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와 새 정부 출범을 축하한다. 국가 권력은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지는 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 국가 권력의 중추인 정권이 바뀐 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행정부와 국가 권력의 성격을 두고 그 주체가 누구든 '오십보 백보' 차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나,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한 가지 이유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그 고통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아가려면 디딜 수밖에 없는 토대가 달라지는 것이다.
'진보'가 상대적 개념임을 전제한다면, 지난 정권에 비하여 이번 정권이 조금은 더 진보적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다만, 아직은 가능성일 뿐이다. 그 어떤 것도 정권의 성격을 저절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 아닌가. 더구나 진보의 기준이 기존 권력 관계 '구조'를 조금이라도 흔들어야 하는 것이면, 그럴 생각이 있는가는 차치하고라도 그럴 조건과 능력이 되는가를 물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5년, 권력과 정권의 성격은 열려 있다. 그 모든 사회변동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다. 여러 가지 힘의 균형과 조건, 상호작용에 따라 어느 정도는 끝이 열려 있으니, 미리 구속할 필요가 없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낙관도 비관도, 열광도 냉소도, 모두 경계한다. 다시 일상으로, 지루하고 고단한 삶으로 돌아갈 때,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가 더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시민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느냐에 따라 새로운 국가 권력을 끌어당길 수도 막을 수도 있다. 국가를 주어진 '사물'이나 '주체'가 아닌 '관계'라고 생각하면(밥 제섭의 <전략관계적 국가이론>), 우리가 실천할 일은 더욱 많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잠시 미루고, 오늘은 새 정부에 요구하고 당부한다. 첫째, 형식과 스타일보다 내용의 개혁을 추구할 것. 정권 출범 초기에 '문화'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어떤 영역 어떤 방법에 중점을 두겠다는, 정치적 신호음을 내는 것도 필요하다.
내용으로 진화해야 선도하는 문화와 시그널의 본래 뜻이 살아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형식과 스타일은 취향과 선호에 갇힐 뿐이다. 모임에 참석하여 비정규 노동을 줄이고 없애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다음 단계 정책과 입법, 그리고 정치로 이어져야 비로소 진보한다.
소통은 당연히 기자회견과 트위터, 이웃 주민과 청와대 직원을 넘어야 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시민적 통제를 강화하는가가 궁극의 목적이라고 할 때, 소통과 어울림, 시민과의 접촉은 '선언'이고 '다짐'이고 '출발'이다.
둘째, 개혁의 사회적 제도화에 초점을 맞추라. 인천공항 직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은 한 공기업 차원의 진전이다. 몇몇 공공기관과 공기업도 따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민간과 기업은 전혀 다른 문제, 제도, 체계다. 분위기 조성과 협조 요청, (구시대적인) 비공식적 압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
에피소드가 아니라, 제도와 법, 정책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새 정부에서 책임을 맡은 사람들도 모르지 않을 터, 벌써부터 많이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때 과제는 정부와 국가 권력에 한정된 것이 아닌, 좀 더 넓은 의미의 제도화, 즉 사회적 제도화다.
노무현 정부가 성취한 일 중 하나가 청와대 기록물을 생산, 관리, 보관하는 체계를 만든 것이었다. 일종의 제도화, 그 중에서도 정부와 행정부 안에서 구축한 제도화다. 누구나 마땅히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만큼, 역진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실제 결과는 껍데기만 남았다. 정권이 바뀌자 바로 무력화되었고, 체계와 제도가 발전하기는커녕 책임 회피와 체계적 망각과 악용을 위한 도구로 변했다. 장기계획이나 지침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고, 법을 만들어도 고치면 그만이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국가 권력과 행정부 중심의 개혁을 넘어야 한다. 사회 권력과 더불어 사회 전체의 변화를 추구해야, 새로운 권력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금방 가능한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디고 오래 걸리더라도 장기 구상과 일관된 노력이 중요하다.
사회적 제도화는 넓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미국 브라운 대학 바이오키 교수팀의 브라질 참여예산제 연구가 교훈이다(☞바로 가기). 참여예산제라는 제도가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데에는 그동안 축적된 시민의 참여 경험이 큰 역할을 했지만, 새로운 제도가 사람들을 바꾸고 참여를 촉진하기도 했다. 사회적 제도화를 통해 국가권력-경제권력-사회권력은 서로 보완하고 촉진한다(상호작용적).
셋째, 가능성은 강화하고 한계는 넘는 정치적 토대를 만드는 일. 새 정권의 정치적 토대는 허약하고, 무엇이 좀 있다 하더라도 흩어져 있고 유동적이다. 현실 정치와 정책이 토대를 반영하는 한, 개혁을 추진할 힘도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할 권력도 강하지 못하다.
현실 정치에서는 다른 정파와 연합하고 한편으로 사회 권력(시민 사회)을 '동원'하려 유혹 받을 것이다. 다른 정당과 협력하지 않고는 법 하나도 바꿀 수 없는 정치지형에서, 그런 조건만큼은 충분히 이해한다. 바뀔 기미가 전혀 없는 일부 언론 권력도 걱정스럽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다시 강조하지만, 이해관계를 고리로 어설프게 '통합'하거나 얼버무려서는 곤란하다(☞ 2017년 5월 8일 '서리풀 논평' 바로 가기 : 대선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동원은 부분적이고 오래 가지 못한다. 가치를 중심으로 연대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도 되풀이 말할 필요가 없다.
'공식' 목표라도 달성하기에는 연대와 협력의 토대가 빈약한 것이 끝까지 한계이자 과제로 남는다. 비정규 노동, 최저 임금, 아동수당, 재벌 개혁, 건강보험과 장기요양의 보장성, 모두 마찬가지다. 기술적 과제가 아니라 정치적 토대가 운명을 결정한다면, 정책의 정치적 토대는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다행히, 조건은 냉소를 부를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사회적, 문화적 기반이 다른 어느 때보다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이 반면교사 노릇을 하는 것, 그리고 집권 과정이 그 어느 때보다 대중 참여적이었던 것도 자산으로 쌓였다.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의 공과에서 교훈을 얻으라. 정치적 토대와 타협할 것이 아니라, 정치 지형을 바꾸는 것. 성취할 목표와 가치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정치적 토대를 바꾸는 것이 새 정부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한 가지 정치적 토대가 될 것, 성취할 가치와 목표를 명확하게 하라고 촉구한다. 가령 이런 질문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새 정부가 (역사적으로) '성공한' 정부였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그 지표는 일인당 국민소득이나 경제성장률일까? 지방선거나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석수? 아니면, 좀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길에서 한 단계 도약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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