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더 허젠시에서 묵기로 하고 모처럼 여유롭게 시내 거리를 나왔다. 중심가에 들어서니 현대식 고층 건물에 최신식 실내 조경과 예술미가 서울 한복판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면 도로에 들어서면 문명의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엇! ‘치킨 커플’
낯익은 한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치킨이라면 닭고기 요리를 하는 집일까? 추니가 좋아하는 ‘치맥’, 생맥주 한잔에 닭튀김을 상상하며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과 학생 둘이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실내 벽체에는 온통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나오는 사진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라면과 부대찌개, 탕수육 같은 음식을 팔고 있었다.
“여기요, 부대찌개 2인분요. 좀 매콤하게 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한국어로 대답을 한다.
“학생,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작년에 친구와 같이 일주일간 한국에 놀러갔다 와서 한국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어요.”
“<별에서 온 그대>도 봤어요?”
“그럼요. 진짜 재밌어요.”
한국의 부대찌개와 비교할 때 식재료는 비슷한데 단맛이 조금 진했지만 중국에 온 지 20일 만에 한국 음식을 먹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인, 종업원, 손님들 모두 우리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손님들은 우리가 식사를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다가와 옆 의자에 앉아 일일이 기념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아니, 우리가 한류 드라마 주인공도 아닌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식당을 나서자 주인과 종업원이 문밖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이곳 허젠시도 한류 열풍이 거센 모양이다. 여기저기에 한글 간판이 보인다. ‘풀 하우스’라는 옷가게 역시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따 온 간판인 것 같았다.
그런데 ‘풀’이란 글자가 어딘지 이상하다. 매장 안에 들어가 보니 또 다른 ‘풀’자를 써 놓았다. ‘풀’자 세 개가 모두 ‘ㄹ’ 받침이 달랐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주인한테 펜을 달라고 해서 또박또박 ‘풀’자를 써줬다.
아객e가 주점으로 들어가는 건널목 공터에서 댄스 동아리들이 음악에 맞춰 신나는 율동을 선보이고 있었다. 추니가 갑자기 대열에 동참해 양팔을 휘두르며 춤을 춘다. 연이틀 숙소에서 쫓겨났던 기억은 잊었나 보다.
다음 날. 런추시에 도착해 경풍 대주점에 체크인 했다. 런추시는 한마디로 바둑판 같다. 석유, 가스가 많이 생산된다더니 얼핏 건물과 도시 모양으로 봐도 부자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외국인이 묵을 수 있다는 이곳은 하룻밤에 아침 식사를 포함해 오만 팔천 원. 우리 자전거 보헤미안에겐 좀 과분한 숙소다.
“그냥 눈감으면 새벽이 올 텐데 아쉬워서 어쩌지?”
추니는 잠을 안 잔다고 커튼을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곧 다르륵다르륵 잠이 들었다.
자전거 좀 고쳐 주세요
8월 24일. 런추시에서 72km 떨어진 바저우시를 향해 떠났다. 숙소를 떠난 지 한 시간 뒤 브레이크 제동이 전혀 되질 않아 길가에 세우고 이리저리 응급조치를 해 봐도 소용이 없다.
‘어쩌지? 이 상태로는 다음 도시까지 갈 수 없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자전거 수리점을 물어봤는데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건지, 수리점이 이 근처에 없다는 건지 한결같이 자기 말만 하고 지나갔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끌고 시내 쪽으로 되돌아가다가 경찰서를 목격하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여기 누구 계시나요?”
두꺼운 비닐을 세로로 잘라 만든 커튼을 젖히고 안내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한국인이고요. 베이징으로 가고 있는데 자전거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요. 자전거를 좀 고쳐 주세요.”
더듬거리는 내 말과 제스처를 보고 대충 무슨 영문이지 알아듣는 듯했다.
“여기는 자전거 고치는 곳이 아닙니다.”
양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휴대폰을 들고 있던 경찰관이 양다리를 걷어 내리며 내게 말을 던졌다.
“알지요. 이곳이 자전거 수리점이 아니라는 건 알고 왔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 처음 와서 자전거 수리점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몰라요.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 주세요.”
“아,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상의 좀 해 보겠습니다.”
“서둘러 주세요. 오늘 우리가 갈 길이 멀거든요.”
뒷자리에 앉아 있던 경찰관과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나서 자전거 수리점 위치를 알려 주는데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전거 수리점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 주세요.” 스마트폰 번역기에 우리의 의사를 보여주며 경찰관 입 가까이에 번역기를 들이댔다.
“말씀하세요.”
“이리 산 나가 아니면 소풍 된다.” 말도 안 되는 한글이 나타났다.
“아니 이 사람이 중국말을 하고 있는 거야, 러시아말을 하고 있는 거야? 자, 다시 말해 주세요.”
몇 번이고 되풀이해도 이해되지 않는 글이 떴다.
“자전거 수리점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시오.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뒤따라갈 테니 앞장서시오.”라고 재차 번역 내용을 보여 주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른 경찰관을 불러 얘기하는 걸 보니 이해가 된 듯 했다.
