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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지몽(邯鄲之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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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지몽(邯鄲之夢)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2] ⑧웨이현가는 길

타이항 산맥을 넘으며 운전기사와 말이 안 통해 제각기 자기 말만 하고는 히죽히죽 웃었다. 운전기사가 인터넷 내비게이션을 잘 다루지 못해 종종 갈림길에 차를 세우고 다른 운전기사에게 길을 물었다.

그런데 한참 잘 얘기하다가는 갑자기 욕을 해가며 싸우기도 했다. 혹시 ‘~로 가는 길입니까?’의 중국말인 ‘~시발루마?’였던 걸까?

바이두 맵을 검색해서 오늘 밤 묵을 한단시 세기황관 대주점을 검색해 운전기사에게 보여줬는데도 자기 고집대로 찾아가느라 시내를 몇 바퀴나 빙빙 돌았다.

중국인들도 마누라 말과 내비게이션이 하는 말을 잘 듣지 않는가 보다.
이 주점은 호화스런 외형과는 달리 내부는 낡았다. 한때 잘나가던 곳인 것 같았다.

가격은 220위안(4만 4천 원)이다. 자전거를 방으로 갖고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다른 호텔로 옮기려고 돌아서는데 지배인이 불쑥 나타나 허락해줬다.

▲한단대주점.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밤이 되자 낮에 달궈진 대리석 열기로 가득 찬 대주점 옆 명주 광장에는 어린이들을 태운 놀이기구가 빙빙 돌아가고, 댄스 동호회 회원들이 광장을 세 군데로 나누어 제각기 다른 음악에 맞추어 율동을 뽐내고, 또 한구석에서는 전통 악기 연주와 잡상인들의 호객 소리로 왁자지껄했다.


▲한단 광장 야경.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한단 광장 야경.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한단 광장 야경.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한단 광장 야경.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한단 광장 야경.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우리는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일찌감치 숙소로 들어와 TV 채널 27번 ‘스페셜 라이프’를 시청했다.

스페셜 라이프.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한단시 농수산물 도매 시장에 멀리서 채소를 잔뜩 싣고 올라온 대형 트럭의 덮개가 걷히자 사람들이 우르르 차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둘이요, 넷, 여섯에 여덟, 열에 열둘.”
화물주는 트럭 위에 올라 채소 다발을 아래로 던지기 시작했다. 나도 도매 가격으로 구입한 김칫거리를 리어카에 가득 싣고 곧바로 천호동 근교 아파트 단지를 향해 떠났다.

‘배추 사세요. 열무, 달랑무요. 마늘, 파, 고추 있어요.’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 머리를 내밀었던 아주머니들이 하나둘씩 내려와 연한 열무 대궁을 똑똑 분지르며 신선도를 확인하고는 한 다발씩 사 들고 올라갔다.

아파트를 한 바퀴 돌고 나자 오전에 채소 한 리어카가 모두 팔렸다.

허베이성 한단소학교를 마치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정규 상급 학교에 진학을 못해 리어카 채소 장수로 생계와 학비를 벌면서 미인가 야간 학교를 다니다가인민군에 입대했다. ‘귀신 잡는 방위병’이었다.

전투비행단에서 경계 근무를 서며 쪽지 공부를 해 제대를 석 달 앞두고 공산당 지방당원 시험에 극적으로 합격했다. 턱걸이였다.

26살 때 상하이 해변 출신 규수를 만나 50일 만에 혼례를 올리고, 결혼 5년차에 중견당원 공채에 합격해 중앙당으로 자리를 옮겨 검정고시를 거쳐 나이 50이 돼서 학사모를 썼다.

중앙당에서 승진하고, 최북단 접경 지역의 영주로 부임해 시골 주민들과 동고동락을 하다가 정년이 되어 공직을 마감했다. 그리고는 훌쩍 아내와 함께 자전거 세계 일주를 떠났다.
“여보, 여보, 초저녁부터 무슨 잠꼬대를 그리 크게 한데요?”

