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뇌물 혐의 등으로 지난 17일 기소됐다. 박 전 대통령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이다. 박 전 대통령은 뇌물을 받은 혐의, 이 부회장은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의 혐의가 인정되면, 박 전 대통령은 중형을 피할 수 없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박 전 대통령이 삼성, 롯데, SK 등으로부터 받거나 받기로 약속한 뇌물 규모가 592억 원 규모라고 봤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 가운데 삼성이 건네기로 약속한 뇌물 규모는 433억 원이며, 실제로 건넨 규모는 298억 원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에 따르면, 1억 원 이상 뇌물을 받은 공직자는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 중형에 처하게 돼 있다. 통상 뇌물을 준 혐의와 받은 혐의는 함께 인정된다. 이 부회장 재판 결과가 박 전 대통령의 운명까지 결정하는 셈이다.
'삼성도 피해자' 주장 받아들여지면, 박근혜 웃는다
이 부회장 뇌물 사건 등에 대한 4차 공판이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형사 합의 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됐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뇌물 혐의에 대해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었다.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설립을 주도한 미르·K스포츠 재단에 돈을 낸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왜 삼성에 대해서만 뇌물 혐의를 적용하느냐는 게 이 부회장 측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다른 대기업은 최 씨에게 돈을 뜯긴 피해자, 삼성은 대가를 기대한 뇌물 공여자 취급을 했다는 것. 이런 논리가 받아들여지면, 이 부회장은 물론 박 전 대통령 역시 처벌을 피하게 된다. 변호사들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공소유지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특검 측은 이 부회장 측의 이 같은 논리를 반박하는 데 주력했다. 요컨대 삼성은 다른 대기업과 확실히 달랐다는 게다. 다른 대기업들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만 돈을 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중간다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은 최 씨의 딸인 정유라 씨를 위해 직접 돈을 건넸다. 그 역시 삼성 측은 '돈을 뜯겼다'라는 입장이다.
특검 "삼성과 같은 상황에서 KT, SK는 돈 안 냈다"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이 아닌, 다른 통로로 돈을 내라는 요구를 받은 기업은 삼성 말고도 있었다. 이들 기업은 어땠나. 이들 역시 돈을 냈다면, 삼성 측 주장에 힘이 실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특검 측은 KT와 SK 사례를 공개했다. 특검 측이 공개한 황창규 KT 회장의 진술서에 따르면, 황 회장 역시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더블루K'의 용역 제안서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스키단 창단 제안서가 담긴 봉투를 건넸다. '더블루K',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모두 최순실 씨와 관련이 있다. 대통령의 압력으로 느낄 수 있는 상황이지만, 황 회장은 이들 사업 제안을 거부했다.
SK도 비슷하다. K스포츠 재단은 지난해 2월께 SK그룹 측에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대비한 '펜싱·배드민턴·테니스 유망주 독일 전지 훈련 프로그램' 지원을 제안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회사로 '비덱스포츠'가 명시됐다. '비덱스포츠'에 50억 원을 내라는 요구였다. SK 측은 지급을 거절했다. '비덱스포츠'는 실체가 없는 회사라는 점이 근거였다.
"박근혜와 이재용, '윈윈' 했다"
요컨대 삼성, KT, SK는 모두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전달된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 요구가 아닌, 다른 경로로 돈을 내라는 압력을 받았다. KT 사례는 삼성과 더 닮았다.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사업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모두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데 유독 삼성만 돈을 냈다. '억울하게 돈을 뜯겼다'라는 논리가 성립하기 힘든 이유다. 더구나 삼성은 KT, SK 등에 비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정부가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KT에 비해서는 정치적 외압에 대한 독립성도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돈을 냈다는 점은, 삼성이 '일부러 거절하지 않았다'라고 볼 근거가 된다. 삼성이 박근혜-최순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김성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진술조서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 등 청와대 수뇌부는 대통령과 재벌 총수가 독대하는 자리에 대해 "기업인과 '윈윈(win-win)'하는 자리"로 이해했었다. 대통령과 재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였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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