“저 경찰관을 뒤따라가십시오.”
“예. 고마워요. 수고 많으셨어요.”
“자, 출발하시죠. 천천히, 교통신호 잘 지키시면서….”
앞서가는 차량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무슨 경찰 차량이 번호판도 없냐?”
자전거에 부착한 가방을 내려놓고 점검해 보니 브레이크 연결선이 끊어지고, 나사가 빠져 달아났다.
“수리비 얼마예요?”
“그냥 가십시오.”
“아니, 수고도 많으셨고 부속품도 교체했는데…….”
“괜찮습니다. 먼 길 조심해서 잘 가십시오.”
지난번에는 기어 변속기 수리비를 받지 않았는데, 오늘은 브레이크를 무료로 수리 받았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린 가져간 청실홍실과 핸드크림을 나눠줬다.
오늘도 더위가 맹위를 떨쳤다. 땀이 증발하면서 소금 알갱이가 만들어져 옷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겨우 발견한 도로변의 작은 식당에 들어가 두꺼운 부침개에 양고기를 잘게 썰어 듬뿍 넣은 중국식 햄버거를 먹었다.
주유소 간이매점에 들렀는데 운전기사들이 하나둘씩 우리 주위를 에워싸고는 질문 공세를 벌인다.
“시안에서 출발해 베이징, 선양까지 가신다고요?” 모두 놀란 표정이다.
“이어서 일본으로, 총 석 달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하나둘씩 휴대폰을 꺼내더니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한다. 그리고는 각자 매점 안으로 들어가 물과 과자를 사 들고 나와 우리에게 건넸다.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기념품을 하나씩 주느라 모두 거덜 나는 줄 알았다.
다음 날. 바저우시를 떠나 베이징으로 가는 길에 고속도로와 국도, 성도, 현도가 실핏줄처럼 뒤얽힌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로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교통 순찰차의 제지를 받고 다시 되돌아 나왔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106번 국도는 넓은 갓길이 있어 오토바이와 삼륜차도 이 길로 함께 달린다. 시내 구간은 차로와 갓길이 분리대로 구분되어 있는데 시내 구간을 벗어나면 분리대 대신 흰색 차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보이는 자전거의 70% 이상이 배터리를 부착한 전동 자전거였고 시속 2~30km 속도를 내고 있었는데 앞뒤에는 가족들과 동승할 수 있는 좌석이 있었다.
그동안 지겹도록 철광석을 실은 대형 화물 차량과 나란히 달려왔는데 언제부터인지 보이지 않게 되더니 이젠 뚝 끊겼다. 땅이 진동할 만큼 요란한 경적을 울릴 때면 몸이 오그라지곤 했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베이징을 50km 앞둔 톨게이트. 그동안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가장자리로 통과했는데 이곳은 경찰이 가운데 통로로 유도하며 검문검색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여권 여기 있습니다.”
자전거를 탄 채 핸들 가방에서 여권을 꺼내 제시했다.
“따라오세요.”
검정색 선글라스를 쓴 경찰이 오른편 20m 거리에 위치한 건물로 데리고 가면서 손가락으로 자전거를 가리키며 뭐라고 한다.
“짐을 열어 보라는 말씀입니까?”
“자전거는 그곳에 세워 두고 여권만 갖고 따라오세요.”
우린 여권과 카메라, 지갑 등 중요한 소지품이 든 작은 손가방만 챙겨 사무실로 따라 들어갔다.
승차표 구입 창구 같은 반달 구멍으로 여권을 들이밀었다. 여권을 뒤적이며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 밖에는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이 길게 줄지어 일일이 가방 검색과 몸수색을 받고 있었다.
우린 비교적 간단히 여권 심사만 하고 짐을 풀지도 않은 채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오는 9월 3일, 전승절의 광복 70주년 항일인민전쟁승리 기념일 행사를 앞두고 교통을 통제한다는 안내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었는데 그래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8월 26일. 시안을 출발한 지 26일째, 초반에 폭우가 한 차례 지나간 뒤 무더위가 계속됐다. 오랜 가뭄으로 나뭇잎은 비틀어져 떨어지고 옥수수 이파리가 누렇게 변했다.
오후 3시. 융허쫭춘 부근을 지날 무렵, 갑자기 사방이 어두컴컴해지면서 바람이 거세지더니 앞에 보이던 높은 육교가 갑자기 흙먼지에 가려 희미해졌다.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달리는 차량들도 멈춰 섰다. 우리는 잠깐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생각하고 도로변에 선 채 얼굴을 감싸고 서 있었다.
회오리바람이었다. 저 멀리 거대한 흙기둥이 하늘로 치솟고 그 기둥은 하늘과 땅을 서로 연결시켰다. 만일 저 흙기둥이 우리한테로 오면 어쩌지? 하늘로 휘말려 올라가는 거 아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우린 서둘러 건물 담벼락에 몸을 기댔다.
한참 동안 온 세상을 마구 뒤흔들던 회오리 기둥은 대지 위에 두텁게 쌓였던 영양분들을 단번에 말끔히 들어 올려 어디론가 서서히 자리를 옮겨가고 있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