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현재 여러 면에서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 대통령 탄핵과 구속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위기, '20년 전인 1997년에 발생한 IMF 환란시보다 더 장사가 안 되고 살기가 힘들다'는 팽배한 불만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위기, 또한 1994년 미국의 북한 폭격 계획 이래 최악의 남북간 전쟁 위험성에서 나타나는 남북관계의 위기가 있다. 5월 9일 새 대통령이 선출됨에 따라 정치적 위기는 완화되겠지만 경제 위기와 외교국방의 위기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대선 후보들의 경제해법에 집중하여 이야기해보자.
홍준표와 하이에크
먼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내세운 경제해법은 그의 선거 포스터에 실린 "기업에는 자유를, 서민들에게는 희망을"이라는 슬로건에 집약된다. 홍준표 후보는 "경제정책의 기본은 기업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부자 것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잘못된 복지정책"이라고 발언해왔다. 비록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라는 화법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줄푸세와 같다.
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줄이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면 기업들이 신나게 투자를 늘리니 좋은 일자리가 많아질 것이고 게다가 민주노총과 전교조 같은 노동조합과 좌파 시민운동을 척결하여 법질서를 단호하게 세우면 기업들이 더더욱 신바람이 나서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이 그의 경제사상이고 경제해법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지난 10년간 주장하고 실천해왔던 것이며 또한 자유기업원과 전경련,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뒷받침해온 주장이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는 줄푸세 해법의 원조는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이다. 하이에크는 세상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자 또는 시장주의자라고 부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이른바 '시카고학파'의 원조이다. 18~19세기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르도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자 또는 구자유주의자와 구별하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은 하이에크와 프리드먼, 그리고 그 후계자들을 신자유주의자라고 부른다.
하이에크는 1930년대의 대공황의 와중에 세계 각국 정부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한 적극적 시장개입 조치에 반대하면서, 기업 및 금융시장 규제 도입과 소득세 및 법인세 증세, 사회복지 확대와 노동권 강화 등의 정부정책이 결국은 "노예로의 길"을 활짝 열 것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안철수와 슘페터
이에 반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경제해법은 슘페터에 가깝다. 슘페터 경제사상의 핵심이 기업가정신 즉 창업가 정신이다. 빌게이츠와 스티븐 잡스처럼 '혁신적 파괴'를 이끌어가는 영웅적인 창업가 기업주들이야말로 시장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활력의 원천이며, 창업가 정신이 소실되는 순간 자본주의는 붕괴될 것이라는 것이 슘페터의 주장이었다.
안철수는 성공적인 벤처기업가로서 그 이미지를 기반으로 2011년에 혜성처럼 정치적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IT산업 창업의 요람인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유학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중소벤처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으로 내세운다. 또한 기술창업 등 창업을 활성화하려면 그것을 가로막는 쓸데없는 규제들을 풀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를 위해 '규제 프리존 설치' 같은 시장주의(신자유주의) 정책도 마다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세금인상에 대해서도 혹시나 그런 정책이 창업가정신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하며 조심스럽게 대처한다. 재원 마련의 한계에 따라 복지재정에 한계가 있으니 사회복지를 늘리더라도 조심스럽게 늘리고자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권 강화에 찬성하더라도 중소벤처 기업가들의 원성을 듣지 않게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발언한다.
기업규제 완화를 외치는 안철수의 모습에서 언뜻 하이에크-홍준표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하지만 홍준표와 안철수는 다르고 하이에크와 슘페터도 다르다. 홍준표가 대기업 및 재벌그룹 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활성화를 주장하는데 반하여 안철수는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대기업과 재벌그룹을 단단히 규제하여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창업이 활발해져서 좋은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이 홍준표 및 뉴라이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독과점 규제 및 경제력 집중 규제에 반대했던데 반하여, 슘페터는 독과점 및 경제력 집중으로 인한 거대기업의 출현을 내심 반대했다. 왜냐하면 슘페터가 대기업에서는 혁신 활동을 창업가(자본가)가 아닌 월급쟁이 R&D 인력이 수행하며, 이에 따라 자본주의의 영혼과 본성이 소실되어 사회주의 경제로의 전환이 경제적으로 불가피한 게 아니냐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슘페터의 인생 말년인 1930~40년대에는 실제로 세계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대기업이 경제를 지배하게 되면 사회주의가 경제적으로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슘페터는 경쟁적 시장에서 치열하게 '혁신 경쟁'이 일어나는 경쟁시장 자본주의를 이념적 이상향으로 꿈꾸었으며, 따라서 만약 그가 오늘날 이 나라에 살았다면, 안철수와 마찬가지로 공정거래법 강화를 통한 공정한 경쟁질서(시장질서) 확립을 가장 중시했을 것이다.
