만 남기고 1년간 먹는다. 다음 해 3월이 되어도 썩지 않아 '따글따글'한 마늘이다.
풋마늘을 좋아하는 필자는 마늘종이 생기기 전 5월에 줄기가 가는 마늘을 뽑아 생으로 먹거나 장아찌를 담근다. 하지만 무엇보다 생으로 고추장에 무치면 장마철에 별미다. 풋마늘을 뽑으면 통마늘이 사라지니 적게 심었다면 잎사귀 하나씩 따서 먹어도 된다. 장아찌 하듯 4~5센티미터(㎝) 크기로 잘라 고추장에 매실액을 넣어 버무리기만 하면 끝이다. 먹을 때 참기름과 깨소금을 뿌린다. 매년 만들어 먹는데 컴퓨터 폴더에 사진이 없어 아쉽다.
부추연근부침
9년째 잘 자라고 있는 부추는 약방의 감초처럼 여러 재료와 잘 어우러진다. 냉동실에 있는 연근을 꺼내 믹서기에 물을 조금 넣고 살짝 간다. 부추, 양파, 당근, 버섯, 말려둔 홍고추, 냉동실의 청고추를 송송 썬다. 통밀가루와 녹말가루를 조금 섞어 반죽하여 부친다. 연근이 아삭아삭 씹히는 맑고 담백한 부추연근전이다.
대파와 쪽파
가을 김장 때 넉넉하게 많은 대파와 쪽파는 송송 썰어 냉동실에 넣어두면 겨우내 요긴하게 쓰인다.
봄에 나는 풀
15~16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봄풀을 먹고 있는데 함께 먹은 사람들 중에도 아직까진 탈이 난 경우가 없다. 한 가지를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조금씩 먹어 그런가 보다. 복잡하거나 손이 많이 가면 삼시 세끼 밥상에 오르기 어렵다. 여기서 소개한 음식들은 손쉽게 뚝딱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누구라도 할 수 있어 새롭진 않으나, 이것조차 직접 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밥상 현실이다. 어수선한 시절이지만 자연의 기운과 나의 정성이 깃든 씨앗 밥상을 차리자. 우리의 어머니, 그의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던 씨앗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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