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은퇴할 때, 재기 넘치는 한 농구 팬이 미국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에 보냈던 편지 글 중 일부다. 미국 프로농구의 세계화를 가능케 한 조던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졌지만 이긴 톰슨 감독과 조지타운 대학
조던의 신화는 1982년 전미 대학농구 결승전에서 시작됐다. 61-62로 뒤진 상황에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1년생 조던은 깨끗한 중거리 슛을 터뜨렸고, 그는 영웅이 됐다.
그런데 이 결승전을 조던 신화의 출발점으로만 보면 안 된다. 상대팀인 조지타운 대학은 재역전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가드 프레드 브라운은 사실상 마지막 공격 기회에서 결정적 패스 미스를 범했다.
경기가 끝난 뒤 브라운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조지타운의 존 톰슨 감독은 브라운을 부둥켜안고 이렇게 말했다. "걱정마 브라운. 너 덕분에 이긴 경기가 진 경기보다 훨씬 많잖니."
톰슨 감독은 미국 대학 농구 감독으로는 드물었던 흑인 감독. 비뚤어진 흑인 청소년들의 재기와 흑인 인권 신장을 위해 힘썼던 그의 목표는 흑인 감독 최초로 대학 농구 정상에 서는 것이었다.
조지타운 대학에 부임한 뒤 "우리는 언젠가 대학농구 챔피언이 될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던 그는 그 누구보다 정상에 서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브라운의 실수에 속으로는 눈물을 흘렸을지 모른다. 겉으로는 인자한 미소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심리적 부담감에 400m 예선 탈락한 박태환
▲ 2009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박태환이 26일 오전(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 포로 이탈리코 메인풀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400m 예선에서 3위로 들어온 후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
26일 로마 세계 수영선수권 대회에서 박태환의 400m 예선 탈락에 선수와 국민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다. <AFP> 통신도 "박태환이 전혀 우승을 노리는 선수가 아닌 것 같았다"고 보도했다.
박태환의 예선 탈락 원인은 우선 경쟁자들이 예선에서 좋은 기록을 내 커다란 심리적 부담감을 갖고 있던 것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 전지훈련 중이었던 지난 5월 자유형 400m 기록이 자신의 최고 기록에 10초 이상 뒤질 정도로 신통치 않았던 박태환에게 이 사실은 부담감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여기에다 SK 전담팀과 대표팀을 오가는 일정을 소화하느라 집중력이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아직 대회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박태환이 실패한 원인을 찾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치 박태환의 '전공과목'으로 평가되는 400m에서 실패했으니 나머지 200m, 1500m는 안 봐도 알 수 있다는 시각은 더욱 그를 괴롭힐 게 분명하다.
박태환의 예선 탈락을 '작은 실패'로 만드는 지혜
오히려 지금은 400m 예선 탈락의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박태환을 위해 시간을 줘야 할 때다. 날카로운 분석과 비난의 화살은 대회가 끝나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 환갑을 목전에 둔 골퍼 톰 왓슨은 연장 승부 끝에 브리티시 오픈 준우승을 차지했다. 기자 회견장에서 왓슨의 패배를 아쉬워하는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내자 왓슨은 "오늘이 내 장례식이 아니지 않는가"라는 조크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흔들리고 있는 박태환에게 필요한 자세도 이런 것일지 모른다. '400m 예선 탈락했다고 이번 대회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존 톰슨 감독은 82년 결승전 석패를 거울삼아 2년 뒤 꿈에도 그리던 정상 등극에 성공한다. 2년 전 눈물의 패스 미스를 범했던 가드 브라운은 우승을 차지한 뒤 톰슨 감독과 더 진한 포옹을 할 수 있었다.
박태환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팬들이라면 그의 예선 탈락을 톰슨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작은 실패'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우리에겐 박태환 덕분에 자부심을 갖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훨씬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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