문재인과 케인스, 국가재정과 사회복지 확대
한편, 문재인의 경제사회정책은 케인스의 해법이라고 볼 수 있다. 문재인 후보는 4월 12일 '향후 5년간 세수 자연증가분에서 50조원을 조달하여 일자리 창출과 4차 산업혁명 등 10대 핵심 분야에 투자하여 연평균 50만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내용의 '사람경제 2017' 플랜을 발표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추가경정(추경)예산안을 편성하고, 국가재정지출 증가율을 현행 연평균 3.5%에서 7%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확대된 재정지출을 주로 육아와 교육, 복지, 주택, 보건의료 등 사회복지분야에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주 반가운 공약이며, 실제 그것이 케인스의 여러 경제해법 중 하나였다.
이와 같은 문재인 측 공약에 맞서 안철수는 '정부 재정을 쏟아 부어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자신이 집권하면 '그런 정부 주도 국가발전 패러다임을 폐기하고 민간 주도로 전환하겠다'고도 했다. 이러한 안철수 후보의 비판에 맞서 문재인 후보 측의 김상조 교수는 '지금 같은 경기불황 시에는 적극적 재정지출 확대가 유일한 정책수단'이라고 설명하면서, 재정지출 확대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타개책으로 쓰인 경제학자 케인스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안철수 후보는 케인스의 경제해법에 반대한다.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고 하면서 '정부의 역할은 교육개혁을 통한 창의적 인재 양성과 독자적 과학기술력 확보, 공정경쟁 산업구조 마련 등 3가지'라고 한정시켰다.
실제로 오늘날 신슘페터(Neo-Schumpeterian)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경제적 역할을, 기존의 경쟁적 시장질서 창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인 교육(보육) 정책을 통한 기술혁신인력 양성과 적극적 과학기술 정책을 통한 과학기술 인프라 구축으로 확장시켜 바라본다. 물론 틀린 이야기가 아니며, 바람직한 정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미국의 클린턴-힐러리 민주당이 과거 취했던 경제정책의 기조이기도한데, 여기서 노동권 및 사회권(복지국가) 강화는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리며, 따라서 적극적인 재정확대 및 증세에도 소극적이다. 딱 안철수 후보 측의 입장이다.
이것은 또한 슘페터의 입장이기도 했다. 슘페터는 대공황과 대불황 같은 경제위기를 '기업과 금융시장에서 과도하게 발생한 투자 거품이 해소되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과정'으로 보았으며, 자연스런 시장조정 메커니즘(즉 ‘자유시장’ 원리의 작동)에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와 시장규제 등을 통해 개입하는 것은 '인위적이고 부당한 잘못된 정부개입'이라고 보았다. 재정지출 및 사회복지 확대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슘페터는 하이에크와 같았고, 케인스에 반대했다.
이에 반해 케인스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 미국 루즈벨트 정부와 스웨덴 한손-비그포르스 사회민주당 정부가 취한 적극적인 재정지출 확대 정책에 찬성했다. 케인스는 대공황으로 폭증한 실직자 및 빈민을 구제하고 더구나 줄줄이 파산하는 은행과 기업들에 대한 긴급 구제를 위하여 국가가 재정투입을 크게 확대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만약 민주정부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나치당 또는 공산당이 집권할 것이라고 심각하게 우려했다. 실제 오늘날 유럽과 미국에서는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를 내세운 정당과 대통령이 집권하거나 또는 유력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케인스의 경제해법에 소극적인 서구의 민주·진보 정당들이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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