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을 타고 북한 주적론이 다시 우리 사회를 크게 흔들고 있다. 대선후보 간 토론회에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던진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냐?' 라는 질문에,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서 이를 답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대응한 사안을 두고 해묵은 안보 논쟁이 촉발된 것이다.
때마침 불어온 전쟁위기설과 함께 문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자 담당 부처인 국방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국방백서>에서 "군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주적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이해하면 된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은 조짐이다. 북한 주적론이 우리 현대사와 밀접히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외교의 최고사령탑을 선출하는 대선에서 후보에게 특정 국가나 정치집단이 주적이냐 여부를 가부형식의 단답형으로 묻는 자체가 상식 이하의 행동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국제관계에서 적과 우방의 정의는 매우 모호하며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같이 지정학적으로 주변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는 하나의 상대방을 주적으로 공식 규정하는 경우, 복잡한 국제관계의 틀 속에서 외교의 선택권을 스스로 제한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은 모호함을 통해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생존을 위한 외교의 철칙으로 삼아왔다. 더욱이 국가원수의 외교적 발언이 가진 엄청난 영향력과 파장을 고려할 때 그가 내심 어떤 생각을 갖고 있건 이를 밝히거나 밝히라고 강요하는 행위는 아무리 네거티브가 전략의 하나인 선거판에서도 금도를 넘어선 온당치 못한 처사이다. 독도 도발을 일삼는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던 김영삼 대통령의 '속시원한' 한마디로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어떤 보복을 받았는지가 좋은 예이다.
그럼에도 똑똑하다는 유승민 후보가 이런 황당한 질문을 던진 데는 안보 논쟁을 통해 흔들리는 보수층을 단합시켜 선거장으로 이끌어 내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행위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한국사회의 적폐이다. 적과 동지를 극단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지난 반세기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박정희 체제'의 불편한 진실이다.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가진 극한의 공포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도구로 주적 개념이 이용된 것이다. 민주적 정통성이 없는 정치집단이, 주적이 없이는 한시도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할 수 없었음은 자명하다.
이번 촛불광장의 외침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상징되는 박정희 체제 자체에 대한 탄핵 선고이며 이를 지탱하는 전시적 멘탈리티를 극복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전장에서도 적과 우방이 혼재한 경우가 많다.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할 때, 당은 동맹인 신라의 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당 고종은 백제를 멸망시키고 귀환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그 틈에 신라군을 전멸시키고 백제를 차지하지 못했다고 크게 꾸짖었다고 한다. 각자 계산을 끝내고 동맹하여 적을 맞아 싸우는 전장에서도 적과 아군이 혼란스런 상황인데, 평시에 국가원수가 외교적 언사를 신중해야 함은 더말할 나위가 없다.
한때 친박의 핵심이었다가 탄핵을 주도하여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에서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고, 탄핵 찬성과 반대 세력 사이에 끼어 자신의 능력에 비해 턱없이 낮은 지지율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유승민 후보가 어쩌다 '끼어있는' 조국의 냉엄한 현실을 망각하고 저급한 안보 논쟁을 촉발시켰는지 모르겠다.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며 그가 그토록 떨쳐내고자 했던 박근혜를 자신도 모르게 닮아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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