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넘어 센현을 3km 앞두고 길가에 일가 빈관이 눈에 띄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소파에서 일어나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한국인이에요.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어요.”
“…….”
“오늘밤 여기서 묵으려고요.”
“…….”
주인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우린 얼른 프런트 메모장에 글자를 적어 보여줬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나더니,
“내일 아침 몇 시에 체크아웃?”
“8시에서 9시 사이.”
“뚜이(됩니다), 뚜이.”
우린 후다닥 짐을 풀어 3층으로 들어 올린 후 샤워도 안 하고 나무토막처럼 잠이 들었다.
8월 20일. 센현의 아침은 간밤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문으로 밝은 햇살이 들어왔다. 서둘러 8시 30분에 체크아웃 했다.
야간 라이딩을 해서 그런지 배가 너무 고팠다. 다행히 빈관을 나와 10분 정도 달려 식당을 찾았다. 만두 두 개, 호빵 두 개, 콜라 두 병을 주문했다.
들녘엔 눈이 모자랄 정도로 넓은 옥수수밭이 보이고, 도로변 노점상엔 농장에서 막 따왔다는 복숭아와 포도를 팔고 있었다.
복숭아 두 개에 사백 원, 포도 한 송이에 오백 원을 주고 샀다. 노점상이 갖다 놓은 페트병 물에 껍질을 씻어서 먹었다. 그 맛이 엄청나게 달았다.
중국 시안에서 출발한 지 20일. 이제 베이징을 200km 앞두고 있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오후 3시. 허젠시에 도착했다. 조금 이른 시각이지만 더 이상 가지 말고 잘 곳을 구해야 했다. 엊저녁 같은 악몽이 다시 발생할까 두려웠다.
메인도로를 따라 빈관의 위치를 주욱 훑어보고 나서 나름 괜찮아 보이는 가가 주점 앞에 멈췄다.
“여기 어떨까?” 빈관에 들어가기 전에 추니한테 먼저 물었다.
“괜찮아 보이기는 한데…….”
“우린 한국인이에요. 오늘 밤 여기서 숙박할 수 있나요?”
“네, 할 수 있어요.”
젊은 여종업원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와, 방이 아담하고 넓네요.”
오늘은 좀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방 명령 떨어지는 일은 없겠지? 앞으로 그런 일은 없어야지.” 추니와 침대에 몸을 내던지며 내뱉었다.
똑똑.
빨래를 해서 널고 잠시 쉬다가 노크소리에 깜짝 놀랐다.
“헉! 이게 뭐야? 설마 아니겠지. 어제와 마찬가지로 또 경찰서에 같이 가자는 얘기는 아니겠지?”
길게 한숨을 쉬고 문을 여니 아까 프런트에서 접수 받은 여성이 아닌 가가 주점 주인아주머니와 중학생 정도로 돼 보이는 딸이 찾아왔다.
“경찰서에 같이 가 주세요.”
뭐시라! 아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왜요?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경찰서에 가야 합니까?”
“부탁합니다. 요즘 공안에서 점검을 철저히 하고 있어 미리 허락을 받아 놓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당신네들이 갔다 오면 되지 우리가 왜 같이 가야만 됩니까?”
“같이 가 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부탁합니다.”
주점 주인의 정중한 부탁을 뿌리칠 수 없어 모녀와 함께 택시를 타고 경찰서에 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제오늘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중국 여행 와서 왜 경찰서를 들락날락해야 하는 거지?
경찰서 2층, ‘사회위생과’라는 팻말이 붙은 사무실로 들어가는 두 모녀의 긴장한 모습을 보며 뒤따라 들어갔다.
주인아주머니는 네모진 헤어스타일의 우락부락하게 생긴 담당 경찰관에게 상체를 굽히고 웅얼웅얼 조심스레 무언가를 얘기하다가 갑작스런 경찰관의 고함소리에 놀라 뒤로 벌렁 자빠질 듯 몸이 젖혔다.
같이 간 딸도, 우리도 아무 말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안쓰러웠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사연을 물으니 얘긴즉슨 왜 규정을 어기고 손님을 투숙시켰느냐는 것이었다.
다시 젖은 옷을 둘둘 말아 자전거에 실었다. 마치 피난민 행색이다. 추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휴. 어제도 오늘도 추방 명령이다.
“그래. 떠나자. 가라면 가야지 어쩌겠어? 우리가 잘 수 있는 곳으로 가자. 그런데 곧 해가 지는데 어디로 가지?”
가가 주점을 나와 다른 도시로 떠나기 전에 몇 군데 주점을 더 들렀는데 한 군데 별 세 개짜리 주점은 만실이고, 나머지는 별 두 개짜리였다.
“어쩌지? 해는 저물고….”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야간 라이딩을 해서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
아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 정면 돌파 해야겠다. 여행객의 불편함을 헤아려 잘 보살펴야 할 공안당국이 대책 없이 추방 명령만 내리다니.
우리에게 퇴거 명령을 내린 경찰서를 다시 찾아갔다. 아까 그 경찰관은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우리를 보자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우리 어쩌면 좋겠습니까? 이곳 허젠시에서 묵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우린 이곳 지리도 잘 모르고, 게다가 날도 어두워지고 있잖아요.”
미리 얘기할 문장을 번역기에 입력한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줬다. 삐딱하게 의자에 앉은 채 우릴 쳐다보고만 있다가 자세를 바로잡고는 옆자리 경찰관과 뭐라 뭐라 상의를 한다.
“저 경찰관을 따라가 보세요.” 예의를 갖추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그 경찰관을 따라 1층 현관으로 내려갔다.
“앞장서겠습니다. 뒤따라오십시오.”
“오케이.”
경찰차는 뒤따라가는 우리를 아랑곳하지도 않고 저만치 질주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천천히 달렸다. 결국 경찰차는 저만치에서 멈췄다.
“이봐요, 경찰관 아저씨. 좀 천천히 가세요. 교통신호 좀 지키면서요.”
“…….”
“당신은 차로 달리고 우린 자전거로 가는데 그렇게 달리면 따라갈 수 있겠어요? 경찰관 아저씨도 자전거 타 보셨잖아요.”
“…….”
“우리 이렇게 초라해 보여도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동북아 3국을 횡단하는 사람들이라고요.”
우리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너무 빨리 달아나지 말고 안내 좀 제대로 하라는 푸념인 줄은 알아들었을 게다.
20분 정도 달려 아객e가 주점 정문에 도착했다. 경찰관은 정문에 차를 세우고 프런트에 들어가 뭐라 뭐라 얘기를 하고 나오더니 우리에게 예의를 갖추며 편히 쉬라는 제스처를 하고 돌아갔다.
오늘도 체크인을 두 번 했다.
“흐음. 이젠 괜찮겠지? 경찰이 투숙을 확인해 준 곳이니까.”
입실하자마자 빨래를 다시 펼쳐 널었다. 자꾸 출입문 쪽으로 신경이 간다. 추니는 복도 인기척 소리에, 옆방 문 여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란다. 밤새 뒤척이다 아침이 밝았다.
이젠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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