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홍천 동창마을서 ‘겨리질 맥을 잇는 촌로’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홍천 동창마을서 ‘겨리질 맥을 잇는 촌로’

겨릿소의 겨리질·밭갈애비의 소 모는 소리 ‘눈길’

소 모는 소리가 거의 사라진 요즈음, 강원 홍천군 내촌면 동창마을에서 밭갈애비가 겨릿소를 부려 겨리질로 밭을 갈고 써래질로 논을 골라 모내기를 하며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동창마을 행정명은 내촌면 물걸리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중종 때 대동미 창고가 있었던 유래로 지금도 동창마을로 더 많이 불려지고 있다.

▲강원 홍천군 동창마을에서 전덕재 씨가 안소와 마라소의 겨릿소로 겨리질을 하고 있다. ⓒ전상범

▲강원 홍천군 동창마을에서 전덕재 씨가 안소와 마라소의 겨릿소로 겨리질을 하고 있다. ⓒ전상범

통일신라 말기 물걸리 폐사지에는 석불과 삼층석탑 등 보물 5점과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동창보 수리시설 등 문화유산 2곳이 강원도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근대에 이르러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펼쳐 8명이 희생당하고 3천여 명이 만세를 부르던 그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후일 조성한 팔열각과 기미만세공원이 있는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마을에서 홍천 전통 농경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촌로들이 있다.

그 주인공은 전덕재(76·농업)씨와 이부원(75·농업)씨, 조성근(60·홍천군문화재단 이사)씨로 3년전부터 두 마리의 안소와 마라소가 쟁기를 끄는 겨릿소로 밭갈이와 써래질의 농경문화 명맥을 잇기 위해 해마다 농촌의 바쁜 봄을 밭갈애비의 소리와 함께 겨릿소의 겨리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강원 홍천군 동창마을에서 밭갈애비 전덕재·이부원 씨가 겨릿소로 밭갈이를 하고 있다. ⓒ전상범

지난 3월 봄 들녁부터 수십 회 밭갈이로 소문이 나자 지난 달 홍천과 타지역의 사진작가 20여 명이 출사를 다녀가기도 했다.

홍천문화원 문화학교 류문수 지도강사와 사진동아리 회원 10여 명도 동창마을을 찾아 농촌들녁 풍경과 겨리질 풍경을 렌즈에 담아가는 등 문화관광 상품으로도 호응을 얻고 있다.

전덕재·이부원 씨는 밭갈애비로 소를 몰면서 노래를 한다. “똑바로 가자”, “윗골로 올라~서거라”, “우후~돌아서거라~” 등의 작업 지시를 노래로 전달하고 소는 그것을 다 알아듣는다.

밭갈애비는 한평생 농토를 일구며 살아온 신세타령으로 소에게 흥얼거리기도 하고, 소는 묵묵히 들어주는 마음이 통하는 벗이 되기도 한다.

전덕재 씨는 동창마을에서 대을 이어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토박이다. 우사도 집과 함께 옛모습 그대로이고 코뚜레를 한 소 7마리를 키우다 최근 3마리만 키우고 있다.

▲강원 홍천군 동창마을에서 이부원 씨가 겨릿소로 모내기를 위한 써래질을 하고 있다. ⓒ전상범

그는 “옛날에는 소로 모든 밭과 논일을 했지만 지금은 농기계의 발달로 코뚜레를 한 소도 거의 없다”며 “특히 겨릿소로 밭갈이를 하는 곳도 많지 않아 옛 농경문화에 대한 향취와 한국의 전통과 산촌문화의 멋스러움도 느낄 수 있는 작은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성근 씨는 “겨리질을 하며 소 모는 소리는 강원도의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소를 부려서 밭을 갈고, 논을 삶는 일은 전국 어디에서나 하지만 겨릿소를 몰면서 노래다운 노래를 부르는 곳은 강원도 뿐”이라며 “선조들이 어떤 식으로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먹여 살렸는지 우리의 전통 농경문화를 보전하고 전승하는 것이 앞으로 후세들에게 남겨줄 큰 유산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