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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국의 추방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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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국의 추방 명령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2] ⑨다음 도시에 가면 잘 곳이 있을까?

해 저물어 우이현에 도착해 태상 빈관에 들어갔다. 프런트에는 젊은 남자 직원이 앉아 있었는데 스마트폰을 보느라 우리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왔어요. 오늘 밤 여기서 좀 묵으려고요.”
“신분증 좀.”
“여기 있어요, 여권.”
“아니요…….”

자기 신분증을 내보이며 주민등록증 같은 것을 달라고 한다.
“우리는 외국인이라서 이 여권이 신분증….”

그 젊은 종업원이 어딘가에 전화를 한참 동안 하더니 입실하란다. 80위안(1만 6천 원)을 지불했다.

외관상으로 보기엔 번듯한 빈관인데 방에 들어가 보니 침대는 야전용 같이 딱딱하고, 이불은 두꺼운 수건을 갖다 놓았다. 하기야 한여름 밤에 춥지는 않겠지만 뭔가 허접하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러 가져간 향수를 뿌리니 조금 나아졌다. 작은 창문을 여니 바로 옆에 쓰레기 적치장이 있어 얼른 닫았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하지만 이미 체크인을 했으니 취소할 수도 없고 또 여행하면서 이런 곳에서도 자 보고, 저런 곳에서도 자 보는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샤워하고 빨래를 널었다.

뒷골목 식당에서 만두로 저녁 끼니를 때우고 숙소에 들어와 쉬고 있는데 누군가가 우리 방에 노크를 했다.

“잠깐만요.”
문을 여니 빈관 주인이라면서 1층 프런트에서 좀 만나자고 한다.
“우리 빈관은 외국인이 묵을 수 없어요. 그러니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까 우리 직원이 잘 몰라서 입실을 시킨 것 같습니다. 외국인은 별 세 개 이상인 곳에서만 묵을 수 있습니다. 오늘 경찰서 공안국에서 주숙등기, 즉 투숙자의 인적사항을 기재한 숙박 대장을 점검할 예정이랍니다. 미안합니다. 다른 곳으로…….”

“허참, 그럼 어디 가까운 곳에 별 셋 이상인 숙소가 있습니까?”
“길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서 몇 개의 신호등을 지나서 사거리에서 다시…….”라고 알려 주는데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둘둘 말아 자전거에 싣고 빈관 1층으로 내려왔다.

“우선 자전거를 여기 프런트에 두고, 제 차로 다른 빈관을 먼저 가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같이 한 분만 차에 타세요.”

그렇지 않아도 그 숙소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도와준다니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추니는 그곳에 남아 있고 나와 빈관 주인은 다른 숙소를 찾아 나섰다.

10분 정도 달려 우이 빈관에 도착했다. 주인은 여직원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이곳에서 묵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 같았다.

그 여직원이 어딘가에 한참 동안 전화를 걸고 나서 돌아온 답변은 결국 NO였다. 그러자 주인은 여종업원에게 뭐라 뭐라 불만을 토로하는 것 같았다. 이 빈관도 별 두 개짜리였다.

▲다른빈관 물색.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다른빈관 물색.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주인은 다시 나를 차에 태운 채 어디론가 한참 동안 이동하더니 파출소 정문에 차를 세웠다.

“아니.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파출소에 온 거야? 우린 그저 빈관에서 체크인 해 줘서 짐 풀고 빨래하고 샤워한 것뿐인데…….” 중얼거리며 정문에 다가서자 문이 잠겨 있었다.

빈관 주인이 다시 차를 몰고 도착한 곳은 파출소보다 큰 경찰서였다.
‘드디어 내가 수감되는가 보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 상황이 어쩐지 웃겨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빈관 주인은 공안국 당직 경찰관에게 한참 동안 사정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경찰서출입.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경찰서출입.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경찰서출입.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오늘 밤 여기서 묵으세요.”
빈관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주인이 자신 있다는 듯 말하는 걸 보니 경찰서에서 잘 해결된 것 같았다. 휴우. 한숨 돌리고 다시 자전거를 2층 계단으로 들어 올리고 빨래부터 널었다.

똑똑.
불을 끄고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찰나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겁이 덜컥 났다. 문을 열어 보니 정복 차림의 경찰관이 서류를 들고 빈관 주인과 함께 문 앞에 서 있었다. 숙박 점검을 나온 것 같았다.

“이곳 우이현에는 외국인을 수용할 수 있는 별 세 개 이상의 숙소가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도시로 가십시오.”

우리에게 추방 명령이 떨어졌다.
“아니, 이 밤중에 어디로 가라는 겁니까? 누추해도 괜찮으니 하룻밤 잘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라는 말이 입 끝까지 나왔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상황을 보니 사정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OK. 알겠어요. 갈게요. 다른 도시로 떠날게요.”
아직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옷가지를 주섬주섬 다시 자전거에 싣고 1층으로 내려오니 경찰관은 안 보이고 주인 혼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워요, 주인 양반. 오늘 고생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해서든 우리에게 숙소를 제공하려고 이리저리 노력한 거 잘 알고 있어요. 비록 중국 정부의 규정상 어쩔 수 없이 떠나지만 당신의 정성은 우리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을 거예요.”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의 손을 잡으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건 청실홍실이라고 해요. 소중한 인연을 상징하는 거랍니다.”
“감사합니다······.”

뭐라 뭐라고 하면서 우리 손을 놓지 않고 얘기하는데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
“자, 가자고요. 우리가 잘 수 있는 곳으로.”

추니는 서둘러 전조등을 켜고 헬멧과 가방에 부착된 깜빡이를 밝혔다.

▲다른도시 이동.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다른도시 이동.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지도를 열어 106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듬성듬성 세워진 가로등 불빛이 흐릿하게나마 도로와 낭떠러지를 분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짜그락 째잭.
갓길에 널린 사금파리 밟히는 소리가 신경을 예민하게 건드렸다. 가끔 돌멩이가 바퀴에 튕겨 나가며 자전거가 뒤뚱거렸다.

대형 트럭들이 가깝게 스쳐 지나가면 바람에 휩쓸려 휘청거렸고 뒤따라오는 추니와의 간격은 점점 멀어졌다. 밤이 깊어지자 추워져 방풍복을 꺼내 겹쳐 입었다. 다음 도시에 가면 잘 곳이 있을까? 그곳에도 3성급 이상의 숙소가 없으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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