‘한단지몽(邯鄲之夢)’이었다. 한단지몽은 바로 이곳 중국 한단시에서 처음 유래한 말이다.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이다.

당나라 때 ‘여옹’이라는 도사가 하루는 한단의 한 주막에서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도자기로 된 베개는 양쪽에 구멍이 나 있었는데 그 구멍이 차차 커지고 그 안에 훌륭한 집이 있었다.

여옹은 거기서 최씨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진사 시험에도 급제하여 재상까지 올랐다. 그 후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포박되었을 때 그는 고향에서 농사나 지을 걸 하고 후회하며 자결하려다가 아내가 말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몇 년 뒤, 무죄로 판명되고 다시 중서령이 되어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 후 다섯 아들을 두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노환으로 죽고 말았다.
여옹이 언뜻 깨어 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다.

주모가 끓이던 조(粟)가 아직 익지도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 이때 여옹은 “인생지사 또한 이와 같은 것이라네.”하고 말했다고 한다.

8월 14일. 72km를 달려 관타오현에 도착했다. 이 지역에서 제일 좋은 숙박 시설인 관타오 빈관에 체크인 하여 숙박료 80위안(1만 6천 원)에 아침 식권까지 받았다.

승강기가 없어 자전거에 짐을 실은 채 2층 계단으로 들고 올라와 방 안에 들어오니 모기들이 우글거리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인 할 때 프런트에서 준 파리채 두 개를 추니와 나눠 들고 벽에 붙어 있는 모기들을 샅샅이 수색하며 두들겨댔지만 검은 커튼에 붙어 있는 모기들은 잘 식별되지 않았다.

천장에 붙어 있는 놈들은 침대 위에서 점프샷을 하면서 짓뭉갰다. 하얀 벽지 이곳저곳에 묻은 핏자국을 보면 이미 수차례 전쟁을 치룬 게 분명했다. 어떤 모기는 사마귀처럼 큰 놈도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생존한 놈들은 밤새 우리를 괴롭혔다.


▲관타오빈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관타오빈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다음 날. 108번 국도를 벗어나 106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베이징이 428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점심때가 되어 도중에 식당에 들렀다. 식당 안의 손님들이 일제히 우리에게 눈길을 준다. 같은 동양인인데도 생김새가 어딘가 구별이 되는 모양이다.

“뿌야오 샹차이.”
특유의 향을 내는 ‘샹차이’라는 재료를 넣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식탁 위에 놓이는 밑반찬은 고추기름과 껍질 안 깐 통마늘이 기본인가 보다. 주인은 식사 중에 바깥에서 놀던 꼬마 두 명이 들어오자 우리 앞으로 데려와 인사를 시킨다.

“이 녀석이 우리 아들이에요. 그리고 얘가 우리 딸이고요.”라고 소개하며 머리를 쥐어 눌러 숙이게 했다. 꼬마들에게 연필 한 자루씩을 선물하고 풍선을 불어줬다.

우리가 식당을 나오자 주인은 가다가 목마를 때 마시라며 냉장고에서 물병 두 개를 꺼내 자전거에 꽂아줬다. 식당 내외분과 아이들, 그리고 손님들이 문밖에 나와 손 흔들며 큰길 건너 저만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웨이현가는 길.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관타오현 북쪽 54km 떨어진 웨이현에 있는 사해 빈관에 도착했다. 프런트에서 체크인 하다가 어젯밤의 악몽이 떠올라서 물었다.

“혹시 방에 모기 있나요?”
“…….”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아 ‘위~잉’ 모깃소리를 내며 한쪽 팔을 공중에서 한 바퀴 돌리고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콕 찌르는 흉내를 냈다.
“메이요, 메이요!”
주인 아주머니는 제스처를 보고 눈치를 챘는지 모기 없다며 배꼽을 잡고 웃고는 서랍을 뒤져 돌돌 말린 모기향을 꺼내줬다.

