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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항 산맥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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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항 산맥을 넘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2] ⑦인간의 괴로움은 ‘탐·진·치(貪瞋癡)’

8월 11일. 취워현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V자 모양의 깊은 계곡이 나타났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열기 속에 맨 아래가 아련하게 보이고, 시선이 고갯마루에 오르자 정상은 뿌연 안개 속에 가려졌다.

내리막길에 굵은 모래가 군데군데 깔려 있어 스르륵스르륵 바퀴가 미끄러지고 사금파리들이 타이어에 밟혀 찌그락 째잭 소리를 질러댔다.

곧 오르막이 이어지자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듯했다. 땀이 눈 속으로 들어와 따끔거렸다. 입은 저절로 벌어져 입가에는 거품이 끈적거렸고 헬멧은 위로 젖혀졌다.

갑갑함보다 차라리 매콤한 오염을 택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버프를 턱 밑으로 벗어 내렸다.

뒤따르는 추니의 상체가 좌우로 심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백미러에 잡혔다. 대형 화물 트럭들이 우리의 처지를 이해라도 하듯 벌벌거리며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고갯길.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고갯길.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시안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108번 국도에서 백팔번뇌를 생각한다. 인간의 괴로움은 ‘탐·진·치(貪瞋癡)’, 즉 욕심과 노여움, 어리석음이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어지럽히고 괴로움을 낳는다 했다.

허나 그렇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으랴? 그러니까 인간은 늘 번뇌 속에서 괴로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일 테지.

하지만 지나친 욕심, 분별없는 노여움, 게으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통해 조금이라도 번뇌의 늪에서 벗어나 고통을 삭이려고 수행하는 거겠지.

인생사 늘 좋은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게다. 즐거운 일과 힘든 일은 늘 함께하는 것이니까.

고사성어에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있다. ‘좋은 일에는 탈이 많다’는 뜻으로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거나, 좋은 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어찌 보면 힘든 일을 겪어 봐야 즐거움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의 여행만은 예외였으면 좋겠다.

매일 뒤에서 불어 주는 시원한 바람을 등지고 줄곧 내리막길이고, 신기한 장면만 계속 나타나고, 들녘엔 예쁜 꽃들로 장관을 이루고, 끼니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힘겨운 108번 고갯길을 번뇌에서 벗어나 득도한 듯 어느새 다 올랐다.

오후 4시. 린펀시에 도착. 늘 그렇듯 시내에 들어서면 예약을 하지 않아도 방을 구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숙소를 구하는 나름의 기준은 건물 외관을 봐서 가급적 최근에 지은 것, 너무 비싸지 않은 곳, 주변에 식당이 있는 곳, 비교적 치안이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곳 위주로 선택했다. 오늘은 경도 대주점에 여장을 풀었다.

▲린펀가는 길.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린펀가는 길.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저녁을 먹으러 숙소를 나오다가 바로 옆 자동차 판매점 주인으로 보이는 이와 눈이 마주쳤다.

“여행 오셨나요?” 흔들의자에 누운 채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예, 한국에서요. 자전거 여행 중입니다. 베이징을 들러 선양까지 갑니다.”
“어? 베이징이요? 엄청 먼 거린데요.”
“예, 슬슬 달립니다.”

우린 더 이상 얘기가 길어지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 수 없을 것 같아 번역해 간 소개서와 명함을 주고받았다.

“송욱(宋旭) 사장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잠시 후 담벼락에 기대 있던 직원이 스마트폰을 보다 말고 사장에게 다가가 우리를 힐끔거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알고 보니 우리의 명함에 적힌 ‘자전거 동북아 대장정’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중국어로 번역된 언론 기사를 본 것이었다.

“일본까지 가시는군요.”
“예, 광복 70주년 기념으로요.”
“아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장은 손을 내밀며 우리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는 인터넷 기사를 다시 읽더니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한다.

▲린펀만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린펀만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이 주변에 식당을 찾고 있어요. 아는 데 있으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아, 저녁 식사요? 함께 가시겠어요? 제가 대접하고 싶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만….”

사장은 우리와 같은 차를 타고, 직원 두 명은 다른 차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했다. 고마운 마음과 더불어 메뉴 선택하는 고민을 덜게 되어 다행이었다.

먹자골목의 넓은 보도에는 이미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가득 차 있었다. 사장이 식당 안으로 잠깐 들어갔다 나오자마자 금방 소갈비, 돼지 족발, 양고기 구이, 맥주 한 박스를 가져왔다.

