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때마다 원장님은 자꾸만 힘을 빼라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힘을 주지도 않는데 자꾸만 빼라고 하니 좀 답답해요."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면 늘 툴툴 거리면서도, 잊을 만하면 찾아와 며칠씩 치료받는 환자가 오늘은 약간 짜증난 목소리로 저를 힐난합니다.
"저도 늘 연습하지만 운동 할 때마다 선생님께 듣는 말이에요. 하지만 환자분 병 치료는 힘 빼기가 안 되면 큰 진전이 없을 겁니다."
진료를 하면서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힘 빼라는 말과 숨을 천천히 깊게 쉬라는 말일 겁니다. 어깨나 허리가 아파서 와도, 소화가 안 되어도, 피부가 안 좋아도,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러워도, 잠을 못 자거나 화병이 있어도 필요하다 생각되면 치료 과정에서 반복해서 강조 합니다. 허리가 아파서 왔더니 숨 쉬기 연습을 하라고 하면 처음에는 좀 황당해 하다가도 설명하면 공감하는 분이 많습니다. 물론 공감과 실행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동의보감>을 펼치면 서문과 집례 다음에 나오는 것이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입니다. 현대의 해부도에 비해 너무 간략하고(게다가 팔다리는 과감하게 생략을 했지요) 입까지 벌리고 있는 모습 때문에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이 그림은 허준이 지향했던 의학 관점과 한의학에서 바라보는 인체의 관점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양하게 해석하지만, 저는 이 그림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인체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동의보감>에 베여 있는 도가적 색채를 반영하기도 하는 이 그림은 한의학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의 흐름의 근간을 나타냅니다.
이 그림에서 인체는 크게 장부가 위치한 앞쪽과 척추에서 뇌로 이어지는 뒤쪽의 두 공간으로 나뉩니다.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임맥과 독맥이라는 두 기맥이 있지만, 여기서는 경맥보다는 공간에 초점을 둡니다.
인체의 앞으로 들어오는 것은 공기와 음식물이고 나가는 것은 대변과 소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의적으로 내장의 움직임을 조절할 수 없으니 이 공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호흡과 호흡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근육의 움직임이지요.
근육에 불필요한 긴장이 없이 충분히 이완된 상태에서 호흡이 일어나면 그로 인해 발생한 힘이 아랫배까지 충분히 전달됩니다. 이 아랫배의 영역을 단전이라고 말하고 표현합니다. 단전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저는 배꼽 아래의 공간 전체를 단전이라 봐도 무방하다고 봅니다(선도수련에 나타난 호흡법에 관한 비교연구/ 김형찬 / 원광대학교 참고). 아랫배까지 전달되어 축적된 힘은 뒤쪽의 척추가 자리 잡은 공간을 타고 위로 오릅니다.
우리가 살아서 숨을 쉬는 동안 이러한 움직임은 쉼 없이 일어납니다. 문제는 그 효율입니다. 이 호흡에 따른 율동이 깊고 충만하게 일어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여러 이유로 이 움직임이 얕고 약해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일시적이면 상관없지만 이것이 만성화 되면 이 공간에 자리 잡은 장부의 기능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볕이 잘 들고 환기와 냉난방이 잘 되는 방에 살 때와 북쪽으로 작은 창문하나 나 있는 지하실에 살 때를 연상해 보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바탕으로 평소 생활상 더 무리해야 하는 장부에서 먼저 탈이 나지요. 가볍게는 소화불량에서 중하게는 암까지 말입니다.
이 순환의 과정에서 먼저 일어나야 하는 것은 위로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래로 충분히 내려놓는 과정입니다. 몸에서 불필요한 힘이 빠지고 호흡의 힘이 충분히 아래까지 내려가는 것이 가능해야 비로소 위로 잘 올라 올수 있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위로 올리려고만 하지 내려놓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힘을 주려고는 하지만, 힘을 빼려고 하지 않지요. 이것은 물론 몸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감정과 생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몸과 감정과 생각이 서로 어울린 존재니까요.
오래된 병을 치유하거나 좋은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면 먼저 내려놓는 연습을 하길 권합니다. 몸과 감정, 그리고 생각에서 필요 없는 힘을 내려놓으면 호흡은 자연스레 깊어지고 이것이 추동한 기의 율동이 스스로 알아서 우리가 가진 본래의 치유력을 고양시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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