저녁때가 되자, 또 다시 저녁 메뉴를 고민했다. 매일 이렇게 좁쌀죽만 먹고 달리다가 언젠가는 영양실조로 쓰러질까 걱정돼 이번엔 모처럼 돼지고기를 먹기로 했다.

중국에선 음식을 남기는 게 예의라고 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양이 너무 많아 반도 못 먹고 남기고 말았다.

▲사해빈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8월 16일 아침. 사해 빈관 체크아웃 계산서에 한자로 ‘안전….’이라고 하는 상품을 사용했다며 12위안(2천 4백 원)이 청구됐다.

이게 뭔가 생각해 보니 엊저녁 TV 옆에 놓여 있던 예쁜 상품들 가운데 귀이개 같아서 뜯어 봤던 콘돔이었다. 가격 표시도 없었는데 서비스 품목이 아니었나 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사용이라도 할 걸….

계산을 마치고, 아침 식사는 길거리에 있는 작은 식탁에서 해결했다. 좁쌀죽, 달걀 한 개, 채소 절임, 끝. 모두 10위안(2천 원)이었다. 이렇게 저렴하고 부실한 식단은 처음이었다.

▲아침식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아침식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난궁시로 가는 길. 웨이현 북쪽 40km 지점 G20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자전거가 좌우로 미끄러지듯 흔들리며 주저앉았다. 펑크였다.

땜질할 곳을 찾아 고가도로 아래 그늘로 들어가 짐을 모두 내리고 튜브를 꺼내 공기를 넣은 뒤 얼굴 가까이 대 보았다. 하지만 어디에 구멍이 났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우선 새 튜브로 교체했다.

▲타이어펑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타이어펑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추니의 야외 화장실로서 작년 유럽에서는 옥수수밭이 제격이었는데, 중국은 옥수수 밭고랑이 좁고 풀이 무성해 들어가기 쉽지 않았다.

더구나 블록을 쌓아 남녀 칸막이를 해 놓고 천장과 아래가 오픈되어 있는 화장실은 더 들어가기 힘들어 한다. 할 수 없이 들녘에서 나는 사방 경계를 선다. 추니도 이젠 얼굴이 많이 두꺼워졌다.

갓길에서 잠시 쉬며 핸들에 장착된 스마트폰을 터치하자 오늘도 SNS 친구들의 응원이 뜨거웠다.

매일 새벽 전날의 일기를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올리고 페이스북에 링크해 놓고 있는데 점점 새로운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행 중 지쳐 힘들다가도 친구들의 응원 모습을 떠올리면 저절로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106번 국도에 인접한 헝수이 호수공원에 자전거를 탄 채 들어갔다. 호수에서 물놀이와 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보였다. 가장자리는 물속을 들여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연잎이 덮여 있었다.

이 호수는 여의도의 25배 정도 되고, 중국 화북 지역의 최대 담수호로 다양한 북부 온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헝수이호.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8월 19일. 블로그를 전날 쓰고, 아침에 TV를 시청하기는 처음이다. 중국에서는 한국의 드라마나 가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TV는 각 지역별 채널과 CCTV 채널로 구분되어 있는데 한국 프로그램은 주로 CCTV에서 방송하고 있었다.

요즘 중국 CCTV 채널인 5번에서는 연일 항일 독립군들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타이항산상(太行山上)>을 방영하고 있다. 오는 9월 3일 중국인민항일전쟁 승전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인가 보다.

태화온천 대주점 체크아웃을 하고 있는데 에밀리(Emily)란 성함을 가진 여성분이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명함을 건넨다. 대주점 매니저였다.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요? 저희 대주점을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만족합니다. 저희가 고마웠어요. 서비스도 좋았고요.”

간단한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주변에 근무자들이 하나둘씩 다가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아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마치 우리가 한류 연예인이 된 기분이다.

“여기 작은 선물을….”
매니저가 선물을 준비해 왔단다. 풀잎으로 엮은 예쁜 여치 집 두 개였다. 우리도 빨간 풍선과 평창동계올림픽 기념 배지를 한 개씩 나눠줬다.

▲헝수이대주점.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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