또 알콜 농도 42%짜리 백주도 식탁 위에 올려졌다.

대화는 번역기를 통해 이어졌는데 술이 거나해지자 손짓 발짓이 훨씬 더 편했다. 연한 소갈비를 안주 삼아 술잔이 식탁 위에 잠시라도 가만히 놓여 있을 틈이 없었다.

자기들끼리 호기를 부리듯 큰 소리로 웃고 얘기하는 모습들을 보니 재밌었고, 한편으로는 믿음직스러웠다.

“타이항 산맥을 자전거로 넘는 건 위험합니다.”
내일 타이항 산맥을 넘어 한단시 방향으로 가겠다고 말하자 사장은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어떤 위험이 있나요?”
“우선 산악이 험하고, 도중에 숙박 시설이 없어요.”
“민박이 없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그리고 대형 화물 차량들이 많고, 과속을 해서 매우 위험합니다.”

참 난감했다. 사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는데 미리 어찌할 방도가 없어 현지에서 어떻게든 해결하려던 과제였다.

사장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아마 내일 타이항 산맥을 넘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일 아침 9시, 숙소 현관에 차량과 운전기사 대기.’
통화를 마치고 나서 메모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자전거 싣고……. 주유비와 톨게이트 경비는 부담해야…….’

‘아니, 이럴 수가. 난감한 문제가 이렇게 해결되다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린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저녁 식대를 우리가 계산하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우리를 제치고 600위안(12만 원)을 지불했다.

“이제 돌아갑시다.”
직원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운전석에 올랐다.
“아니, 어쩌려고! 대리운전을 불러야지…….”

우리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운전자는 술 취한 사람들로 가득 찬 도로를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보행자들과 한 뼘 틈 사이로 먼저 발 들이밀기 경쟁을 하느라 멈칫멈칫하는 바람에 앞 좌석 의자를 두 손으로 꽉 붙들었다.

다음 날 아침. 서둘러 조식을 제공하는 인근 식당을 찾았다. 멜론만큼 커다란 속이 빈 빵, 일명 공갈빵과 누룽지 한 대접, 두붓국. 달걀 한 개, 절인 양배추 한 접시, 감자채 무침이 뷔페식으로 나왔다. 2인분에 오천 이백 원을 지불했다.

오전 9시 10분. 우리를 태우고 갈 낯선 운전기사와 승합차가 이미 정문에 대기하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날씨가 무척 덥네요.”
운전기사와 인사를 나누는데 엊저녁 같이 식사를 했던 일행이 주점 앞으로 모였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은 경찰 복장을 하고 있었고 자세히 보니 바로 만취 운전을 한 그 사람이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장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여행 끝까지 안전하게 잘 가십시오.”
“네, 이담에 한국에 오실 기회가 있으면 꼭 연락 주십시오.”

주점을 떠나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로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저들한테 과분한 대접을 받은 걸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고 뜨거웠다.

타이항 산맥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기 시작했다. 달리는 차창 밖 벌거벗은 산 여기저기에 녹색운동 대형 간판들이 보이고, 어린나무들을 촘촘히 심어 놓은 흔적들이 줄지어 능선을 넘었다.

철광석을 가득 실은 바퀴 열여덟 개 달린 초대형 트럭들이 길게 줄지어 산을 오르고, 급커브에서는 노폭이 좁아 한쪽 바퀴가 벼랑에 걸친 채 돌고 있었다.
우리가 만일 이 타이항 산맥을 자전거로 넘는다면 위험하겠지만, 아마 멋진 경험이 될 테지…….

우리가 탄 승합차는 자동차 컴퓨터 게임을 하듯 앞선 화물 차량을 순식간에 추월하고는 또다시 머리를 내밀었다가 반대편 차량에 놀라 다시 제자리 찾기를 반복했다.

높고 깊은 계곡에 제대로 된 가드레일 없는 벼랑고개를 몇 개 넘었다. 앞자리 조수석에 앉아 진땀을 흘리면서도 기암절벽의 풍광은 놓칠 수 없어 계속 셔터를 눌러댔다.

오색 시루떡을 엎어 놓고 칼로 베어 놓은 듯 신기하고 섬뜩한 느낌을 주는 돌산이었다.

▲타이항 산맥.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타이항 산맥.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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